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obanker Aug 10. 2024

D+271) 어린이집 입소를 앞두고


이상하게도 어린이집 문자를 받고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황당한 감정이었다. 해방감, 허전함, 설렘, 걱정, 기대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제야 육아와 살림을 하루종일 하는 루틴에 조금 익숙해졌는데, 다시 출퇴근에 하루의 대부분을 쓰는 패턴으로 바꿔야 한다니 조금 막막하다.


어린이집에 '당첨'될 날만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응하기 쉽지 않은 육아와 살림만 하는 일상, 하고 싶은 것들을 억누르며 먹고 자는 것만 해결하기에 급급한 매일,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쉽게 만나지 못하는 불편함을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신문 볼 시간도 부족하고 어휘력도 점점 떨어져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일찌감치 적응시키고 감을 더 잃기 전에 어서 복직을 하고 싶었다. 체력이 바닥나서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하고 싶었다.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했던 것 같다. 어서 아기가 어린이집에 입소하게 해달라고.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리도 빨리 올 줄이야. 이상하게도 어린이집 문자를 받고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생전 느껴본 적 없는 황당한 감정이었다. 해방감, 허전함, 설렘, 걱정, 기대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제야 육아와 살림을 하루종일 하는 루틴에 조금 익숙해졌는데, 다시 출퇴근에 하루의 대부분을 쓰는 패턴으로 바꿔야 한다니 조금 막막하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소분해 놓은 유산균따뜻한 물에 개어 먹이고, 침구 청소기 돌리고 편백수 뿌리고, 세균 없애겠다고 매끼 냄비에 이유식 끓여서 식혀 먹이고, 맘마 묻은 얼굴과 손을 물로 닦아준 뒤 연고를 바르고 붕대를 씌우고, 저녁에 통목욕 후 또 연고와 붕대. 낮에 긁는 아기를 부여잡고 식염수로 팩 해주고 연고 바르고 붕대 갈아주고, 장난감으로 관심 환기시키고. 낮잠시간에 비타민D 조사기 쬐어주고. 환기시키고 곰팡이 청소하고. 매일매일을 타이트한 긴장감 속에서 쉴 새 없이 아토피 아기를 케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하게 하고 있어서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려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모든 걸 어린이집 선생님께 온전히 내맡겨야 한다는 게 몹시나 우려되기 시작했다.


직장을 그만두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직장에서 잘 나가거나 일을 완벽하게 하는 건 바라지도 않을 테니 그만두지만 않게 도와 달라고 남편에게도 얘기했었다. 혹시라도 어린이집 입소가 안 되어 복직을 못 하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내 손길과 눈빛을 하루종일 필요로 하는 아기를 11시간 가까이 떼어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이제야 피부로 다가오는 거다. 내가 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기와 붙어있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껴졌다. 차라리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다면, 아무 걱정 없이 사랑하는 아기와 24시간 질리도록 붙어 있다가,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일을 시작해 봤을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어린이집에서 문자가 오자마자 걱정과 기대를 한껏 안고 전화를 걸어 입소 상담을 신청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데려가는 길에도 심장이 두근두근, 과연 갓 10개월 된 아토피 있는 아기를 내가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래저래 싱숭생숭해 발걸음이 갈지자로 흩어졌다. 걱정이 무색하게 원장님은 대화가 너무 잘 통했고, 어린이집은 시설도 거리도 괜찮았고, 아토피 있는 친구들도 많이 다닌다고 했다.


물론 지금이야 모든 게 좋아 보이겠지만 혹여나 아나필락시스가 왔을 때 허벅지 주사를 놔줄 수 있는지, 이런 것들이 걱정이 되어 당장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들도 몇 가지 물어보고야 말았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나에게 원장님은 너무 조심스러워할 필요 없이 궁금한 건 다 물어보시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하셨다. 하지만 복직 후에 어린이집을 옮길 수도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는 '슈퍼을'의 상황에서도 괜찮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나에겐 선택권도 없다. 아토피 있는 아이를 싫은 내색 없이 받아줄 어린이집이라면 일단은 보내야 한다는 걸 안다. 복직 시기에 맞춰서 다른 어린이집에 입소가 될 지도 불확실하고, 아이가 그 어린이집에 다시 적응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입소 날짜를 듣고 꼭 입소를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머릿속이 이런저런 걱정과 기대로 복잡해졌다. 이유식 세끼와 간식까지 싸서 보내야 하는데 직장 다니며 내가 할 수 있을까, 아토피 케어는 어디까지 부탁드려야 하나, 0세 반이 새로 생겼다는데 괜찮을까, 밤에 가려워서 낮잠을 많이 잘 텐데 낮잠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어떡하지,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 전까지 뭘 해둬야 할까, 등하원 도우미는 언제 구해야 할까, 복직은 언제 확정해야 할까, 등등. 생전 해본 적 없는 고민들이 시작되었다. 아기 아토피를 위해 하고 있던 노력들과 치료 방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해야만 하는 것, 저건 선생님께 부탁드릴 것. 이렇게 분류도 해 봤다. 아침에 잠깐 발목 붕대를 벗겨둔 사이 긁어서 피칠갑을 한 아기를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많이 가려워서 긁었나 보다. 손톱을 짧게 깎아 주었는데도 상처가 꽤 깊다.


