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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therine Aug 11. 2020

다윗-새벽을 깨운사람(6)

사울이 왕의 자격을 증명하다 한홍 목사님

이전 이야기에서 사무엘 선지자는 온 이스라엘 백성이 모인 자리, 미스바에서 사울에게 기름 부었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사울은 바로 왕궁을 짓고 집무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함께 각기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는 열두 지파 중, 가장 세력이 약한 베냐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불만세력이 상당히 많았고, 노골적으로 사울을 비방하고 사울의 권위를 멸시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사울은 이 상황을 지혜롭게 대처했다. 일절의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400년의 사사시대를 지내며 각자 따로 떨어져 살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의 왕 아래 다시 모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하나님은 급하게 일을 진행시키지 않으시고 사울을 부각할 수 있는 상황을 기다리셨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오늘 본문에서 국가적인 재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왔다. 이로 인해 사울은 왕으로써의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삼상 11:1 암몬 사람 나하스가 올라와서 길르앗 야베스에 맞서 진 치매 야베스 모든 사람들이 나하스에게 이르되 우리와 언약하자 그리하면 우리가 너를 섬기리라 하니


이전에 입다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르앗 야베스에서 암몬 족속을 크게 물리친 적이 있었는데 암몬 족속은 그날의 수치를 잊지 못하고 오랜 세월 이를 갈며 기다렸다. 입다가 죽고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수십만의 대군을 일으켜 야베스에 피의 복수를 하러 왔다.


당시 길르앗 야베스에 살던 주민들은 이전의 입다와 같은 리더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만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을 선언해버리고 만다. 말이 좋아 언약이지 항복이나 다름없었다. 이들은 본래 용맹스러운 사람들이었는데 싸워보기도 전에 이렇게 전의를 상실하고 적에게 무릎 꿇었다는 사실이 참으로 한심하다. 곧 알게 되지만, 악에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평화가 지켜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 큰 화를 부르게 된다. 진정한 평화는 적이 얕잡아 볼 수 없는 힘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2 암몬 사람 나하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 너희와 언약하리라 내가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이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암몬 왕 나하스는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오른눈, 혹은 오른손을 제해버림으로써 공개적으로 수치를 주겠다는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영토를 지배하고 물건을 탈취하겠다고 온 것이 아니라 잔혹한 복수를 하겠다고 대군을 이끌고 온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말씀에 온 이스라엘을 이같이 모욕하리라 라는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하스가 하고자 하는 전쟁은 길르앗 야베스에서 끝날 전쟁이 아니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계획을 가질 만큼 그가 가진 군사력은 규모가 막강했다.


이처럼 마귀는 지금도 우리 한 사람만 넘어뜨리자고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마귀는 우리 한 사람을 패배시킴으로써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넘어뜨리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가지고 접근한다. 따라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작은 영적 싸움을 반드시 가볍게 여기지 말고 승리해 나가야 한다.


3 야베스 장로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에게 이레 동안 말미를 주어 우리가 이스라엘 온 지역에 전령들을 보내게 하라 만일 우리를 구원할 자가 없으면 네게 나아가리라 하니라 


잔혹한 암몬 왕의 이야기를 듣고 야베스 주민들은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다. 언약이든 항복이든 평화를 선처했는데 그들은 전쟁을 원했던 것이다. 사실 야베스 주민들이 자존심이 있었다면 돌아온 암몬 왕의 답을 듣고 '와, 너무하네.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어디 한번 죽기로 싸워보자'로 나가야 맞다. 그러나 이들은 심한 모욕을 당했는데도 싸울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들은 대신 뜻밖의 제안을 하는데, '우리가 항복하기 전에 칠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전역에 전갈을 보내 도움을 요청해보고, 아무런 대답이 없으면 우리가 항복하겠다.'라고 다시 청한 것이다. 참,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 구원병 요청 같은 건 적이 모르게 해야 하는 건데, 이 제안을 한 야베스 주민이나, 이 제안을 받아들여준 암몬 왕이나 다 이해가 가지 않는 포인트이다. 구원병이 오기 전에 먼저 성을 함락시키는 것이 보통 왕들이 행하는 모습인데 말이다.


