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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Aug 31. 2024

D+292)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것들을 딸에게 주다

누구나 상처를 한 가지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나도 그렇다. 나에게는 그게 엄마의 사랑과 온기였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이 꼭 내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것일 필요는 없다고, 요즘들어 부쩍 생각한다. 하나둘 나를 힘들게 하는 어깨의 무거운 쇳덩이를 내려놓으며, 아이를 바라본다. 아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돌보면 돌볼수록 내 마음의 구멍도 메꾸어져 가는 게 느껴진다. 아기는 나에게 치유의 샘물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아기에게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과도한 노력 그리고 우울감과 싸워 승리한다. 이렇게 엄마가 되어간다. 

엄마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나. 어릴 적부터 이런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걸 해주면 좋았을 텐데.' 내 딸에게 해주고 싶은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아침에 눈 뜨면 사랑한다고 안아주는 것. 매일 예쁘게 머리를 묶어 주는 것. 맛있고 아기자기한 도시락을 싸서 같이 소풍을 가는 것. 같이 이런저런 요리를 하는 것. 같이 마주 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떠는 것. 그런 소소한 것들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딸을 키우면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 주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내가 엄마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토록 원했던 것처럼 아침에 눈을 뜨면 오랫동안 안아주고 예뻐해 준다. 안고서 집안을 한 바퀴 돌며 커튼을 열어젖히고 햇살도 느끼게 해 주고, 하루를 시작하는 이런저런 말도 걸어준다. 엄마가 이렇게 사랑한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말이다. 남편이 챙기지 못하는 세심한 케어가 필요한 부분을 좀 더 챙겨주려고 한다. 옷을 입힐 때 윗도리가 밖으로 나오지 않게 배바지로 입혀주고, 아직 묶기엔 숱도 길이도 부족하지만 머릿결도 한 번씩 정돈해 주고 머리핀이라도 되도록 자주 꼽아 준다. 어릴 적 긴 머리를 친할머니가 예쁘게 땋아 놓으면 외할머니가 귀찮다고 싹둑 단발로 잘라놓았던 기억이 있어서 아이가 크면 꼭 예쁜 머리를 매일 해주고 싶다. 


다행히 친할머니가 정성스레 싸 주시던 도시락을 들고 다니며 수능까지 무사히 치렀지만 엄마표 예쁜 도시락은 왜 그리도 더 맛있어 보이고 부러워 보였는지. 너무도 당연하게 문어 모양으로 귀엽게 꾸며진 소시지를 포크로 찍어 먹던 친구들의 덤덤한 표정이 그리도 부러웠다. 내 딸도 그런 덤덤한 표정으로 내가 정성스레 싸준 도시락을 당연하게 누렸으면 좋겠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작은 책상과 거울이 있는 자신만의 방이 있는 것과 엄마가 간식을 잘라서 내어 주는 것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아기가 크면 꼭 아기 방을 예쁘게 꾸며 주고 싶다. 


나는 어린 마음에 이렇게 '엄마가 있었더라면 이런저런 것들을 해줘서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워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을 해주지 않아도 엄마는 곁에만 있어주면 할 일을 거진 다 한 거라고 한다.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애쓰려는 나 자신에게 되뇐다. 그냥 엄마로 있어줘도 충분하다고. 아직도 학창 시절 부모님의 서명이 필요한 가정통신문에 한부모라고 쓰고 아버지의 서명만 받아가던 기억, 급식비를 낼 때 한부모 가정이라서 나만 면제된 납부 영수증을 가지고 창피해했던 기억들이 날카롭고 선명하게 내 마음에 스크래치로 남아있다. 그런 스크래치 없는 아이로 크게 해 주는 것만으로도 내 할 일을 다 하는 거라고, 너무 다 잘해주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린 내 얼굴을 거울로 마주할 때마다 다독인다. 


누구나 상처를 한 가지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나도 그렇다. 나에게는 그게 엄마의 사랑과 온기였다. 그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이 꼭 내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것일 필요는 없다고, 요즘 들어 부쩍 생각한다. 하나둘 나를 힘들게 하는 어깨의 무거운 쇳덩이를 내려놓으며, 아이를 바라본다. 아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돌보면 돌볼수록 내 마음의 구멍도 메꾸어져 가는 게 느껴진다. 아기는 나에게 치유의 샘물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아기에게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과도한 노력 그리고 우울감과 싸워 승리한다. 이렇게 엄마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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