이상하게도 어린이집 입소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난 순간부터 아기가 나에게 더 안기고 칭얼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기와 보내는 평범한 하루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서 매 순간 더 신나게 놀아 주고 더 많이 안아주려는 내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나와 눈이 마주치면 방긋 웃어주는 아기, 특유의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내가 웃으니 자꾸 그 행동을 반복해서 하는 아기.. 사랑스러운 우리 아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눈시울이 자꾸만 붉어진다. 아기에게 나도 모르게 말을 걸고 있다.


아가야, 엄마가 너를 낳고 나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정말 많은 게 변했구나.

처음 몇 달은 몸이 아픈데 너도 돌봐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는 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했고.

몸이 괜찮아지니 네가 부쩍 크면서 해야 할 일이 많아져 버겁던 날들도 생겨났다.

내가 우울하니 기분전환을 하겠다고 아토피가 있는 너를 데리고 한여름에 숨 막히는 더위에도 산책을 그리도 많이 나가고 교회도 꼬박꼬박 나갔지.

그리고서 더 가려워서 긁는 너를 보며 다시 눈물을 쏟는 날들을 여러 번.

아토피가 있는 아가들은 문화센터도 잘 가지 않는데, 부쩍 집에만 있는 것에 질려하는 너를 보며 세상 구경 시켜준다고 데리고 나갔다가 널 감기에 두 번이나 걸리게 했어.

엄마도 같이 아프고, 감기에 걸렸을 뿐인데 피부도 안 좋아지고 이유식도 소화를 더 못 시키는 널 보며 밤에 이불속에 숨어 꺽꺽 참 많이도 울었다.

엄마가 언제 제일 많이 울었냐면, 네가 너무나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잘 놀다가도 가려움에 못 이겨 긁다가, 장난감을 만지다가, 또 긁다가, 너무 힘들어서 울며 엄마에게 기대고 싶었을 때, 엄마가 집안일을 하느라 바로 달려가 안아주지 못했을 때. 그리고 다시 달려가서 조금 놀아줬을 뿐인데 너무나도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활짝 웃는 널 봤을 때야. 그날은 정말로 미안하고 고마워서 억장이 무너졌다.

큰 병원에 예약을 해 두고도 네 가녀린 팔에서 피를 뽑는다는 게, 그리고 그 고생을 시켜도 확실하게 나아지는 건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예약을 취소하고, 밤을 새워 공부를 하고, 너에게 적용시키는 동안, 벌써 네가 이렇게 많이 커 버렸네.

땀이 안 나던 네가 어느덧 열심히 배밀이를 하느라 땀으로 옷이 흠뻑 젖기도 하고, 짚고 서기도 하고, 네발기기도 하고, 짝짜꿍도 하고 있네.

신생아 시절의 너의 영상을 보니, 벌써 그때의 네가 그립다. 감각이 덜 발달해서 잠귀도 어둡고 가려움도 잘 느끼지 못하면서, 어떻게 엄마인 줄 알고 방긋 미소 짓고, 이런저런 옹알이로 행복하게 해 주었던 거니.

네 증상이 악화되는 여름은 이제 엄마에게 최악의 계절이 되었고, 아침잠이 많던 엄마는 어느새 종달새가 되어 있네.

너를 키우면서 엄마는 훨씬 더 많이 울지만, 또 훨씬 더 많이 웃기도 하고 있구나.

너와 만나고부터 엄마는, 훨씬 더 씩씩해지고 또 강해지고 있구나.


아가야, 천사 같은 우리 아가야.

엄마한테 와 줘서 고마워.

