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 Feb 15. 2020

40에도 철들지 않는 이유

요즘은 본인이 철이 들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다.


예전에는 스무 살이 넘으면 철이 들기 시작하고 서른 살이면 책임을 다하는 어엿한 어른이었다(적어도 그렇게 대접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스무 살은 그저 아이 같고 서른 살이 되어도 자기 길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40이 되어도 여전히 자기 길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길이 있을 것 같아 호시탐탐 다른 삶을 꿈꾼다. 마음이 이러니 안정감을 느끼기는커녕 삶을 바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감으로 20대 못지않게 마음이 붕 뜨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다행히도 이것은 우리만의 책임이 아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철없음은 인간의 수명이 턱없이 늘어나버린 '작용'에 대한 당연한 '반작용'이자 자극에 대한 적응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회는 노골적으로 '동안'을 선호함으로써 '철없음'에 수반되는 부끄러움을 덜어주고 있다.


나이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평균수명 60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은 평균수명이 80을 넘고 100세를 앞두고 있다. 만일 이런 세상에서, 예전처럼 스무 살에 철이 들어 그 후 20년을 성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산다면 40살에는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예전이라면 40살부터 서서히 가을의 마음으로 들어가야 하겠지만 100세 시대에 40살은 아직 전반기도 끝내지 못한 젊은 나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류는 이미 1만 년 전에 진화를 끝냈으며 우리의 뇌는 신석기 시대의 인류가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때는 수명도 짧았고 외부적 위협도 많았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개체가 젋을 때 최대한 왕성하게 번식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고 조상들은 유전자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외부 위협도 없고 우리는 대충 몇 살까지 살게 되는지 안다. 수명은 예전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고 우리는 유전자를 무시하고 무의식적으로 느긋한 태도를 갖게 됐다. 이성이 본능을 누른 셈이다.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개체수로 지구를 점령했고 그 결과로 환경파괴, 자원 고갈 등의 위협을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전자의 명령을 따라 일찍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는다면 지구는 넘쳐나는 사람들로 폭발할지도 모른다.


철들지 않고 번식에 관심 없는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어쩌면 인류가 현재의 도전에 잘 적응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회는 너무 거대해졌고 복잡해졌다. 농경사회라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인생에 필요한 것을 다 배우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깨우쳤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해서 30살이 되어도 아주 일부분만을 피상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사회생활을 10년쯤 해야 사회(전체 사회도 아니고 자신이 속한 좁은 사회)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파악하게 된다. 10세부터 집안의 생계를 거들던 시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40살 이전에 철이 나기 힘든 구조다.


이제 학자들은 50/60 이후를 중년이라고 부르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60부터 중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현재 60대의 건강 상태나 감정적 성숙도가 예전의 40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수명을 100세로 가정하면 인생 전반기는 50세까지다. 40대부터는 아직 청년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청년기가 서서히 끝나고 있다는 초조감을 느끼는 시간인 것 같다. 그래서 청소년기와 비슷하게 인생의 또 다른 전환기, 과도기를 맞게 되는 것 같다.


돌아보면 지난 몇 년이 나에게는 그 과도기였다. 청소년기에 보냈던 과도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불렸다. 자아와 내가 인식하는 세상이 무차별적으로 확대되던 시기였다. 갑자기 확대된 세상 속에서 자신의 힘을 과신하기도 하고 무서움을 느끼기도 하고 그 안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40대 중반에 맞게 된 제2의 과도기는 달랐다. 모호하던 세상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세상의 이치를 많이 알게 되었고 그동안 쌓인 경험으로 일상은 자동항법장치를 단 비행기처럼 조종하기가 쉬워졌다.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제한적이더라도 최소한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지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가 인식하는 세상은 확대되기보다는 정리되고 수렴되었다. 육체적 쇠퇴를 느끼면서도 정신적인 집중력은 더 높아졌다고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떤 부분은 체념하는 법도 배웠다.


많은 사람들이 중년이 되었음에도 더 유능해지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중년인 게 그다지 나쁘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