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만난 사람들과, 함께 나눈 대화들
밤새 야간버스를 타고 방콕에 도착했다.
정말 엉뚱하게도 한달 전쯤 치앙마이에서 방콕에 사는 친구들을 알게 됬다. Space Ardict 이라는 페스티벌의 포스터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냥 한 번 가봐야지! 하고 꿋꿋히 혼자 페스티벌에 참가. 밴드 공연을 보면서 혼자 노는 모양을 보고 방콕에서 공연을 하러 치앙마이에 올라온 친구들이 말을 걸어 주었다. 알고보니 방콕의 패션아이콘+뮤지션 크루로, 잡지에도 나오고 무슨 파티에 참가하면 꼭 사진이 찍혀서 올라오는 친구들이었다. 내가 온 날에도 파티에서 디제이를 하고, 공연을 하고, 사진이 끊임없이 찍히고,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근데 얘네의 정말 좋은 점은 그런 유명세에 대해서 거만하지 않고, 완전 이방인인 나에게 먼저 말을 걸고 다가와준 것 처럼, 또 다시 보게 되어서 너무 좋다고 진심으로 얘기하고, 계속 맥주를 사주고 뭘 원하는 지를 묻고 신경써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한테 너는 너만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면서ㅋㅋ말도 잘 안통하면서 나를 단박에 꿰뚫어보았다. 좋은 사람들이다. 덕분에 방콕 1박을 마음이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나의 60대 쯤에 미뤄뒀던 꿈에 살고 있고,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지금 경험하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으로 느껴진다. 내가 뜬 꿈을 앞당겨 지금 왔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던 대화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평생 따라다니면서 스스로에게 솔직하라고 잔소리할 것이다. 타이밍이란 건 역시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이다. 나는 언제나 운명론자였지만 선명한 증거들을 경험하면서 더더욱 믿음을 더해가고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옆자리에 앉은 Eileen과 나눈 대화를 생각했다. being crazy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 그는 '지구는 둥글고, 사과는 아래로 떨어진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그 태도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건 상식이야라는 듯이. 결국 norm이라는 건 변한다. 그러니까 지금 나에게 부과된 기준에 따라 내 자신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계속 인생을 끼워맞추고 계획하고 일을 구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계획한다고 되는게 아니라고 인생이 자꾸 돌맹이를 던진다. 생채기가 난다. 그렇지만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인생은 계속 그게 아니라고 돌을 던질 것이다. 가끔은 그냥 모든 것이 계획하는 대로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순탄하기만 했으면 좋겠지만 아마 안되겠지. 계속해서 넘어져가면서 살아갈 거 같고, 그게 더 이상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 결국엔 이 모든 것들이 내 자신이 조금 더 내 자신이 될 수 있게 만들꺼라고 믿기 때문에! 살아갈 날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에 가끔 압도당하지만 그 시간만큼 나에 대해 더 잘 알아가고 친하게 지낼 수 있겠지. 기쁘다. 글로 써놓고보니 자기성애자가 따로 없지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발전시켜나가는 만큼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더 성숙하게 사랑할 수 있으니까 더욱 나를 사랑해주어야지.
그리고 또 방콕에서 만난 사람이 치앙마이에서 밴드를 하는 부부였다. 마침 내가 온 날에 방콕에서 공연이 있어 내려왔다. Space Ardict에서 만난 애들이랑 아는 사이라, 택시를 나눠타고 가는 중에 엄청난 트래픽으로 꼼짝없이 갇혀서 서먹하고 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아내인 Bobkat 기타리스트 언니는 미국에 살다가 치앙마이에 휴가를 와서 7년 동안 눌러 살게 되었고, 기타를 하나도 칠 줄 모르는데 무작정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태국에 와서 살게될 것이라고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그냥 휴가를 왔고 친구를 만났고 어쩌다보니 3년을 머무르게 되었고 밴드를 시작했고, 그러다가 음악하는 태국 남자를 만났고, 사랑을 하고, 딸을 낳았다고 한다. 아 인생! 계속해서 흘러가는 대로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기를!
치앙마이의 헌 책 방에서 <오즈의 마법사>를 발견하고서 왠지 마음이 끌려서 읽고 있다. 어떤 동화는 평행한 여러 메타포들의 집합인데, 요즘은 도로시가 내 얘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