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obanker Jul 13. 2024

D+243) 한 뼘 성장하면 보이는 육아의 행복


죽을 만큼 힘든 날이 지나가면 이상하게도 갑자기 시간이 안 간다. 이게 육아에 적응했다는 신호인 것 같다. 엄마가 성장했다는 증거다. 이렇게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아기를 낳고 새롭고 강렬한 고통을 겪으면서 새롭고 강렬한 행복 또한 따라온다. 처녀 시절의 나는 음주가무를 좋아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거창한 꿈을 좇으며 행복을 찾았다면, 애엄마인 나는 매일 비슷한 하루에서 오는 안정감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변화와 소소한 행복을 더 추구하게 된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내가 점점 옅어지는데도 좋은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던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인지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기가 삶에 던지는 의미는 어마어마한 것 같다.

아기로 인해 이전의 내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껍질을 벗고 업그레이드된 나로 새로 태어나는 마법을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아이가 커감에 따라 계속해서 진화할 나 자신이 기대된다. 

죽을 만큼 힘든 날이 지나가면 이상하게도 갑자기 시간이 안 간다. 이게 육아에 적응했다는 신호인 것 같다. 분유만 먹이다가 이유식을 처음 먹일 때 무지하게 힘들었고, 한 끼에서 두 끼로 늘렸을 때도 그랬는데, 장염 때문에 한 끼로 다시 돌아가니 시간이 남아 돌아서 안 시키던 탕목욕도 시켜보고 내가 먹을 요리도 하게 된다. 엄마가 성장했다는 증거다. 이렇게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보다.


힘든 기간을 한 단계 극복하고 나면 보이는 육아의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먼저, 힘든 일이 마법처럼 힘들지 않게 느껴진다. 마음의 숙제 같던 이유식 만들기 시간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적응이 되니 아기가 맛있게 냠냠 먹을 생각에 즐거운 시간으로 바뀌었다. 비 오는 날 우비를 쓰고서 공짜 장난감을 한 보따리 얻어서 이고 지고 집에 오는데도 아기가 재미있게 가지고 놀 생각에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아기가 아프면 나도 옮아서 아픈데 아기를 돌보는 데 온 정신을 쏟다 보니 내 아픈 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응가 씻기는 일처럼 재미없고 지루하고 단순한 일도 내가 이 작고 연약한 생명체를 온전히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에 어느새 자랑스럽고 성스럽고 소중한 일로 느껴진다. 아니 어쩔 땐 그냥 뇌가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손이 알아서 일을 하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 표현하기가 어려운데, 내가 점점 옅어지는데도 좋은 감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산 후 너무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는데 이제 그 변화에 적응하게 되니 아기가 태어나기 전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금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회사일과 취미생활로 꽉 찬 일상이 갑자기 살림 반 육아 반으로 바뀐 것도 모자라, 머리가 빠지고 관절이 삐걱거리고 살이 죄다 축축 늘어지는 신체의 변화, 그리고 여자친구에서 아내로 아내에서 다시 엄마로 무려 5년이라는 시간 안에 너무도 많은 역할의 변화. 철저히 나 위주로 생각하던 삶에서 아기를 중심으로 도는 위성이 되는 삶에 적응하기까지. 아마 평생 걸릴 일일 테지만 그래도 아기가 태어난 지 어느덧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조금은 익숙해진다. 사진첩엔 온통 아기 사진뿐이고, 어느새 나에 대해서는 자랑할 거리가 없고 아기 자랑만 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던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사람인지도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아기가 삶에 던지는 의미는 어마어마한 것 같다.


아기를 키우면서 내가 한층 성숙한 인간이 되어감을 느낀다. 이 녀석은 나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도저히 피곤해서 못할 것 같아도 비몽사몽 하며 아기를 안아서 달래고 있고, 남편이 늦게 퇴근해도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목욕도 시키고 아기 업고 쓰레기도 버리고 오는 씩씩한 사람이 되었다. 이 녀석이 태어난 이후로 정전이 되면 어쩌지,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하지, 하다가도, 집안일도 더 제대로 하게 되고, 돈도 더 아끼게 되고, 미래 계획도 더 체계적으로 세우게 되고, 훨씬 부지런해진다. 나만의 특수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살아온 날들이 힘들어서 오로지 나 위주로 생각하던 버릇을 드디어 별다른 노력 없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아기에 대한 건 의도적으로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본능이고 자연스러우니까.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내가 아닌 사람을 0순위로 생각하게 되니까. 내 밥은 인스턴트 먹어도 아기는 유기농만 먹이게 되는 그런 거다.


나의 경우에는 아기로 인해 비로소 가족이 완전체가 되었다는 기분이 든다. 우리 부부가 일과 집 외에 딱히 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럴지 모르지만, 남편과 둘이 살 때는 일상에서 새로울 것이 점점 없어지고 있었는데, 아기를 키우니 하루도 새롭지 않은 날이 없다. 어떤 날은 아기가 와앙 하고 크게 울어서 평소에 잠귀가 어두운 남편이 깨어나 새벽에 둘이서 아기를 달래고 놀아주며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어떤 날은 아기가 갑자기 못 하던 동작을 하거나 이가 뿅 나서 그걸 화젯거리로 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아기가 배밀이를 하며 머리를 쿵 부딪혀서 어릴 적 얼마나 다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남편은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할 엄청난 동기를 부여받은 듯하고, 나는 못 하던 요리와 살림을 어떻게든 해내야 하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이 작은 친구로 인해 가족이 생동감을 얻고 한층 더 단단하고 안정되어 감을 느낀다.