이 희한하고 우스운 제안을 받아들여준 암몬은 한마디로 그만큼 병력에 자신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전체 연합군이 결성되기를 바랐던 것일 수도 있다. 온 이스라엘을 정복하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몬의 오만한 자신감은 패망의 앞잡이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닥친 거대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신다. 미약한 지파 출신이기 때문에 무시받던 사울을 온 민족 전체가 우러러보는 국가적 영웅으로 부상시키는 계기로 사용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여러 문제와 어려움들도 하나님만이, 기회로 바꾸실 수 있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지실 것이다.


기적은 위기가 왔을 때, 하나님의 힘으로 이겨내는 것을 말하는 단어이다.


4 이에 전령들이 사울이 사는 기브아에 이르러 이 말을 백성에게 전하매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더니


기브아는 야베스 지역에서 약 60km 떨어진 지역으로, 워낙 이 두 지역 간에 친분과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야베스 전령들이 가장 먼저 이 지역에 왔을 것이다. 그리고 기브아는 바로 사울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얼마 전에 왕으로 추대된 이가 있는 기브아에 오면 그래도 어떤 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함께 가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전해 들은 기브아 주민들은 '감히 우리 민족을 모욕해?' 하고 전의를 불태운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었다. 왜 울었는가? 두려워서 운 것이다. 그만큼 암몬 족속이 가진 병력의 규모가 크기도 했지만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상태가 바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싸우기도 전에 패배를 확신하고 울고 있는 것이다. 400여 년 전, 약속의 땅 들어가기 전 조상들이 보인 모습을 똑같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약속의 땅인데도, 열 명의 정탐꾼이 말하는 부정적인 평가에 이백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곡했던 순간. 불신앙도 신앙이라고, 자기의 패배를 예측하고, 그들은 그것을 믿었다.


5 마침 사울이 밭에서 소를 몰고 오다가 이르되 백성이 무슨 일로 우느냐 하니 그들이 야베스 사람의 말을 전하니라


사울은 이 이야기를 가장 늦게 안 것 같아 보인다. 전령들은 왕이 어딨는지를 묻고 사울에게 먼저 이 소식을 전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사사시대의 관습을 따라 그 지역의 족장에게 먼저 소식을 알린 것이다. 그렇게 기브아 족장들과 장로들, 주민들이 대성통곡을 하고 있을 때 밭에서 돌아오던 사울이 자초지종을 물어 상황을 알게 된 것이다.


믿음의 리더에게 뉴스는 가장 먼저 전해져야 한다. 영의 눈으로 상황을 분별하여 공동체를 이끌 수 있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이야기가 번져 집단 패배주의가 퍼지게 두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한 사람에게서 뻗어져 나오는 굳건한 신앙이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사울을 왕으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똑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성령의 사람들과 일반 사람들의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수심에 가득 차 땅을 치며 엉엉 울었는데 사울은 그 순간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아버지는 위기 앞에 담대할 수 있는 성령을 부어주신다. 이 국가적인 재난 앞에 사울은 당황하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이처럼 성령의 사람들은 위기 앞에 방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를 사로잡아 기적을 만들 준비를 하는 것이다. 사울은 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분노에 휩싸여 적을 격파시키겠다는 결단을 했고 정면승부를 할 수 있는 용기를 냈다.


7 한 겨리의 소를 잡아 각을 뜨고 전령들의 손으로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역에 두루 보내어 이르되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하였더니 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8 사울이 베섹에서 그들의 수를 세어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삼십만 명이요 유다 사람이 삼만 명이더라


사울은 즉시 한 겨리의 소, 즉 두 마리를 잡아 각을 떠 전역으로 보냈다. 연합군을 모집하니 모두 병력을 보내라고 전한 것이다. 만약 따르지 않을 경우 징벌이 있을 것이란 무서운 말이었다. 회의하지 않았다. 그냥 선포한 것이다. 그 순간 여호와의 담대함과 용기가 퍼져나갔다. 불신앙의 사람들이 두려움과 무서운 감정을 퍼뜨리는 반면 성령의 사람들을 통해 용맹스러움이 퍼져나간 것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져있던 백성들이 성령에 감동된 리더십 아래 한 사람처럼 모인 것이다. 우리도 성령의 사람이 되고자 항상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자신을 단련해 나가면 사람들이 우리의 리더십을 인정해 줄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연합을 결성하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민족이었다. 그동안은 왜 못했던 것일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성령의 리더십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 그것은 성령의 사람만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성령의 리더십은 다 알면서도 못하고 있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렇게 사울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이다.


