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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Aug 24. 2024

D+285) 귀한 손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자녀를 인생에 찾아온 손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듯이 육아의 최종 목표는 아이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나한테서 나왔지만 언젠가는 나를 떠나갈 이 귀한 손님에게 무례하지 않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기는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기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아기를 태어나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 찾아온 이 귀한 손님이 나중에 돌아갈 때 잘 놀다 간다고 행복했다고 하면 그걸로 됐다. 

아기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마음먹은 대로 행동해주지 않는다. 아기도 엄연한 하나의 인격체다. 내 몸에서 나왔다고, 내가 만들어냈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돌보다 보면 정말 속상할 때가 많다. 아기가 가장 예쁜 돌 즈음 육아 난이도가 갑자기 상승하는데 누워만 있던 아기가 일어서서 집안 곳곳을 탐색하고 좋다 싫다 표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응가를 씻길 때 방해꾼처럼 내 안경을 벗기고 머리를 잡아 뜯는 아기에게 '이렇게 하면 엄마가 응가를 못 씻겨주는데'라고 말하고서는 혼자 피식 웃었다. 너무나도 순진한 얼굴로 헤헤 웃고 즐거워하며 안경과 머리를 잡아당기는 아기에게 내가 무슨 화를 내리.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면 우는 척을 하며 떼를 쓰는 아이 덕분에 10분이면 끝날 일이 30분이 걸리기도 하지만 아기는 그 자체로 그저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토피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엄마 몸에 있는 독소를 아기가 끌고 나와서 엄마는 출산을 통해 디톡스가 된다는 시각이 있다. 출산 직후 내 피부가 이전보다 몇 배 깨끗해졌었기 때문에 이 시각이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아기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자녀를 인생에 찾아온 손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듯이 육아의 최종 목표는 아이를 독립시키는 것이다. 나한테서 나왔지만 언젠가는 나를 떠나갈 이 귀한 손님에게 무례하지 않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순진한 눈망울을 하고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아기를 보면 부모가 되기에 아직 부족한 나에게 찾아온 천사라는 표현 외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를 돌보면서 내 감정을 아이에게 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울감이 불현듯 찾아오거나 무언가에 화가 나 있거나 할 때는 잠시 아기를 울타리에 혼자 두더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돌아오려 한다. 일시적인 감정에 휩싸인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받기보다는 아기가 혼자 있느라 조금 힘든 게 낫다고 생각해서다. 내가 혼자서 컨트롤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것 같을 때는 이렇게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아토피가 있는 아기를 케어하다 보면 신경 쓸 거리가 몇 배로 많아진다. 목욕하고 나면 로션만 바르는 게 아니라 약을 바르고 붕대를 씌워야 하는데 약을 만지고 싶어 하거나 냅다 도망가는 아기를 붙잡아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30분은 훌쩍 지나간다. 내가 쉴 시간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유식도 편하게 시판을 먹이고 싶지만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낮은 식품을 공부해서 오랜 시간 끓여 먹여도 가려워 긁는 아기를 보며 그냥 내가 조금 더 고생하자고 다짐하게 된다. 밤에 잘 때도 그냥 엎드려 잠들고 싶은 아기에게 자다가 상처 나지 않도록 손싸개 가디건을 입히느라 아웅다웅하고, 새벽에 긁느라 깬 아기를 달래느라 나도 여러 번 깬다. 그래서 아토피 있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우울증이 더 잘 찾아온다. 하지만 내 몸에서 받은 무언가 때문에 이렇게 간지럽고 고통스러운 아기에게 미안해서라도, 아기를 케어하느라 힘든 마음을 절대 아기에게 풀어서는 안 된다. 꼭 다른 해소처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다시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아기를 정성껏 돌볼 수 있다. 


