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은퇴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여기서 은퇴란 나의 은퇴가 아니라 남편의 은퇴를 말한다. 나는 프리랜서여서 은퇴시기가 큰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은퇴란 기준이 바뀌는 시기다. '돈'이나 '책임'이 아니라 '즐거움'과 '보람'이 최우선 기준이 되는 시기.
일단 55세는 아니다. 둘째 아이가 아직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텐데 부모가 벌써 은퇴하면 안될 것 같다. 게다가 경제적인 사정도 있다. 둘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아니라도,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돈을 벌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남편과 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시기는 60세다.
남들은 '어? 생각보다 오래 일하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남편 회사의 정년은 65세다. 물론 정년까지 계속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60세까지 일하는 케이스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남편이 은퇴하면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계여행을 떠날 것이다. 한 1년쯤, 발길 닿는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들(공연이나 전시)을 볼 것이다.
지금 그렇게 살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이들 때문에 안된다. 아이들이 많이 어리면 같이 데리고 여행다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 아이들은 나름의 생활이 있다. 아이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사는 것도 우리 가족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나와 아이들의 삶을 분리하는 것도 내가 세운 기준 중 하나다.
주재원으로 중국에서 3년 또는 4년을 살게 되면서 결심한 게 하나 있다. 이 시기를 나의 은퇴 예행 연습으로 삼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은퇴란 정말이지 신나는 단어다.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을 생각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시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가정적, 사회적 의무에서의 면제와 해방.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어린아이에게는 실컷 노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의무가 없다. 그러고 보니 다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50년이라는 시간을 돌고 돈 셈이다.
앞으로 10년 후. 나는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일단 새벽 독서는 계속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5~5시 반. 더 일찍 일어나고 싶지만 가족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나는 하루에 7시간은 자야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저질 체력이다. 그나마 운동으로 많이 끌어올린 게 이 정도다.
5시에 일어나면 나는 토스트를 만들어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온다. 서재는 따뜻하고 조용하다. 인기척이 없고 세상이 조용히 잠든 이 시간에 나는 명상 음악을 틀어 놓고 커피를 마시며 그냥 멍하니 머리를 비운다.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각오를 다지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간의 감각을 느끼는 게 너무 좋다.
그리고 나서 20~30분쯤 책을 읽는다. 읽고 나서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에버노트에 옮겨 적는다. 매일 하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필사를 하지 않고 그냥 주저리 주저리 내 생각을 적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6시 반이 되면 슬슬 식구들 '아침 준비+도시락 준비' 모드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급식을 싫어해서 매일 도시락을 싸야 한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내 방식대로 에너지를 아껴가면서 하고 있다.
결국 새벽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이 시간을 더 늘리고 싶지만... 그렇게 해보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퇴근하는 남편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잘 때도 많고 저녁에 둘째 아이 공부를 봐 줄 때 졸리고 피곤해서 자꾸 짜증이 난다.
작년에는 비교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루를 보냈다. 저녁 시간에도 유튜브 영상을 만들거나 책을 읽거나 소파에 드러누워서 핸드폰을 봤다(유튜브 영상 벤치마킹을 한다는 명목 하에;;). 하지만 올해는 5시 이후 시간을 가족을 위한 시간으로 온전히 비워놨다.
특히 둘째 아이의 생활태도나 학습수준이 엉망이어서 올해부터는 아이를 위한 시간을 뚝 떼어 놓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시간에 숙제도 봐주고(국제학교는 숙제가 꽤 많다), 영어책도 읽힌다. 1시간~1시간 반 남짓의 시간이지만, 다른 일들과 병행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나는 내가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를 풀가동하는 건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시간 단위를 느슨하게 잡고 그 단위에 할 일 1개를 집중적으로 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서 성과 기준은 오로지 나의 만족도와 행복도, 그리고 주관적인 편안함이다.
회사에 비유하자면 '나'는 객관적인 수치가 아닌 직원의 만족과 보람을 최우선에 놓는 기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