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obanker Jul 20. 2024

D+250) 육아는 디테일이 생명  

남편에게 노력해도 잘 안되는 디테일을 이것저것 내 기준에 맞춰서 챙겨 달라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 

'독박육아'라는 말을 모르는 엄마는 없을 거다. 아빠의 육아참여도가 낮다는 걸 그런 식으로 표현하곤 한다. 맞벌이든 외벌이든 아기 보는 걸 도와주지 않는 아기 아빠가 원망스럽고 혼자 아등바등하는 하루하루가 힘든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육아가 엄마 차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뱃속에서부터 아빠보다는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그렇지만, 육아는 디테일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성향상 큼직큼직한 건 잘 보는데 디테일에서 놓치는 경우가 많다. 업무적 디테일을 챙길 때는 숫자 단위나 오타 같은 것들을 귀신같이 찾아내던 사람도, 아기 볼 때는 남자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알기 어려운 종류의 것들이 많다. 물론 나도 남자가 아니기에 남편이 정확히 어느 정도로 느끼는지는 모른다. 엄마이기에 알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임신했을 때 등에 소양증이 생겨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연고를 발라 달라고 하면 거친 손바닥으로 벅벅 문지르곤 했던 남편에게, 최대한 피부에 자극이 가지 않게 살살 두드려 줘야 하는 아기 연고 바르기를 맡기기는 뭔가 불안하다. 신생아 시절, 가장 쉬운 분유 먹이기 태스크를 남편에게 맡겼을 때 수유시트에 아기를 정면 보는 자세로 해서 배 위에 올려놓고 젖병을 쥔 채로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분유 먹일 때 젖병을 돌려가면서 피쉬랩이 되게끔 해줘야 되고, 분유가 기도에 걸리지 않게 각도도 조절해 줘야 되고, 아기가 먹다가 고개를 돌리면 따라가서 다시 물려야 되는 등 챙길 게 정말 많은데 그걸 말해줘도 남편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조차 어려워했다. 그래서 아직도 남편은 육아가 적어도 내가 느끼는 것보다는 쉽다고 생각한다. 


평소에는 아기가 졸려하면 침대에 눕히고 쪽쪽이를 물려주면 놀다가 잠이 든다. 하지만 긁거나 아파서 안아 재워야 할 때는 푹신한 엄마 품에서 가려운 곳도 살살 긁어 주며 적당히 흔들며 재워야 잘 잔다. 목욕시키고 나서 아기 옷을 입힐 때도 그냥 소매에 얼굴 끼워 넣고 손 끼워 넣고가 아니라 아기가 팔 굽히는 타이밍에 소매에 내 손 넣어서 아기 손 잡고 스무스하게 불편하지 않게 넣어주는 게 좋다. 기저귀를 교체할 때도 응가가 새지 않도록 잘 여며 주는 스킬이 있는데 아무리 설명해도 내가 하느니만 못하다. 


나는 빨래를 개면서도 아기가 넘어질만한 동작을 하려고 하면 미리 가서 다치지 않게 손을 대고 있는데 남편은 그냥 부딪히면서 배우는 거라고 아기가 머리를 쿵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유식을 먹일 때도 아기 피부가 약해서 되도록 턱에 흘린 음식을 긁어서 먹이면 안 되고, 대신 수저를 높게 기울여 아기가 수저에 있는 음식을 최대한 입에 넣게 해 주면 되는데 남편이 먹이면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지킬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모두 하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지만 엄마가 하는 게 아기한테 더 좋은 것들이다. 나의 경우에는 이런 디테일을 포기할 수가 없기에 남편에게 육아를 맡기지 못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남편이 퇴근하고 아기를 봐주는 동안 잠깐 샤워를 하러 갈 때도 아기에게 뭘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하루 종일 아기와 시간을 보내며 아기의 짜증 내는 타이밍이나 행동 패턴을 더 잘 아는 내가 육아 스킬이 더 좋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남편에게 매뉴얼을 만들어주고 하라고 해도 잘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그럴 때는 엄마인 나의 존재이유를 다시 한번 체감하곤 한다. 왜 나만큼 못하냐고 잔소리를 해도 더 잘하기가 어렵고 남편의 기분만 상하기 때문에 지양하려고 한다. 


요즘은 맞벌이가 많은 만큼 남편분들의 육아참여도가 높아져서 정말 세심하고 꼼꼼한 아빠도 많이 보았다. 문화센터에 엄마가 아닌 아빠랑 같이 오는 아기들도 있다.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는 것 자체로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다만 '내 남편은 왜 저렇게 세심하지 못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 나만 괴로워지는 것 같다. 가장으로서 밖에 나가서 회사생활 성실하게 하고 집에 와서 아기랑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나게 놀아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좋은 아빠라고 생각한다. 육아보다는 빨래를 개어주는 등 누가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맛있는 배달음식 시켜주는 게 더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육아 관련 살림도 내가 해야 편하지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그릇 정리만 맡겨 보아도 아기 보느라 급하게 써야 하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못 찾아서 불편하다. 


그런 생각을 한다. 아기가 엄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절대 나쁜 일일 리가 없다. 엄마와 99%의 시간을 함께 하고 나머지 1%만 아빠와 보내더라도, 그 1%의 시간이 아주아주 신나고 즐거워서 아기가 아빠를 좋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너무너무 바쁜 아빠들이 많다. 바쁨 속에서도 아기와 짬을 내어 양질의 시간을 보내고,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아내를 도울 마음만 있다면 엄마도 행복하고 아기도 행복하게 잘 자랄 것이다. 그리고 엄마인 나도 그런 남편에게 노력해도 잘 안되는 디테일을 이것저것 내 기준에 맞춰서 챙겨 달라고 요구만 할 게 아니라 고마운 마음을 가지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 

이전 23화 D+243) 한 뼘 성장하면 보이는 육아의 행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