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어린 시절 상처공유하기 1
상담 선생님이 부부가 침대에 누우면 그 머리 위에 각자의 엄마 아빠 원가족의 부모가 함께 누워 있다는 비유를 하신다. 둘이 아닌 넷, 그 옆에 파트너의 부모까지 총 여섯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각자의 부모와의 관계, 혹은 부모가 아닌 주요 관계자와의 어린 시절이 현재의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든 모르든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어린 시절의 상처가 현재를 일정 부분 지배한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상처받은 자아는 회복하지 못하고, 어딘가 평생을 뒤틀려서 살아야 하는 걸까. 사안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현재의 내가 무력한 듯 느껴져서 어쩐지 힘이 빠져 버렸다. 어린 시절 상처 공유하기 파트에서 첫 상담시간에는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언뜻 잘 생각나지 않았던 어린 시절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나둘씩 에피소드로, 어떤 묵직한 감정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만, 신기하게도 힘들거나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잘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망각에 빠졌든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든 기억을 상기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집에 돌아와서, 노트를 펴고 어린 시절 주요 인물 관계도를 그려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형제, 작은 아빠, 작은 엄마, 친척들. 꽤 많은 인물들이 나왔다. 들었던 말, 보았던 장면, 느꼈던 감정들을 인물과 단어로 간략히 정리해 본다. 상처받은 것들도 있었고, 힘이 되었던 긍정적이었던 것들도 있었다. 어린 시절 상처로 느꼈던 감정이 현재의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예민 버튼으로 작동하는 포인트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는 환대의 태도였는데, 상대의 호응이나 태도가 감각적으로 낯설고 차갑다고 느낄 때 감정이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과정에서 좋았던 건 말 그대로의 문장 그 자체로 사건 그 자체로 뭉쳐져 있던 어린 시절 기억들이 나에게 어떤 감정과 생각을 만들었는가 분명히 할 수 있다는 거다.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많은 수 일탈하고 힘들게 살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니?”하는 발언은 공격이었고, 나는 그 과정에서 불안과 슬픔을 느꼈다. 차가웠던 부모의 표정과 갈등적인 조부모의 태도는 나에게 사랑이 회수되는 깊은 슬픔을 주었다. “살 좀 빼라”던 친척의 무례한 충고는 나에게 모멸감을 주고, 깊은 분노를 만들었다. 상담을 통해 어린 시절 결정적이었던 상처들에 대해서 파트너에게 하나씩 이야기해나갔다. 상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한층 나아졌고, 내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면서 정화되는 감정을 느꼈다. 부부상담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이해해줘서 감사해”. 어린 시절 상처공유하기 파트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건 남편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어린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