문화센터를 가면 아기가 낮잠을 자려고 하거나 배고파서 울기도 한다. 혹은 낯선 환경이 무서워서 엄마에게 안기려고만 할 때도 있다. 가끔은 비싼 돈을 내고 아기를 힘들게 데려온 것이 아까워 아기를 억지로 놀게 하려는 엄마들을 본다. 물론 나도 솔직히 준비하는 데에만 하세월이니 왔다 갔다 하는 고생이 아까울 때가 많았다. 우리 아기는 수업을 절반 정도 듣고 나면 항상 졸려해서 중간에 나오기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센터는 아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기는 집에서 엄마랑 둘이 있어도 충분히 행복할 시기이지만 엄마가 답답해서 아이쇼핑도 하고 엄마들이랑 수다도 떨면서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당장 잠이 쏟아지거나, 배가 고프거나, 혹은 엄마에게 안겨서 안정을 취하고 싶은 아기의 등을 억지로 떠밀며 놀게 하는 건 이 귀한 손님에게 정말이지 하고 싶지 않았다. 


아기가 많이 보채면 아무리 인내심 많은 사람도 힘들게 마련이다. 특히 보호대를 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손목을 하고서 안아 달래는데도 온몸에 힘을 주며 뻗댈 때는 정말이지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아기를 안아서 달래는 걸 포기하고 눕힌 후에 떼쓰는 아기를 쓰다듬으며 말로 달래지 아기에게 화를 내지는 않으려 노력한다. 더운 여름에 하루 종일 불 앞에 서서 만든 이유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아기에게 실망할 때도 정말 많다. 하지만 맛이 없거나 먹는 행위 자체가 재미가 없거나 배가 충분히 고프지 않아서 등 아기가 먹지 않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내가 한 고생에 대한 보상이 없어 순간적으로 허무하고 속상하지만, 아기에게 절대 억지로 먹이거나 짜증을 내지 않도록 노력한다. 대신에 아기가 먹지 않을 땐 최대한 빨리 상을 치운다. 맛을 업그레이드해주는 채수나 간 맞추는 법을 알아보고 배가 충분히 고플 때만 먹이는 등 다른 방법으로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아기는 잘 먹고 쑥쑥 자란다. 


많이 졸려해서 자라고 침대에 눕히면 난간을 붙잡고 한 시간을 놀고서야 잠이 드는 아기를 좀 더 빨리 데리고 나와서 놀아줄 걸 한 적도 많다. 밤에는 내가 너무 피곤한 나머지 그런 아기를 재우다가 깜빡 잠에 드는 일이 다반사다. 이렇게 나도 실수할 때가 정말 많고 남편이 그런 아기를 얼른 데리고 나와서 몸으로 놀아주고 피곤하게 해서 재우는 걸 보고 아차 하곤 한다. 내가 힘들다고 아기를 혼자 침대에서 오랜 시간 갇혀 있게 했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기가 잠에 빨리 들지 않는다고, 혼자 잠에 들지 못한다고 과하게 울게 방치하거나 억지로 재우는 일이 없도록 노력한다. 아기는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기가 원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가 아기를 태어나도록 했기 때문이다. 


우리 아기는 순한 편이지만 정말 악을 쓰고 떼를 쓰는 아기들도 많다. 엄마조차도 악마라고 부를 정도로 말이다. 물론 엄마들이 충분히 힘들고 우울할 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가들은 우리를 힘들게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 태어난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다. 내가 엄마로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존재. 내 남편을 한 남자에서 아빠로 만들어준 존재.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목표이자 이유가 되어주는 존재. 집에 가고 싶게 만드는 존재. 더 잘 살고 싶게 만들어주는 존재. 웃음 하나로 피로를 씻을 수 있게 해 주는 존재. 어린 시절로 순식간에 다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존재. 부모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는 존재. 아기는 무해하고 순수 완결된 존재 그 자체다. 그런 아기를 더 온전하게 사랑해 주고 싶다. 우리 인생에 찾아온 이 귀한 손님이 나중에 돌아갈 때 잘 놀다 간다고 행복했다고 하면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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