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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Feb 15. 2020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언제일까 생각해봅니다.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아이가 태어날 때 가장 행복했다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많은 대답은 '결혼했을 때'고요. 그런데 그건 강렬하게 남아있는 행복한 '순간'이고요, 비교적 긴 시기로는 '50대'를 가장 행복한 시기로 꼽는다고 합니다. 상당히 의외죠?


제가 이 설문조사 결과를 접했을 때는 30대였기 때문에 잘 이해가 가지는 않았습니다. 50대는 제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던 시기였기에 전혀 짐작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요즘 그 설문조사가 결과가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저도 '전체적으로' 보면 삶에 대한 만족도가 20대나 30대때보다 40대 후반인 지금 더 높기 때문이에요. 50대가 되어 큰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만족감이 더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육체는 늙어가는데 오히려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그 근거로 '통제력'을 들고 있습니다. 50대에 인생에 대한 통제력이 절정에 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50대는 직장에서 가장 높은 위치(도달 가능한 위치 중에서)에 있고 수입도 피크에 도달하죠. 자녀들도 거의 다 커서 자녀 양육의 부담에서 벗어납니다(물론 한국의 경우엔, 교육비가 집중적으로 들어가는 시기이기는 합니다;;). 예전 같으면 슬슬 질병에 시달릴 때이지만 현대인들(특히 선진국의)은 건강상태가 좋아 40대와 크게 차이가 없죠.


통제력이란 자신이 마음 먹은 대로 상황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전문가들은 '행복'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로 '통제력'을 꼽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상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거나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고 남들에게 끌려다니는 상태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수험생 생활이더라도 본인이 원해서, 또 본인이 세운 계획대로 수험생 시절을 보낸 사람은 결과에 상관없이 그 시기를 '의미 있었다'고 본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니 제 딸이 중1 겨울방학에 미술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때 이후 그 아이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열심히 한다는 느낌은 여전히 없지만, 적어도 이제는 최소한 '미술'과 관련한 일은 본인이 다 알아서 하니까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50대에 인생의 황금기를 맞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50대에 행복한 사람들은 경제적, 사회적, 가정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인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재정적으로 위태롭고 가정 불화가 있다면 저하되는 신체능력과 외모와 맞물려 예전보다 더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나중이 좋아야 다 좋은 법인데 50대 이후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그 전의 행복했던 기억들까지도 다 퇴색되고 인생 자체가 고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다행스런 점은 나이가 들수록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도 커진다는 점입니다. 일정 나이가 지나면(보통 40대 이후)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것,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자각하게 됩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끼면, 자연스럽게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지요. 그래서 되도록 '좋은 기분'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툭툭 털어버리고 걱정스런 일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소중한 시간을 망쳐버리지 않습니다. 상황 자체는 바꿀 수 없더라도, 그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 를 바꾸는 능력은 커지는 셈이죠.


중년 이후를 생각하면서 저는 가끔 엄마 생각을 합니다. 저희 엄마는 70대 중반인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젊었을 때, 아니 50대에도 항상 돈 걱정에 찌들어서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다 놓쳐 버리셨거든요. 생각해보면 돈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웃으면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기도 있었는데 엄마는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걱정에 압도되었다고 할까... 아니 걱정이 엄마를 짓누르고 엄마의 인생을 질식시켰다고 봐야 하겠네요. 늘 죽고 싶다고, 태어난 게 고통이라고 말씀하셨죠. 당연히 자식들과의 관계는 최악이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요즘엔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70대 중반에 아직도 하루 4시간 일을 하시고 100만원 남짓 버십니다. 여기에 국민연금도 나오고 근로장려금도 받고 자식들이 보내드리는 돈도 있으니까요.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알뜰(?)하시기 때문에 아마 생활비가 30만원이 채 되지 않을 거에요. 남은 돈은 다 통장에 넣어두고 중고매장에서 옷도 사 입고 스카프나 구두로 멋도 내고 손자들 오면 간식도 사주시죠.


엄마를 괴롭히던 채무가 2건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제가 해결해드렸습니다. 돈도 갚아드렸지만(큰 돈은 아니에요), 문제를 알아보고 법적으로 다 해결했는데 그 일이 엄마한테 엄청난 해방감과 자유를 드린 것 같습니다. 안 갚아도 큰 상관이 없었는데 깔끔한 엄마 성격에 큰 짐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저도 바쁘기도 하고 엄마와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게 싫어서 되도록 회피했는데, 어느 날 '이걸 피하지 말고 한번 정면으로 풀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법적으로 하나 하나 알아봤더니 해결 방법이 보이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얼마 되지도 않는 돈인데 자식들의 무관심으로 엄마를 괴롭게 해 드린 것 같아 많이 미안했습니다.


어쨌든 그때 이후 엄마는 자존감을 회복하고 행복해지셨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신뢰감을 느끼게 되신 것 같고요. 본인이 행복하니 이제는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기도 하십니다. '재미있다', '기분 좋다', '기쁘다'라는 말도 자주 하십니다. 전에는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으셨거든요. 저도 엄마를 위해 작은 일을 해드릴 수 있어 기뻤고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혀서 해결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자부심도 느꼈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게 생각만큼 나쁜 경험이 아니며 정신적인 만족도는 젊은 시절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거에요. 아주 큰 굴곡없이 살아온 보통 사람들이라면 인생의 절정은 50대에 찾아올 수 있고 설사... 사정이 있어 50대에 행복하지 못하더라도 절정기는 유예될 뿐이지 결코 생략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인생 후반기의 행복은 전반기의 불행을 덮는다는 것. 인간은 '현재 프레임'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기 때문에 '지금 현재'가 좋으면 과거와 미래가 다 좋게 느껴집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는 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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