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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Jul 06. 2024

D+236) 육아 멘탈붕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아기를 재우고 저녁에 샤워하면서 꺼이꺼이 많이도 울었다. 살면서 이렇게나 모든 게 내 손에 잡히지 않고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기가 이유식을 먹일 때마다 죽이 묻은 숟가락을 수십 번 바닥에 던져서, 바닥에 떨어진 죽을 닦는데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눈물을 닦고 억지웃음을 짓는 나를 보더니 아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거기서 다시 출발해 보기로 했다. 왜냐면 나는 진심으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었다. 다시 '나는 지금도 충분히 좋은 엄마다.'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잘 살고 싶다. 아기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만 집중해 보기로 했다. 신세 한탄이나 후회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 마음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걱정을 할 확실한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그냥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작고 귀여운 아기도 있고 부부는 아직 젊은 이맘때, 아기를 재우고 나면 허겁지겁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에 바쁜 이맘때, 돈 버느라 아기 키우느라 놀러도 못 가는 이맘때의 아기가 가장 예쁘고 가장 잘 웃는 때인 것은, 어쩌면 의도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기와는 평생 함께하는 거이니 조금만 더 힘을 내야겠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너무 좌절하지도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감정기복 없이 항상 잔잔한 미소를 띤 온화한 어머니가 되고 싶다. 

아기 키워본 엄마들은 하나같이 그랬다.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을 때라고. 누가 그랬다. 아기가 누워만 있고 먹고 자기만 할 때가 좋을 때라고. 그냥 흘려 들었었는데 이럴 수가, 진짜다. 아기가 배밀이로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고, 이유식도 하루 두 끼 만들어 먹이고 치우느라 정신이 한 개도 없고, 이리저리 쿵쿵 부딪히고 위험한 물건을 만져서 따라다니느라 집안일할 시간이 부족하다. 자기표현도 늘어서 무언가를 조금만 못하게 제지해도 짜증을 팍 낸다.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아토피 증상이 심해졌는데, 이제는 가려움도 더 잘 느껴지는지 긁으면서 한층 더 괴로움을 표현하며 소리까지 지른다. 한편 맘마를 잘 먹고 응가를 잘하고 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지 꽥꽥 익룡처럼 소리를 내며 신나서 돌아다닌다. 


나의 육아 스킬이 업그레이드되고 몸이 회복되는 속도에 비해 아기가 자라서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챙겨야 할 것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더 빠름을 느낀다. 아기가 깨어있을 때 할 수 있는 집안일이 점점 줄어들면서 멘탈 붕괴가 오기 시작했다. 아기를 집중해서 놀아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집안일을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는 나날이 며칠간 이어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기가 감기에 걸린 데다가, 이유식을 잘 먹는다고 야채 양을 갑자기 늘려서 피부도 뒤집어지고 장염에 걸려 버렸다. 


