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도 성과도 필요 없이 오직 나만의 보폭으로 이어가는 걸음.
세상 모두가 가성비적인 요행을 바라고 있다. 몇 번의 시도만으로 일확천금을 기대하고, 실패 없는 성공을 바라기도 하고, 아무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다 알아주는 오랜 연인이 당장 생겼으면 좋겠고, 노력 없이도 무지성으로 나를 지지해 줄 친구를 원한다. 말 그대로 가성비에 미쳐버린 사회. 적은 노력과 적은 효율로 큰 대가를 바란다는 것. 가성비만이 환영받는 우리의 일상에서 무언가 효율을 따지지 않는 자극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효율과 성과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무엇이냐고 반문해봤을 때, 나는 '휴식'이라 답했다. 하지만 휴식조차도 투자대비 얻는 것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니 씁쓸하지만 반박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어떠한 휴식은 생산성도 없이 돈만 잔뜩 들고 몸도 피곤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순간만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위로를 받는다면 그걸로 충분한 게 아닐까?
쉬는 날이 일정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휴식이라는 건 그저 육체적인 회복이나 미뤄둔 병원 방문 정도의 효율적인 용무에만 채워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날들이 과연 잘 쉰 날이냐-하고 묻는다면 전혀. 어찌 보면 나에게 있어서 휴식이라는 건 거창한 무언가라고 여겨왔던 것 같다. 통제가 없어도 되는 곳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미지에서, 낭만이 있는 대단한 무언가 말이다.
다시 일상은 찾아오고 피로와 잡생각은 더 쌓여버린 채 매번 되풀이된다. 몸을 쉴 틈없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머리는 멍하다. 시간 사이사이 움직임은 빠르지만, 머리는 둔해진다. 이렇게 생활 범위가 좁아지고 점점 고루해지는 일상에 시들어가는 나를 일으켜 주었던 건 다름 아닌 ‘걷기’였다.
특별한 목적 없는 발걸음, 정처 없는 몇 시간의 산책. 하염없이 걸음. 또 걸음.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는데 하루는 납작한 플립플랍을 신고 위험한 비포장도로 위를 2시간 가까이 걸었다가 물집이 왕창 잡혀 고생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날 조우한 숲과 하늘, 속삭이던 작은 참새의 울음소리를 들은 기억으로 며칠을 버텼다.
아무튼 누군가에겐 시간 낭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피로만 쌓일 뿐 별다른 효율도 없고, 체력이 부쩍 는다거나 뭐 어떻다 할 성과도 없지만. 걸을때만큼은 세상이 선명해져 보였다.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걸음 하나에 마음이 채워지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흐름이 읽히는 느낌이었다.
아, 쉰다는 건 이런 거구나.
그런데 요즘은 그 소중한 ‘걸음’이 위협받고 있다. 족저근막염으로 단단히 고생하고 있는데 제법 상태가 심각하다. 발 아치부터 종아리가 찌릿해져 오는 고통은 내가 좋아하는 ‘걷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건강에 문제가 생기니,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게 더 뚜렷해졌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활동이 갑자기 더 소중하고 뚜렷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제한이 주어질 때, 본질이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당연한 것들이 제한되자 내가 진정으로 갈망하던 휴식의 본질이 드러난 것이다.
단순했다. 무작정 걷고 싶다는 것. 효율도 성과도 필요 없이 오직 나만의 보폭으로 이어가는 걸음. 세상은 가성비 없는 것들을 버리라 하지만, 나는 기꺼이 이 비효율을 지켜내고 싶다. 나를 살리는 휴식은 언제나 ‘걸음’ 속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