아기 덕분에 어른들과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도 좋다. 아기가 없을 때는 그냥 주기적으로 생일이나 명절에 모여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대화를 했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시부모님이 남편을 키우실 때의 이야기도 자주 듣게 되고, 그저 손주가 보고 싶어서 만나서 나에게 맛난 것 사주고 가실 때도 많다. 시어머님이 육아 선배로 느껴지면서 아기 키우면서 겪는 이야기들을 하면 이해해 주시고 조언해 주시니 좋다. 아기를 키우면서 어릴 적 나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고,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의 사랑을 회상하게 된다. 할머니는 어떻게 사 남매를 키우시고도 나를 또 키우셨을까 하는 존경심이 일기도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인생의 2막이 열렸다. 새로운 관심사가 생겼다. 길 가다가도 좋은 유모차를 보면 마음속에 찜해두게 되고, 아기 먹일 신선한 식재료를 파는 동네 가게도 눈도장을 찍어 둔다. 가죽 바지와 털 달린 외투를 입고 유럽을 누비던 내가 챙이 달린 모자를 매칭하며 아기 엄마의 패션은 어떤 게 멋스러운가 고민하고 있다.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전업주부 엄마들과도 친구 할 수 있다. 또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아기에게서도 예쁜 점을 찾아낼 수 있고, 당근 판매를 하면서 물건을 잘 팔리게 만드는 능력이 내 안에 숨어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 반대로 기존에 갖고 있던 스킬이 의외로 소소하게 육아에 쓰이는 경우도 있다. 하루를 밀도 있게 보내기 위해 우선순위 순으로 계획하는 것이나, 몇 개 안 되는 장난감으로 다양하게 놀아주는 방법을 만들어내는 창의력 같은 것들이다. 리서치해서 문서로 정리하는 스킬은 아기 아토피에 대한 온갖 정보를 찾아서 나만의 위키를 만드는 데에 쓰고 있다.


인생에 정답은 없겠지만, 지금까지 깨달은 바로는 고통을 없애는 데에 집중하면 행복해지기가 어렵다. 고통이라는 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고통이 없어지려면 고통을 인지하는 내가 없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프게도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없애기 위해 자살을 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고통을 극복했을 때 새로운 행복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고통은 내 인생에 언제나 항상 존재해 왔다. 그 정도가 남들과 다를 뿐. 아기를 낳고 새롭고 강렬한 고통을 겪으면서 새롭고 강렬한 행복 또한 따라온다. 처녀 시절의 나는 음주가무를 좋아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거창한 꿈을 좇으며 행복을 찾았다면, 애엄마인 나는 매일 비슷한 하루에서 오는 안정감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변화와 소소한 행복을 더 추구하게 된다.


물론  여전히 엉엉 울면서 해내고 나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빠르게 적응하는 것이나, 다양한 음악을 즐겨 듣는 것이나, 책 읽고 사색하길 즐기는 것이나, 새롭게 배우고 써먹는 걸 좋아하는 나의 중심부는 변하지 않는다. 요즘은 정말 나의 자아를 해체하고 새로운 피스를 사서 조립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기에게 불러주느라 동요만 듣다가 추천 곡이 떠서 학창 시절 좋아하던 지오디의 노래를 메들리로 들었다. '촛불하나'와 '길'이라는 두 노래의 가사가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닿는다.


태어났을 때부터 삶이 내게 준 건
끝없이 이겨내야 했던 고난들뿐인걸
그럴 때마다 나는 거울 속에 나에게 물어봤지, 뭘 잘못했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내게만 이래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내일 또 모레

하지만 그러면 안 돼
주저앉으면 안 돼
세상이 주는 대로 그저 주어진 대로
이렇게 불공평한 세상이 주는 대로
그저 받기만 하면 모든 것은 그대로
싸울 텐가 포기할 텐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말 텐가
세상 앞에 고개 숙이지 마라, 기죽지 마라 그리고 우릴 봐라


- GOD, '촛불하나' 중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인지 명옌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만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걷고 싶지만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나는 무엇을 꿈꾸는가
그건 누굴 위한 꿈일까
그 꿈을 이루면 난 웃을 수 있을까?

오, 지금 내가
어디로, 어디로 가는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살아야만 하는가


- GOD, '길'


지금 내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 귀여운 아기는, 분명히 나의 작고 큰 선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지금 아기를 키우며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어디로 향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적당히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화목한 가정 속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들었고 거창한 꿈을 접게 되었지만, 아기를 키우면서 더 거창한 꿈들이 내 안에 자라남을 느낀다. 아기를 다 키우고 나면 고아원을 차리거나 봉사를 하겠다는 꿈이 생겼고, 아기의 아토피를 케어하면서 겪은 일들을 책으로 내고 싶어졌다. 아토피 아기를 케어하면서 양가 도움 없이 어려운 조건에서 일도 계속해 보고 내가 겪은 일들을 소재 삼아 강단에 서서 강연도 해보고 싶어졌다. 아기로 인해 이전의 내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껍질을 벗고 업그레이드된 나로 새로 태어나는 마법을 경험하고 있다. 앞으로 아이가 커감에 따라 계속해서 진화할 나 자신이 기대된다. 

이전 22화 D+236) 육아 멘탈붕괴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