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본 공간은 몇 년 전 어디쯤에선가 시간이 흐르다 멈춘 상태였다. 지금껏 최소한의 주변정리와 청소만으로 겨우 유지했던 탓에 건물은 세월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업자의 손길로 되는대로 지어져 대충대충 마감된 애매한 부분들 투성이에, 이곳의 환경은 고려되지 않은 채 그저 방 한 칸 두 칸으로 구성된 세대들, 옥상엔 짧은 처마조차 없어 비가 오면 빗물이 안으로 주르륵 흐르는 옥상 출입문까지. 개선과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꼽고 나열하자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였다.
먼저 감정의 숨을 애써 가다듬었다. 온도를 낮추고 있는 그대로 보기로 했다. 못난 나의 모습도 나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이것 역시 그런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과 없이 보고 또 보며 이곳을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그림을 그릴 마음의 준비를 했다.
수없이 드나들었던 곳이기에 현장을 파악할 시간이 그리 길 이유가 없었다. 먼저 노트를 펼쳐놓고 도면을 그렸다.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진 총 7개의 공간, 변함이 없을 그 조건을 종이 위에 올려두고 어떻게 하면 공간이 가진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고 수정할 수 있을지, 더 나은 공간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물과 내부 공간 컨디션의 확실한 개선이었고 나아가 사람들이 오고 싶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강정동>은 남쪽으로 경사진 도로에 접해있고 그 도로변을 따라 축대 위에 지어져 시원하게 바다가 보인다. 이 건물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환경도 충분히 받아들일 조건이 되어야 흡수할 수 있는 법. 가슴높이 이상으로 난 창들은 내리쬐는 햇볕마저 받아들이지 못했다. 북향의 공간들은 낮에도 마치 지하의 어둑어둑한 공간 같았고 심지어 곰팡이마저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습한 공간이 된 원인이 환풍인지 습기와 빗물에 의한 방수의 문제인지 이번 기회에 잡아볼 생각이었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공간의 기본은 계절이나 비바람 같은 천재지변에 안전하고, 전기나 수도공급이 안정적이며 바람과 햇볕이 잘 들어 순환이 잘 되는 공간이다. 디자인이나 인테리어는 그다음에 논해야 항목이라 생각한다. 기본을 망각한 채 디자인에 치중하다 보면 종국엔 예쁜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십 년을 통해 배웠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기본을 충실히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음을. 나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다짐하며 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