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간다.
나는 예전과 아주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어떤 계기로부터 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혹은 내가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여러 면모에서 나는 많이 달라져버린 것 같다. 우리가 당연하다 여기던 세계를 이제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어졌다.
그가 생각하는 나는 어떨까. 여전히 나는 나인 채로 바라봐줄까. 사실 그의 생각을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나는 나의 관념을 강요하지 않았고, 차근차근 변화된 시선을 나누었고, 고립시키지 않으려 수용했다고 생각했다. 항상 그는 담백하게 수긍할 뿐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오해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선택이 그에게는 오로지 불행과 연민으로서만 보이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유치하게도 별 뜻 없이 포용하는 듯 보였던 네 행동에도 갖은 의심을 품고, 게다가 너의 불행까지 바랐다. 이제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많이 참아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매번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주변의 말마따나 나는 제법 염세적이고 대쪽 같은 유형이다. 사랑이 많지만 사랑을 믿지 않으며 끝맺음이 명확하고 미련을 남기지 않는 나. 항상 애매하게 굴어 모든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 그. 나는 그가 여리고 착하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나는 그를 보듬어 줄 우정의 의무가 있다고 여겼다.
새로운 연인이 생길 때마다 이성과의 관계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었을까. 연인이 바뀔 때마다 옷차림과 말투가 달라졌던 그가 나는 늘 다른 사람처럼 보이곤 했다. 그가 여전히 그이길 바라는 내 감정은 그저 내 통제 하에 두고 싶어 했던 욕망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통제력을 상실했을 때, 그를 그로서 사랑해 주지 않는 이성을 만날 때마다, 나는 상당한 무력함을 느꼈으나 그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저 그가 깨달을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다.
비대한 나의 욕심은 그에게 닿았다. 그는 나에게 뻔히 들킬만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작위적인 가교를 일삼을 때도 나는 체념하며 웃어넘겼다. 점점 벌어지는 간극과 맞지 않은 우리의 상성을 느끼면서도 나는 모른 척 외면했다. 그래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했다. 우리의 관계는 우정으로 둔갑한 사랑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세월의 가면을 쓴 우리의 관계 아래 서로의 안위보다도 얇은 실 한 줄로 이어진 위태로움을 지탱하려 억지로 노력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서로가 바라는 깊이가 달랐을 뿐이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들쭉날쭉한 리듬 속의 관계의 지속. 서로가 배경음처럼 남아있는 상태에 있을 때도, 하고 싶은 말을 못 한 상태에로 흘러가는 간주처럼, 지쳐서 못 참고 내뱉어버린 직언, 한껏 멀어졌다가 다시 급격히 빠르게 가까워지는 한 시절 속에서 결국 페이드아웃된다.
그렇게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간다. 너도 나도, 마음 걸려했던 서로의 모습들이 보이지 않을 때로. 말을 덧붙이지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그저 추억할 수 있는 시절만 남기고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