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둘이서 5시에 만나 한 이야기
친구의 외로움(제일 소원이 썸 타는 것)에 깔깔 웃다가 집에 들어와서 대문이 탁 닫히는 소리를 듣는데 외롭다 는 말이 머리에 잠깐 떠올렸다 사라졌다.
영민하고 유쾌한 나의 친구는 어쩌면 똑똑해서 외로움을 치장하고 다니는지도 몰라 그러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조금 덜 외로울 지도 몰라 하고 생각했다. 우리가 결국엔 다 외롭다는 사실은 쓸쓸하지만 따뜻한 거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서로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아. 너는 성대모사를 아주아주 잘하고 우스운 이야기도 잘하고 글도 잘 쓰고 똑똑하고 노래도 잘하고 훤칠하지만 결국엔 외로워. 나도 자세히 보면 보이는 나의 모든 좋은 점들을 싹 긁어다 붙이더라도 결국엔 외로워. 그래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사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는 뭘까 하고 고민하고 그러다 다시 깔깔대면서 대화를 하는 순간에는 잊기도 하고.
또 친구는 친했었었었던 공산주의자 선배 하나가 자본에 치여 자살을 했다면서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걔가 슬쩍 보여준 일기에는 담담하고도 슬픈 말들이 가득 가득 쓰여있었고 죽음의 맥락과 둘 사이의 스케치가 아름다운 글이었다. 원래 글로 먹고 살았던 글쟁이라 종종 쓰는 글을 좋게 읽고 있었지만 걔가 쓴 글 중에 제일 좋아보이는 건 일기가 스스로에게 읽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일까? 추도사를 써달란 부탁은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고 믿는 쪽이니까 고인이 그 아름다운 글을 봤으리라 생각하며 웃었다.
죽은 자의 일은 더이상 죽은 자의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방향이 되어야한다는 말은 어쩌면 죽음의 이유이자 본질인 것 같기도 해. 죽음의 파장은 언제나 남은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라면 그러면 죽은 사람의 영혼은 비로소 외롭지 않을까 더욱 외롭게 될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