9 무리가 와 있는 전령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받으리라 하라 전령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해가 더울 때 너희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내일 정오가 지나기 전에 모든 적군을 다 궤멸시키고 야베스 주민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구원군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래의 패배를 확신하고 통곡했던 나약한 백성들과 성령의 리더십의 차이를 볼 수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휩싸였던 사람들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로 바뀐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상황을 오직 주께 드리면, 그분께서 우리의 리더가 되어주신다. 우리의 절망과 화가 변하여 소망과 희망이 되는 것이다.


10 야베스 사람들이 이에 이르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생각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


사울과 구원군은 한마음이 되어 영리하게 전쟁에 임하기 시작한다. 암몬 족속을 기만하기 위해 야베스 주민들로 하여금 거짓 항복을 할 것처럼 하며 하루를 연장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암몬 족속은 기고만장하여 하루를 더 기다렸다.


11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들을 치매 남은 자가 다 흩어져서 둘도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긴장을 다 풀고 항복 선언을 받을 행복한 상상을 하며 잠에 빠진 암몬 군대를 향해 사울은 밤새 행군하여 상황을 역전시킨다. 그는 백성을 삼대로 나누어 중앙과 양 사이드를 한 번에 공격하였을 것이다. 새벽 여명과 함께 공격을 시작하여 잠들어있던 암몬 군은 처참하게 무너졌을 것이고, 이 전쟁은 일반적인 학살로 보아도 될 정도로 무자비했을 것이다. 수십만의 병력이 궤멸되었기 때문이다. 강력했던 수십만 대군은 이렇게 하루 만에 죽음으로 자만함의 값을 치렀다. 신화적인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사울은 모든 백성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


미약한 민족이라 무시받던 사울은 하루 만에 그 누구도 함부로 넘볼수없는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루아침에 그를 높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도우시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높여주시기도 한다.


12 백성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한 자가 누구니이까 그들을 끌어내소서 우리가 죽이겠나이다


믿기 힘들 만큼 극적인 대 승리를 얻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을 어깨에 받치고 들어오며 불과 하루 전날까지 그를 깔보았던 마음은 싹 잊은 채 오히려 그런 말을 퍼뜨린 사람들을 찾아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사울은 왕의 자격을 입증했고 그런 그의 앞에 과잉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 사울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던 무리들을 처형하자고 선동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억울한 눈물과 남모르는 상처를 다 아시고 갚아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악한 마음들과 속임수들을 다 알고 기억하고 계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 때마다 상처와 슬픔을 묵상하기보다는 하나님께 회복과 사랑과 용서의 마음을 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가는데 방해물이 되지 않도록 정의로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드려야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은 아마 쥐구멍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마블사에서 만든 영화 '어벤저스'의 '어벤져'의 뜻은 '원수를 갚아준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벤져가 되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반드시 언젠가 갚아주실 것이다.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나중에 나를 높여주실 때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모든 일에 다 반응하지 않고 넘어가야 한다.


