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유는 바로, 내가 엄마가 된 걸 인정하지 못해서였다. 아무도 나에게 엄마가 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그런데 그 명명백백한 사실이 그동안 실감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제는 아기 엄마이기에 이전에 누리던 행복을 그대로 누릴 수 없다는 걸,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드디어 깨달은 거다. 그 깨달음을 얻고 나서 말도 안 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신혼 때의 소소한 행복이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다. 육퇴 후에도 아기 동영상을 보면서 깔깔거리는 나 자신이 어색하지만 그게 지금의 내 행복인걸. 이제야 엄마가 되어가는 것 같다.
더 이상은 우울한 마음에 파묻히느라, 혹은 그 화살을 남편한테 돌리느라 지금 아니면 못 보는 아기의 모습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기를 보면서 살림을 챙기는 것 자체가 안 하던 일이라서 힘든 것 말고, 자꾸만 알 수 없이 눈물이 나는 이유를 드디어 깨달았다. 그 깨달음 이후로 마음에 한 차례 큰 평화가 찾아와서 꼭 기록해 두고 싶었다.
그 이유는 바로, 내가 엄마가 된 걸 인정하지 못해서였다. 아침에 아기가 일어나면 배가 고프다고 울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벌떡 일어나서 맘마를 차려 줘야 하는 것도, 허겁지겁 아기 맘마를 차리느라 내 밥은 까먹어서 먹은 자리 치우면서 아기가 남긴 맘마에 소금 쳐서 식사를 때우게 되는 것도, 매일 옷장을 열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데 옷을 살 겨를도 마음도 자꾸만 없어지는 것도, 커피챗 약속을 잡아 두었는데 아기 재우느라 놓쳐버린 것도, 어딜 가나 아기랑 항상 붙어 다녀야 하는 것도, 아기가 유모차 타는 걸 힘들어하고부터는 쉽사리 혼자 음식점에 가서 주문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기 관련 집안일이 늘어나고 대부분 내 차지가 되는 것도, 이 모든 것이 다 '내가 엄마가 되길 선택해서'인 걸 자꾸만 망각해서였다.
아무도 나에게 엄마가 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시어머님도 부담 주신 적 없고 남편도 자녀 계획을 가지고 압박을 준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아기가 생기면 꼭 낳아야지 하고 생각했던 건 나 자신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육아가 어렵고 평생 숙제인 줄은 몰랐지만 그걸 다 알고 낳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거다.
그런데 그 명명백백한 사실이 그동안 실감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아기가 자든 말든 상관없이 씻고 밥을 먹고 유튜브도 보는 남편이 미워 보였던 이유는 다 내가 엄마 된 것을 마음속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지 못해서였다. 이제는 처녀 때 혹은 신혼 때처럼 맛집 찾아다니고, 느긋하게 꼭꼭 씹어서 밥 먹고, 영화관에 가서 액션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러 가고, 친구와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넷플릭스 드라마 하루 종일 정주행하고, 회사 업무를 집에까지 끌고 오거나, 자기 계발을 위한 책들을 밤새 읽는 게 한동안 어렵다는 걸, 여태까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람이기에 당연히 몸이 편한 게 좋고 하고 싶은 게 많다. 하지만 이제는 아기 엄마이기에 이전에 누리던 행복을 그대로 누릴 수 없다는 걸, 이제는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드디어 깨달은 거다. 그 깨달음을 얻고 나서 말도 안 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신혼 때를 떠올려보면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송두리째 없어지고 육체노동으로 채워진 건 맞다. 평일에 퇴근하면 회사 앞에서 맛난 저녁 한 끼 사 먹고, 집에 오면 소파 리클라이너에 편안하게 기대어 남편과 유튜브를 보며 꾸벅꾸벅 졸곤 했다. 주말엔 치킨을 시켜서 넷플릭스를 정주행 하기도 하고 외식이나 쇼핑도 종종 다녔다. 지금은 평일 주말 구분 없이 하루 종일 아기 케어와 집안일에 앉아서 쉬는 시간이 육퇴 후 한 시간 정도가 전부이니 정말 삶이 팍팍해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신기한 건,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신혼 때의 소소한 행복이 그렇게까지 절실하지 않다. 육퇴 후에도 아기 동영상을 보면서 깔깔거리는 나 자신이 어색하지만 그게 지금의 내 행복인걸. 무슨 옷을 살까 고민하는 대신 아기 발달 과정에 맞는 장난감을 고민하는 게 은근히 귀찮으면서도 재미있는걸. 아기가 하루하루 커가면서 예쁜 짓이 늘어가는 걸 남편이랑 같이 공유하는 게 처음 느껴보는 벅찬 행복인걸. 내 머리랑 옷은 좀 부스스하고 대충 입어도 아기 머리핀이랑 예쁜 원피스 입혀서 밖에 나가면 할머니들이 이뻐라 해주시는 게 새로운 내 보람인걸.
이제야 엄마가 되어가는 것 같다. 아기 문화센터 수업 시간 직전에 5분 짬을 내어 내 옷을 골라 봤다. 얌전히 두리번거리던 한 달 전과는 다르게 또 어서 내려 달라고 땡깡 부리는 아기를 어르면서 계산을 후다닥 하고 나오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쇼핑을 하러 가면 세월아 네월아 이 옷을 살까 저 옷을 살까 하던 나는 어디 가고, 남편이 옷 고를 때처럼 지난번 들렀을 때 점찍어 놨던 옷 한 벌을 휘리릭 집어 들고 나오는 영락없는 아기 엄마다. 옷을 고르는 기준도 살짝 바뀌었다. 어깨가 좁은 나에게 어울릴 만한 상의를 고르는 매의 눈은 여전하지만, 산책 나가거나 교회 갈 때 휘리릭 걸치기 좋은 편하면서도 단정한 옷인지, 아기띠를 했을 때 얼굴을 비벼도 상처가 나지 않을 만한 소재를 어느새 신경 쓰고 있다.
마음이 새로워지니 하루하루 커가는 아기가 더 예뻐 보이고 일분일초가 아쉽다. 한 달 전 찍은 영상을 보니 지금이랑 비슷하지만 약간 더 앳된 아기가 나를 보고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 있다. 더 이상은 우울한 마음에 파묻히느라, 혹은 그 화살을 남편한테 돌리느라 지금 아니면 못 보는 아기의 모습을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기가 이렇게 빨리 크다간 금방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나고 나는 할머니가 되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요즈음은 안아주면 폭 안겨 있기보단 여기저기 물건들을 만지고 돌아다니기 바쁜 아기가 걸어 다니기 시작하면 또 얼마나 빨리 엄마 품을 떠날까 싶어서, 아기를 돌보는 시간이 지루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집안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해서 아기 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복직을 하면 아기 볼 시간도 없을 텐데 지금 이 찬란한 순간을 최대한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