안 그래도 식이알레르기가 심한 아이여서 쌀도 직접 갈아서 두 시간을 익혀 먹이는 아이인데 나의 불찰로 알레르기 테스트도 중단하고 갑자기 쌀미음만 먹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밤에 혼자 눕혀 놓으면 스르르 잠들던 아기는 어디로 가고 코가 막혀 엉엉 울어서 업거나 안아서 재워야 했고, 두세 시간에 한 번 깨서 우는 바람에 밤을 꼴딱 새야 했다. 장마철에 문화센터도 교회도 가지 못하고 집에 아기와 둘이 갇힌 것처럼 있으니 놀아주는 것도 한계가 오고 답답해서 점점 지쳐 갔다. 장염 회복을 위해 쌀미음도 따로 만들어야 하지, 알레르기 유발 요인을 공부하고 장염이 다 나으면 먹일 식재료도 정해야 하지, 아픈 아기 데리고 폭염에 병원 다녀와야 하지, 코 막히는 아기를 위해 식염수로 네블라이저도 해줘야 하지, 새벽에 기침하며 깬 아기에게 보리차 먹이고 달래서 다시 재워야 하지... 내가 쉬고 잘 시간이 점점 부족해지기만 했다. 남편이 아무리 퇴근 후 도와주어도 오롯이 내 몫인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아픈데도 배부르고 응가만 잘하면 활짝 웃는 아기가 안쓰럽고 고마우면서도,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잠도 못 자서 퀭한 내가 불쌍하기도 했다. 다른 것보다도, 평소 일할 때 미리미리 준비하는 데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일이 밀리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아기가 밤에 못 자고도 새벽같이 깨서 맘마를 찾는 통에 허겁지겁 이유식을 데우고, 데우는 동안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기를 분유 먹여서 달래고, 이유식 다시 먹이는 동안 아기가 응가를 해서, 응가를 허겁지겁 씻기고 아기의 몸에 묻은 음식을 씻긴 뒤, 아기 옷과 기저귀를 입히고 극렬히 거부하는 아기를 붙잡고 팔다리에 아토피 붕대를 해 주고, 다 먹고 어질러진 주방 치우는 동안 아기가 놀아달라고 칭얼거리고, 아기를 재우고 나면 허겁지겁 배달시킨 김밥을 먹으며 살림을 좀 하려고 하는 순간 아기가 깨어 버려서 빨래도 못하고 설거지도 못하는,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니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직 아기가 법정 전염병에 걸린 적도 없고, 이유식도 두 끼만 먹고, 엄청나게 순한 아기이고, 잠도 적당히 자는 아기이고, 제대로 기지도 앉지도 못하는 아기인데도 이 정도인데, 삼시세끼 차려 먹이다 복직하면 평일 새벽에 깨어 아기 아토피 케어하고 주말에 반찬 만들고 할 생각에 까마득하고 아득해졌다. 아기를 재우고 저녁에 샤워하면서 꺼이꺼이 많이도 울었다. 살면서 이렇게나 모든 게 내 손에 잡히지 않고 모래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아기가 이유식을 먹일 때마다 죽이 묻은 숟가락을 수십 번 바닥에 던져서, 바닥에 떨어진 죽을 닦는데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안 그래도 요리를 못하는데 시판을 할 수가 없어 하나하나 만들어 먹이는데 쌀을 밥솥에 두 시간 익히려니 전기밥솥도 압력밥솥도 불조절을 못해서 너무 여러 번 태워 먹었다. 안 그래도 아픈 아기를 하루 종일 달래느라 너덜너덜해진 손목이 탄 밥솥을 하루 종일 닦고 있자니 또다시 아려 왔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쓰러지듯 침대에 눕는데, 계속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다. 마음이 아직 많이 불안정한 나이기에, 처음 드는 생각은 역시나 '나 같은 사람이 어쩌자고 아기를 낳았을까'였다. 이 생각은 '나는 아기를 키울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 엄마네'로 이어졌고, '이런 엄마한테 태어난 아기가 불쌍하다'와 '이렇게 고생하는 내가 불쌍하다'로 이어졌다. 아무것도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아니, 그날 하루가 더욱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기가 웃으면 같이 웃으면 되는데 나는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닦고 억지웃음을 짓는 나를 보더니 아기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말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거기서 다시 출발해 보기로 했다. 왜냐면 나는 진심으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었다. 다시 '나는 지금도 충분히 좋은 엄마다.'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잘 살고 싶다. 아기를 잘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끓어오름을 느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만 집중해 보기로 했다. 신세 한탄이나 후회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 마음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우선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다음 태스크의 데드라인이 내 속도보다 너무 빨리 오는 것에 대한 압박감의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너무 모든 걸 완벽하게 미리 해 놓으려고 하는 습성이 문제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육아는 상황에 따른 대처를 빠르게 해야 되는데 자꾸만 계획 하에 두려고 하니 힘들었던 것 같다. 당장 하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는 경우에는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하니 산책을 나갈 때 집안일이 한두 가지쯤 되어 있지 않아도 그냥 입던 옷 입고 편하게 외출을 할 수가 있었다. 아기가 울더라도 너무 바로 해결해주려고 하기보단 1~2분 사이에 해결해 주는 쪽으로 바꾸니 압박감이 덜해졌다. 