엄마는 네가 참 좋다. 다른 음식에는 두드러기가 올라와 소고기 쌀죽만 하루에 두 끼를 매일 먹는데도, 매번 냠냠 아기새처럼 잘 받아먹고 잘 크는 네가, 유모차를 태우면 오래지 않아 스르르 잠드는 네가, 너무 기특하고 고맙다. 조금만 같이 있어줘도 천사같이 웃고 있는 네가 너무 예쁘다. 졸려해서 침대에 눕혀 놓으면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엄마한테 와서 폭 안겼다가, 일어서서 커튼을 휘젓다가, 뒤로 발라당 누웠다가, 발가락으로 장난도 치고, 다리도 발레리나처럼 번쩍 들어 올리는 네가, 엄마아빠 입을 상한 소리를 내며 확 낚아채는 네가, 동요가 나오면 앞뒤로 덩실덩실 바운스 댄스를 추는 네가, 너무 웃기고 재밌다.

네가 다른 아기들처럼 피부가 좋았더라면 얼마나 키우기가 편했을까, 조금만 더 가벼웠으면 손목이 덜 아팠을 텐데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는 못난 엄마인데도, 너는 언제나 그렇게 엄마를 보면서 방긋방긋 웃고 있네.

미안해, 안으면 부서질 것 같은 너에게 약을 먹이기 두려워, 밤새 긁고 싶어 하는 손을 꽁꽁 묶어 두었던 것도. 아침에 눈 뜨자마자 피부가 나빠져 있으면, 네 예쁜 얼굴을 보고도 울상을 지었던 것도. 엄마의 내면의 상처와 감정 기복을 해결하느라 너에게 좀 더 집중하지 못한 것도. 잠들 때까지 자장가도 좀 더 불러줄 걸, 피곤하고 잠들기까지 기다리기 힘들다고 늘 먼저 잠들어 버리는 것도. 전부 미안해.


엄마가 일이 너무 하고 싶고 해야 해서 너를 다른 사람 손에 하루 종일 맡기게 될 거야. 아직은 엄마 밖에 모르고 엄마가 너무 필요한 너와 시간을 온전히 보내지 못하게 되어서 미안해. 곧 자주 아프게 될 텐데, 가려움만으로도 힘든 널 일찍 단체생활에 밀어 넣어야 하는 게 못내 미안하다. 어릴 적 엄마도 어린이집에 종일 맡겨져 있어서 엄마 품에 하루 종일 안겨있는 게 소원이었거든. 엄마를 하루종일 그리워하며 벅벅 긁고 있을 널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일을 해야 한단다.

일을 해야 엄마는 더 건강한 마음으로 너를 돌볼 수가 있어. 일을 해야 엄마는 네가 자랐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더 많이 지원해 줄 수 있어. 

어릴 때 엄마품에 충분히 안기지 못해서 마음에 구멍이 있는 엄마도 이렇게 밝게 잘 자라서 너를 낳아 사랑을 주고 있으니 너도 분명 잘 자랄 거라고 믿는다. 엄마가 꼭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내니가 키우는 아이들도 많으니, 어느 정도의 결핍은 다들 가지고 살아가는 거라고, 완벽한 부모는 없다고, 엄마 스스로 수십 번 다독여본다.

그러니 어린이집에 가서는 가려운 것도 잊을 만큼 더 많이 걷고, 뛰고, 친구들이랑 장난감도 재미있게 가지고 놀으렴.

엄마는 집안일을 하느라 혼자 두는 시간이 많았는데, 선생님들과 친구들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꽉 찬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저녁에 만나서, 엄마랑 목욕을 하고 잠에 들면, 꿈속에서 엄마랑 만나서, 네 즐거웠던 하루를 꼭 이야기해 주렴.

그리고 주말에는 엄마랑 아빠랑 하루 종일 부둥켜안고서 서로를 충전하자. 저녁에 잠깐 보는 아빠랑 노는 시간이 더 신나듯이, 주말에 잠깐 보는 우리 가족의 시간이 더 소중해질 거야.




아기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

아기와 보내는 잔잔한 하루하루가 그렇게나 소중한 건지 이제야 깨닫는다.

한편으로 직장에 복귀할 생각에 상당히 설레기도 한다.

이런 양가감정에 휩싸인 상태로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나는 이제 엄마니까, 씩씩하게, 하루하루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왠지 마음이 촉촉해지는 요즘이다.

아기를 키우며 메말랐던 마음이 자꾸만 촉촉해진다.

직장에 복귀할 때까지 이 촉촉한 마음을 잘 담아 두었다가, 또다시 메마를 때마다 꺼내 보아야겠다.

자꾸만 눈물이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