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다
부부 대화법을 배우다
상담사 선생님은 '사랑의 지도' 미션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의 기색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다른 정리 과정을 통해 잠시 감정을 가라앉히고 전화의 시점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상담사 선생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30분쯤 지나 다시 물어주었다. 남편이 조금 전에 상담실 앞에서 다투어서 기분이 좋지 않고, 우리 사이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편이 우리 사이가 더 나아질 것 같지 않다고 말하니 정말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지만 튀쳐나가는 건 맨 마지막으로 미루자는 마음으로 참았다. 가만히 침잠하는 우리에게 부부 대화법을 적용해서 이야기를 풀어보자고 제안해 주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한 사람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 상대에게 말하기를 청하고 상대가 받아들인다면, 청자는 화자의 발화를 미러링 하면 된다.
부부대화법 익히기 123
1. 마주 보고 앉는다.
2. 누가 먼저 이야기할지 정한다.
3. 한 사람은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의 말을 따라서 말하는 미러링을 한다.
나: ★, 내가 좀 전 상담실 문 앞에서 싸운 일에 대해서 대화하고 싶은데, 이야기해도 될까?
남편: ♥의 말은 좀 전 상담실 문 앞에서 싸운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말이지? 나는 들을 준비가 됐어
나: 난 상담실 앞에서 남편이 내가 일상적으로 한 말에 대해서 “뭔 소리야? 너도 맨날 야식 먹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데?” 하고 말할 때, 목소리가 커지기도 해서 놀랐고 난 별 뜻 없이 질문을 한 건데 싸우게 돼서 당황스러웠어.
남편: ♥의 말은 좀 전 상담실 앞에서 ♥이 한 말에 대해서 “뭔 소리야? 너도 맨날 야식 먹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데?” 하고 말할 때, 내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그래서 놀랐고, 별 뜻 없이 한 질문에 대해서 싸우게 돼서 당황스러웠다는 말이지? 좀 더 이야기해봐 줄래?
나: 내 마음은 당황스럽고, 속상했고, 실망했어.
남편: ♥의 말은 당황스럽고, 속상했고, 실망했다는 말이지?
나: 응 맞아.
남편: 좀 더 이야기해봐 줄래?
나: 상담 와서 사이가 좋아지려고 하는 건데 사소한 걸로 싸우게 돼서 힘들어
남편: ♥의 말은 상담 와서 우리 사이가 좋아지려고 하는 건데 사소한 걸로 싸우게 돼서 힘들게 느껴진다는 말이지? 내가 이해한 것이 맞아?
나: 응 맞아.
남편: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나: 아니, 다 이야기했어. 들어줘서 고마워.
우리는 선생님이 제시해 준 부부 대화법으로 서로의 입장을 안전하게 나누었고, 상담실 앞에서 싸운 1분의 시간과 1시간의 냉랭함을 초기 진화 할 수 있었다. 미러링을 통한 부부 대화법은 상대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듣고 이해하고 발화하는 데에 핵심적인 목적이 있다. 그러나 너무 힘든 과정이다. 2시간 끝에 상담을 마치니 손끝 하나하나에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는 이런 파탄난 부부 관계를 하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날 짓눌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난 아무 말도,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