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만들고 리디자인하는 데 있어 공간 이용의 목적이 분명한 것처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다.
이 공간을 누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끊임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원룸 대열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 뛰어들었던 뼈아픈 과오를 떠올리며 눈앞의 현상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 한가득이었다. 처음 이곳에 원룸이 지어질 당시와 달리 원룸의 수요가 급격히 줄고 월세가 반토막이 났다.
무엇이 이 지역 원룸을 등 돌리게 하였는가.
단지 수요를 넘어선 공급이 문제일까.
공간은 사람이 살아 숨 쉬게 한다는 그 간의 교훈을 토양 삼아 다시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원룸에 살아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내가 원룸에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나고자란 서울에서는 대한민국 주거 공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제주로 온 이후에는 단독주택/다락 룸/비우다의 관리자동/투룸 등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며 주거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오던 차였다. 작은 공간에서 주거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주거 공간을 다시 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몇 해전 겨울 방문했던 대기업S의 오피스텔이 생각났다. 독립된 거주 공간 외 별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 여가공간을 세입자들과 공유하는 라이프스타일링 주거 패키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였다. 기존의 임대료로 보다 30%가량 높은 임대료에 특별 면접을 통해 입주자를 선정하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항시 대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요가나 명상 클래스가 열리는 멀티유즈 스페이스와 북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점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된 북카페, 그리고 다양한 간식과 음료, 간편식이 제공되는 스낵바 서비스까지 꽤 괜찮아 보였다. 작은 사이즈의 공간에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일지라도 '공유'라는 개념만 수용한다면 공간 사이즈의 제약을 뛰어넘는 라이프가 가능한 주거였다.
강정동이 이런 라이프스타일 스페이스가 되면 어떨까
2층에 주거를 집중시키고 1층의 공간에 거주인들이 사용할 있는 북카페와 예약제 키친 스튜디오로 구성해 <강정동>만의 새로운 스타일로 주거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시청에 들러 1층의 원룸과 투룸 정도는 상업적으로 용도 변경을 하고 사용할 수 있음을 확인했기에 1층은 주거보다는 상업적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생각이었으니 특정 시간대 혹은 기간을 정하여 공간 대여를 할 수도 있고 다채롭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멀티유즈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아이템 디자인을 시도해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공간 운용에 관한 다양한 아이데이션이 떠오르고 가라앉길 반복하는 가운데 일단 외부에서 내부로 어프로치 할 출입 동선을 세 개로 나눌 계획을 세웠다. 상업공간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두 개의 공간은 외부에서 바로 출입할 수 있도록 바꾸고 기존의 중앙 출입구는 이층을 위한 단독 출입구로 변경했다. 중앙 출입구는 더 이상 공용이 아니기에 단열과 보안에 효율적인 방화도어로 교체하고 개방성이 좋아야 하는 상업공간은 단열 시스템 도어로 바꾸기로 했다. 제주의 강한 비바람에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깨지거나 휘청거려 말썽이 났던 중앙 출입구의 강화유리 도어를 드디어 덜어낸다니 생각만으로도 속이 다 후련해졌다.
상업적 공간으로 독립된 출입동선을 가지게 된 원룸인 101호와 투룸인 103호의 가장 큰 단점은 빛이 충분히 들지 않고 환기가 어렵다는 것. 때문에 늘 어둡고 습했다. 공간에 창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매한 위치와 사이즈로 있으니 없느만 못한 상태였다. 일단 단열이 잘 되는 이중 로이유리를 사용한 통창과 시스템 도어로 바꿔 채광을 확보하고 단열 효과를 높여보기로 했다. 허리 위로 난 창문은 아래 벽을 털어내 창 사이즈를 키우고 환기가 잘될 수 있도록 창을 구성했다. 창과 문이 자연스럽게 바람의 흐름을 만들어 낼 테니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순환이 되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으로 허물고 덜어내고 또 채우고 짜 넣으며 그렇게 새로운 공간을 다시 그려나갔다.
제2화 낮은 온도로 있는 그대로 다시 보기
제3화 다시 그리기
제4화 가능하게 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