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therine Oct 14. 2021

PENGUIN BLOOM

Based on true story

둘째 아들과 펭귄


이 영화는 현재 내가 살고 있고 앞으로 평생 살게 될, 호주에서 있었던 실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에너지 넘치는 세 아들과 샘, 캠 이렇게 다섯 가족의 성장 스토리를 담고 있으며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의 까치 종인 '맥파이'라는 새가 펭귄이란 이름으로 이 가족과 함께한다. 그저 검고 하얀 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격성이 다소 높은 편인 이 새는 너무나 귀엽고 순한 펭귄이 되었다.


영화는, 호주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주상절리와 서핑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바다의 모습을 자주자주 담아준다. 아마 이 가족이 겪은 아픔의 자리에서 파도의 일렁임을 따라 안전지대로 흘러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스름이 핀 새벽 바다, 흑암같이 거친 자정의 바다, 그리고 눈부시게 반짝이는 파도를 따라 잠기기도 하고 몸을 맡긴 채 숨을 고르기도 하며 흘러나온 것 아닐까.


이 가족이 겪은 일은 정말 끔찍한 사고였다. 태국으로 떠났던 휴가에서 샘이 오래된 옥상 난간에 기댔다가 추락하며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된 것. 그녀가 집필한 책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영화에서 보면 그녀는 정말 이 사고로 인해 고통스러워한다. 단지 육체적인 고통 때문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빠져나 올 수 없었기 때문. 다리가 있는데도 다시는 서핑을 할 수 없었고 밤늦게 깬 아이들은 혼자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 대신 아빠를 찾았다. 도시락도 준비해줄 수 없었고, 혼자서는 씻는 것도, 침대에서 몸을 돌려 눕는 것도 할 수 없었으니 그녀는 스스로가 쓸모없다며 존재를 비하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을 할 수 없어도 여전히 샘은 아내이자 엄마이자 아름다운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가족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보살피며 달라진 가정환경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정작 샘 자신이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분노와 의문, 다시 또 분노. 꼭 그 일이 그녀에게 일어났어야만 했는지. 제발 난간에 기대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릴 순 없는지. 후회와 절망이 그녀를 꽁꽁 붙잡았고 그녀는 마음에 가득한 분노를 가족들에게 터뜨리지 않고자 그 칼날을 자신에게 겨눴다. 분노가 깊은 우울증이 된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감명 깊었던 부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실 사고를 당한 샘과 그녀를 보살피는 남편에게만 영화의 관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영화 '소울 서퍼'와 같이 사고로 신체를 잃은 사람의 아픔과 회복을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되고 말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과 같은 자극적인 작품들이 나오며 프로그램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시기에 쉼표가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핵심은 '노아'이다. 첫째 아들. 그날, 엄마에게 자신이 발견한 멋진 장소를 보여주겠다며 재촉했던 아이. 노아는 호주에 돌아와서도 샘에게 잘 다가서지 못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은연중에 건들일 수없는 영역으로 가족 안에 자리를 키워가는 동안 반대로 노아의 자리는 점점 작아져만 갔다. 살아서 엄마를 산채로 갉아먹고 있는 듯한 사고의 상흔들이,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 자신이 아니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과 담을 쌓으며 점점 고립되어 가던 샘을 다시 문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자신과 같이 높은 나무에서 추락하여 무방비하게 자연에 노출된 새끼 맥파이였다. 펭귄, 아이들과 남편이 학교로 직장으로 집을 비우면 본능적인 새끼 펭귄의 엄마를 향한 울음이 샘의 본능과 힘겨루기를 했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끊임없는 울음소리, 생명을 향한 열정, 몸부림. 그렇게 샘은 펭귄을 돌보아주며 삶에 대한 애착을 다시 키워가게 된다.


영화의 후반부, 노아를 힘들게 하는 죄책감의 실체를 샘이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과감히 선을 넘어 솔직하게 고백한다. 노아에게, 가족들에게,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었던 거라고. 다시는 예전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로 인해 끊임없이 차오르는 분노와 절망이 누군가에게 폭탄이 될까 봐 걱정은 되는데 샘 본인도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노아의 잘못도 샘의 잘못도 아니라고. 가슴이 펑 하고 터져버릴것 같이 차오른 이 현실들은 그 누구로부터 발단된것이 아니라고, 아무도 넘볼수없고 이대로 포기할수있는 그녀의 권리를 과감히 포기한다.


블룸 가족의 스토리는 현실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감독의 시선을 힘입어 지루하지 않고 따뜻하며 흡입력 있다. 그들의 호흡이 자연의 순환과 너무나도 동질감이 있어서, 또 부드럽게 파도치는 바다의 다양한 색이 간혹 마음의 답답함을 잘 환기시켜 주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바다에 가까이 가 잠잠히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샘이 받아들여야 했던 삶의 변화는 그녀에게 무엇을 배우게 했을까? 살이 찢겨 나가는 듯한 겸허한 겸손? 무조건적인 사람들의 도움을 끊임없이 받아들이는 ? 사랑의 깊이? 그녀는 결국 카약 챔피언쉽에서 여러  수상하며 타고난 평형감각과 수영실력을 십분 발휘했으니 생각보다 삶이 그렇게 빨리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무너지지 않을 생명이라면 용서하지 못할 기억도 과거의 아픔도 없을 테니까. 기다림에도 꺼지지않는 삶의 위대함 앞에 더이상의 고집은 옳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무조건적으로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하나님이 때론 가족처럼 때론 영화의 펭귄처럼 내 삶 곳곳에 존재하기에 지금의 나도 꾸준히 흘러갈 수 있음을 믿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