아기가 배탈 난 것은 따져 보니 내가 부족한 엄마여서가 아니라 이유식 공부가 부족해서였다. 어떤 식재료가 알레르기 반응이 올라오기 쉬운지, 소화가 잘 되는지, 적절한 분량 등을 다시 공부하고 정리했다. 아토피 아기인 만큼 욕심부리지 않고 정말 천천히 진행을 해야 하며, 내가 먹인 야채 60g 은 너무 과한 양이고, 특히 우리 아기처럼 장이 약한 경우 티스푼에서 시작해서 10g 정도 아주 소량씩 테스트하고 먹여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돌즈음 까지는 분유나 모유가 주식이라 이유식을 급하게 진행할 필요도 전혀 없다는 것도 배웠다. 단지 내가 다른 아기들에 비해 진도가 너무 안 나가는 아기의 알레르기 테스트에 조바심이 났던 거다. 


엄마도 처음이고 아토피 때문에 영양 공급을 적기에 못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역시 근거 없는 걱정이었다. 걱정을 할 확실한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그냥 걱정을 하지 않기로 했다. 걱정을 줄이는 데에는 그냥 많이 공부하고 직접 해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다시 초기 이유식으로 돌아가 쌀미음부터 시작하니 아기의 피부도 장도 많이 안정되어 다시 야채를 시도할 수 있었다. 돌아보니 괜한 걱정은 많고 주의해야 할 부분에는 과감해서 아기를 거의 실험쥐로 삼은 것 같다. 99% 확실한 것이 아니면 아기한테 시도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육아를 하는 일상에서 압박감을 느끼는 건 내가 살림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했다. 아마 이건 요즘 엄마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 같다. 이제 육아 루틴이 생기면서 빨래나 청소 등 원래 하던 집안일은 조금 수월해졌지만, 요리는 이유식 야채 큐브를 소량 만드는데도 주방이 쓸데없이 어질러지고 냄비를 태우는 등 아직 많이 미숙하다. 옛날엔 친정엄마나 시어머님한테 배웠다지만 나는 핵가족이니 살림 관련 유튜브도 보고 검색도 해보며 랜선 친정엄마들에게서 노하우를 배울 수 있으니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아기가 방을 심하게 어지른다거나 무언가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떡하지" 보다는 "하나씩 해보자"로 바꾸기로 했다. "어떡하지"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어떡하지" 하고 멀뚱히 서 있다 보면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방법이 안 떠오른다. 일단 팔을 걷어붙이고, "해보자"라는 말로 시작해 본다. 문제 해결에만 집중하는 방식으로 어떤 일도 작게 쪼개어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막막한 일도 조금 덜 막막해짐을 느낀다. 




아기 장난감을 대여하러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어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어이구 힘들겠어. 이맘때부터 네 살 다섯 살까지가 제일 힘든데. 애기엄마가 고생이 많아요. 난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었어. 그래도 지나 보니 그때가 가장 행복했을 때였더라고." 지나가던 할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하지만 정말 지금이 가장 행복할 때라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런 게 아닐까? 이맘때의 아기가 가장 귀엽고 예쁘게 생긴 것은 어쩌면 엄마가 가장 힘들 때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작고 귀여운 아기도 있고 부부는 아직 젊은 이맘때, 아기를 재우고 나면 허겁지겁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에 바쁜 이맘때, 돈 버느라 아기 키우느라 놀러도 못 가는 이맘때의 아기가 가장 예쁘고 가장 잘 웃는 때인 것은, 어쩌면 의도된 것일 지도 모르겠다. 아기와는 평생 함께하는 거이니 조금만 더 힘을 내야겠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너무 좌절하지도 말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도 말고. 감정기복 없이 항상 잔잔한 미소를 띤 온화한 어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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