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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i Sep 16. 2022

프로젝트 강정동

제4화 가능하게 한 것들

이렇게 겁 없이 덤빌 수 있는 이유는 경험의 시간 덕이다. 오래 전, 같은 집을 세 번 뜯어 고치는 과정에서 터득한 현장의 지식은 그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집이라는 구조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보이지 않는 벽과 바닥, 천장 안 속속들이 어떤 사정들이 있는지 한 번 두 번 세 번. 띁고 고쳐 마감하길 반복하니 큰 틀이 보이고 언제 어느 때 어떤 작업이 필요한지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인테리어 업체가 있었지만 공정만 맡기고 자재의 하나하나를 직접 셀렉팅했다. 업체에서 내보이는 샘플들이 마음에 안들 때는 원하는 자재와 디자인의 부속품을 찾으러 논현동 자재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자재상에서도 나를 인테리어 디자인 업체라 믿어 의심치 않을 때쯤  작업을 맡아 진행하던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마저도 인테리어 쪽으로 전향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왔다. '어?! 나 이쪽 방면으로 소질이 좀 있나?'


그 후 제주스테이 비우다를 직접 A부터 Z까지 전체 디자인 디렉팅을 하고 설계-설계 수정-착공-시공-시공 수정-완공에 이르는 과정을 경험하고 체득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자신감은 더해갔다. 거기에 건물이 다 지어진 후 일어나는 하자보수나 유지보수를 하는 과정 속에서 디테일한 지식과 깨알 같은 아이디어들이 모이고 모여 어떤 공정이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어떠한 구조여야 하는지, 무엇이 문제가 되고 또 무엇을 어떻게 수정해나가야 하는지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JEJU STAY BIUDA / CHAEUDA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돈으로만 되는 것은 없다 여기는 나로서 늘 감사한 것은 언제나 구원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 <강정동> 역시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철거/미장/창호/타일/방수와 페인트/설비/목공/금속 등 항목별로 그간 함께 손발을 맞춰 온 전문 파트너들이 있다는 것도 용감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다. 공정과 작업의 내용을 속속들이 아무리 잘 안들 믿음의 벨트조차 없는 제주로 훌쩍 떠나온 육지것 이방인이 감히 직접 이런 작업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무모한 일이다.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 걱정 말아라, 강정동 현장이라고 부르기보다 '지민이네'라고 칭해주는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다. 유래 없는 전염병에, 저 멀리 대국의 전쟁놀이에 오를 대로 오른 자재비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아는 사이에 어떻게 더 받냐며 알아서 봐주고,  알아서 더 꼼꼼히 내 일처럼 현장을 돌보는 사람들이었다. 일 다해놓고도 근처 현장이 있으면 한 번 들여다보고 더 해줄 건 없는지 살펴준 덕에 알게모르게 훈훈한 현장이었다. 비우다를 만들고 꾸려가면서 경험했던 별의별 일들이 엮어준 인연 십 년 치. 그런 의미에서 이번 <강정동> 굉장히 뿌듯한 과정이었고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나 자신에게 이만큼 잘 살아서 장하다 칭찬도 해줄 수 있었고.


이번 <강정동>은 쉬는 동안 진행하는 작업이라 시간적 여유가 아주 많았다.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디테일을 살려 꼼꼼하게 혹은 무언가를 세이브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2년 봄, 나의 일정과 하루의 일과가 <강정동>의 스케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리모델링을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움직이려고 직접 현장소장이 되어 작업현장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인부들보다 더 일찍 가서 현장을 살피고 작업자가 현장을 떠난 뒤 늦도록 남아 뒷정리하며 오늘의 작업은 잘 되었는지 확인하고, 수정할 부분이 없는지 살피고 다음 작업을 위한 피드백을 정리해 두며 매일매일을 보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과 경험, 사람과 시간이 하루하루 <강정동>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제3화 다시 그리기

제4화 가능하게 한 것들

제5화 고심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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