텍사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있다. 토마스라는 사람은 항상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며 성실하게 정비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직장 동료들은 모였다 하면 음담패설을 하고 카드 도박을 일삼으며 선술집을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토마스가 그들과 함께 모여 그렇게 놀지 않는다고 그들은 토마스를 왕따 시키고 그를 놀려댔다. 가장 뛰어난 정비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속 상사와 동료들의 입김 때문에 7년 동안 승진이나 보너스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때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장님이 그를 호출했다. 그리고 이어 전혀 뜻밖의 제안을 한 것이다. 자신은 곧 은퇴를 하게 되니, 이 회사를 토마스에게 팔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토마스는 처음 만난 사장님의 첫마디가 회사를 자신에게 팔고 싶다는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은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재량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런 그에게 사장은 '나는 너를 지난 7년간 봐왔다. 너는 이 회사에서 가장 성실하고 가장 꾸준한 직원이다'라고 말하며 '너라면 내가 아니어도 이 회사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그를 응원했다. 그 말에 토마스는 당장 회사를 살 돈이 없다고 말했는데, 사장은 웃으며 '걱정 마, 그것도 내가 빌려줄 거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자 없이 빌려줄 거고, 내 계획이 맞다면 너는 몇 년 안에 회사를 잘 경영해서 인수자금을 다 갚을 수 있을 거야'라고, 그가 생각지도 못한 앞일까지 다 생각하고 제안한 것이다. 그렇게 토마스는 정비공에서 사장이 되었고 실제로 몇 년 안에 인수자금을 다 갚았다고 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사람 토마스는 자신을 깔보고 따돌렸던 모든 회사 직원들을 하나도 퇴사시키지 않고 그들 모두를 용서했다고 한다. 무려 7년이었다. 이후 사람들은 토마스에게 정말 충성을 다해 일했고 그들 덕분에 토마스는 회사를 몇 배나 더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독수리와도 같았던 토마스를 높이 세워주셨다.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토마스에게 있었던 예수님의 영이 사울에게도 임했다. 당시 과잉 충성했던 사람들이 불러낸 사람들을 사울은 용서했던 것이다.


13 사울이 이르되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리니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사울은 자신의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이긴 것이니, 자기가 받은 은혜를 그들도 받아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라 선포한 것이다.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그 상황에서 사울의 한마디는 큰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이들을 죽이는 게 좋겠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 사울은 훌륭한 선택을 함으로 그가 피의 왕으로 기억에 남는 일을 막았던 것이다.


우리를 억울하게 하고 멸시했던 까마귀 같은 사람들은 우리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에 힘입어 그들을 용서하기로 결단해야 한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기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다. 용서를 통해 상대가 준 상처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


힘을 가진 사람은 공동체의 아버지이다. 아버지는 껄끄러운 자녀들도 사랑으로 품고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가 포용하고 품지 않고 있는 대로 복수하고 대적한다면 그 공동체는 파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상처를 치유가 되지 않는다. 예수 이름으로 용서할 때 우리는 상처로부터 자유할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27년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그는 나오자마자 사악한 행동을 했던 백인들을 용서했고 적폐 청산을 하는 대신 그들과의 화합을 통해 인종차별을 극복해냈다. 권력이 있는 자가 정치보복을 하면 악으로 악을 이기려 하는 것이기에 끊임이 없이 반복되지만 악을 선으로 이기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발판이 되는 것이다.


사울의 용서를 보며 백성들은 감동했을 것이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이기는 것과 넉넉히 이기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저 악의 세력에 승리를 거드는 이김을 넘어 그들의 공격을 방어하며 오히려 내가 더 높이 비상하게 되는 것이 넉넉히 이김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영적인 공격을 받고 물리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부흥하게 되는 것, 그것이 넉넉히 이김이다.


14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사울을 보며 사무엘이 말했다. 이제 다 준비되었으니 길갈로 가자, 나라를 새롭게 하자. 여호수아를 따라 약속의 땅에 처음 들어왔을 그때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나라를 새롭게 하자.


승리와 용서. 이 두 가지가 있어야 새 역사는 일어난다. 개인의 삶과 가정과 교회,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역사,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 싶다면. 승리해야 할 것이고, 용서하여야 할 것이다.


15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에서 여호와 앞에 화목제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거기서 크게 기뻐하니라


화목제는 어린양을 희생제물로 삼는 제사이다. 사울이 왕이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끄시는 민족이다. 보혈의 힘으로 세워진 민족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들처럼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 심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안전이 우리를 인도할 것이고 우리를 지킬 것이다. 이 땅의 왕들은 불완전하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그 하나님께서 두려워할 필요 없이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승리를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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