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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Feb 15. 2020

55세? 60세? 나의 은퇴는 언제?


55세? 아니면 60세? 그것도 아니면 65세?


이건 무슨 나이일까? 아마 쉽게 짐작 가능할 것이다.


나는 요즘 은퇴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여기서 은퇴란 나의 은퇴가 아니라 남편의 은퇴를 말한다. 나는 프리랜서여서 은퇴시기가 큰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은퇴란 기준이 바뀌는 시기다. '돈'이나 '책임'이 아니라 '즐거움'과 '보람'이 최우선 기준이 되는 시기.


일단 55세는 아니다. 둘째 아이가 아직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텐데 부모가 벌써 은퇴하면 안될 것 같다. 게다가 경제적인 사정도 있다. 둘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아니라도,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돈을 벌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남편과 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시기는 60세다.


남들은 '어? 생각보다 오래 일하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남편 회사의 정년은 65세다. 물론 정년까지 계속 다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60세까지 일하는 케이스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남편이 은퇴하면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세계여행을 떠날 것이다. 한 1년쯤, 발길 닿는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니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들(공연이나 전시)을 볼 것이다.


지금 그렇게 살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이들 때문에 안된다. 아이들이 많이 어리면 같이 데리고 여행다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 아이들은 나름의 생활이 있다. 아이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학교 다니고 평범하게 사는 것도 우리 가족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나와 아이들의 삶을 분리하는 것도 내가 세운 기준 중 하나다.


주재원으로 중국에서 3년 또는 4년을 살게 되면서 결심한 게 하나 있다. 이 시기를 나의 은퇴 예행 연습으로 삼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은퇴란 정말이지 신나는 단어다. 모든 의무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을 생각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시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모든 가정적, 사회적 의무에서의 면제와 해방.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어린아이에게는 실컷 노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의무가 없다. 그러고 보니 다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50년이라는 시간을 돌고 돈 셈이다.


앞으로 10년 후. 나는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일단 새벽 독서는 계속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일어나는 시간은 5~5시 반. 더 일찍 일어나고 싶지만 가족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나는 하루에 7시간은 자야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저질 체력이다. 그나마 운동으로 많이 끌어올린 게 이 정도다.


5시에 일어나면 나는 토스트를 만들어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온다. 서재는 따뜻하고 조용하다. 인기척이 없고 세상이 조용히 잠든 이 시간에 나는 명상 음악을 틀어 놓고 커피를 마시며 그냥 멍하니 머리를 비운다. 무언가를 계획하거나 각오를 다지지 않는다. 그냥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간의 감각을 느끼는 게 너무 좋다.


그리고 나서 20~30분쯤 책을 읽는다. 읽고 나서 기억하고 싶은 문구를 에버노트에 옮겨 적는다. 매일 하지는 않는다. 어떤 날은 필사를 하지 않고 그냥 주저리 주저리 내 생각을 적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6시 반이 되면 슬슬 식구들 '아침 준비+도시락 준비' 모드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급식을 싫어해서 매일 도시락을 싸야 한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내 방식대로 에너지를 아껴가면서 하고 있다.


결국 새벽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남짓이다. 이 시간을 더 늘리고 싶지만... 그렇게 해보니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퇴근하는 남편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잘 때도 많고 저녁에 둘째 아이 공부를 봐 줄 때 졸리고 피곤해서 자꾸 짜증이 난다.


작년에는 비교적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루를 보냈다. 저녁 시간에도 유튜브 영상을 만들거나 책을 읽거나 소파에 드러누워서 핸드폰을 봤다(유튜브 영상 벤치마킹을 한다는 명목 하에;;). 하지만 올해는 5시 이후 시간을 가족을 위한 시간으로 온전히 비워놨다.


특히 둘째 아이의 생활태도나 학습수준이 엉망이어서 올해부터는 아이를 위한 시간을 뚝 떼어 놓아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시간에 숙제도 봐주고(국제학교는 숙제가 꽤 많다), 영어책도 읽힌다. 1시간~1시간 반 남짓의 시간이지만, 다른 일들과 병행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나는 내가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루를 풀가동하는 건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다. 차라리 시간 단위를 느슨하게 잡고 그 단위에 할 일 1개를 집중적으로 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서 성과 기준은 오로지 나의 만족도와 행복도, 그리고 주관적인 편안함이다.


회사에 비유하자면 '나'는 객관적인 수치가 아닌 직원의 만족과 보람을 최우선에 놓는 기업이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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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solitu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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