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해가 넘어가는 그 특별한 30분
음식을 먹고, 기사를 읽고, 타인을 의식하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동안, 많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나는 점점 더 복잡해져만가는 느낌이다. 다람쥐는 매년 찾아오는 겨우내- 포근한 겨울잠을 미루지 않고, 엷디 엷은 꽃은 여차하면 져버리는데. 그들이 지키는 베이직한 원칙 앞에 어쩐지 뺨이 붉게 물든다.
마침표가 금방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내가 쥔 연필은 구불구불하게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지만, 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왔고 어쩌다 힘이 빠지면 놀랍도록 날카로운 일직선을 그리기도 했다. 그런데, 기대했던 마침표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인생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촤라락 엎어졌고, 그 위에 나는 산이기도 바다이기도 했었는데. 처음 시작이 어디였는지 까치발을 들어도 보이지 않는 통에 문득 당황스러움과 난처함을 어떻게 소화시켜야 하나 고민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그려내는 바다보다, 갑절로 깊은 외로움은 어디에나 있던데.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신의와 선의를 더 어떻게 그려내야 하나, 얼마나 더 열심히 바빠져야 하나 알 길이 없는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 전 정해진 약속처럼 커피 한 잔을 허락한다. 신선한 원두향을 입안 가득 머금으며 씁쓸함과 청량함의 대비로 무장하는 것이다. 비록 액자에 걸렸다만 넓은 세계를 엿보고자 저명한 작품들을 눈과 귀에 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하늘이 가장 잘 보이는 동산으로 석양, 아름다운 지는 해를 보러 간다. 어떻게 놓칠 수 있을까. 계란 노른자같이 동그란 태양이 탁, 붉어져 하얀 구름을 핑크색으로 반사시키고 에메랄드색 하늘은 조명을 켜놓은 것처럼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그 순간을 말이다.
하늘의 푸르름은 두 말할 것 없이 다채롭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해가 지는 시간의 앞 뒤, 태양과 달이 동시에 떠올라있는 그 시간부터, 눈을 뗄수 없더라. 은색, 금색의 반짝이는 별들은 금새 콕콕 찍히고, 그 배경이 되는 감청색 하늘은 고급스러운 융단같다. 삼, 사십 분 동안 서서히- 검게 변하는 시간의 변화가 부담스럽지 않다. 절대적인데 따스하고 친숙한 석양은, 여운 있는 위로가 되어 하루를 다독이기에 충분하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 티켓을 놓쳤는데 그걸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쌓여있는 것들을 덜어내고 쏟아내는 참한, 시간. 참, 한 시간. 그것이 붉은 사랑인들 미움인들 버겁다면 미련 없이 꺾어지고 잠들 줄 아는 쿨함. 하늘은 그의 너른 품 안에 이 모든 작은 것들을 내려놓으라 속삭인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물감을 구하더라도 내 마음이 반영된 하늘만큼이랴. 비록 왔다 간단 한마디 언질도 없지만 내 두 발이 무사히 땅에 붙어있는 건 그를 향한 나의 시시콜콜함을 우직-하게 배려한 그의 시간들 덕분일 것이다.
내가 나 다워지는 시간, 붉은 해가 넘어가는 그 특별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