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자식에서 부모가 될까

당해봐야 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옛말

너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네가 어릴 때 엄마는 정말 온 정성을 들여 너를 키웠단다. 고백하지만 엄마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않았어. 그래서 육아 책을 쌓아놓고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엄마 노릇을 했단다. 아마 한100권은 사서 읽었을 걸.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엄마 안에는 외할머니에 대한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었어. 그래서 육아 책을 읽고 너랑 눈을 맞추며 놀아주면서 '내 딸은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거야. 나중에 고마워할 거야'라고 생각했지. 오만하게도 말이야.

유치하게도 이렇게 생각했어. ‘'우리 엄마는 좋은 엄마야. 나는 행복한 아이야'라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너와의 허니문이 끝나가는 지점, 그러니까 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이런 생각이 완전한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단다. 물론 너는 어린 시절을 대체로 좋게 기억하는 것 같았어. 그런데 '사건 자체’에 대한 기억뿐이더라.  

예를 들어, 어디로 놀러 갔던 기억은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 경험을 그다지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거야. 그 날의 기억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던 거지. 하하.  

너한테는 그저 어렸을 때 있었던 평범한 일상 중의 하나였겠지. 주어진 일상이었으니 특별히 감격할 일도, 감동할 일도 없었을 테고.

창피하게도 엄마는 많이 서운했어.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실망했고 속상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단다. 왜냐면 엄마는 너를 키우면서 포기한 것들이 좀 있었거든. 사회생활을 더 활발히 할 수 있었는데 너 때문에 어느 수준에서 단념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미안한 마음 같은 건 절대로 갖지 마. 그건 너 때문이 아니라 '너에 대한 엄마의 욕심' 때문이었으니까.

첫 경험에서 실망을 맛보고 네 동생을 키우면서는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으려 했었단다. 그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던 거야. 그런데 이 생각도 잘못되었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지. 이렇게 엄마는 하나 하나 실수를 하면서 배워가는 완전 초보였어.

엄마가 깨달은 건 이거였어. ‘육아는 기본적으로 엄마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희생 없는 육아는 없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그리고 그것이 바로 엄마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러니까, 모든 부모가 다 그 정도는 하는데 혼자서 엄청 노력하고 희생한 걸로 착각했던 거란다. 바보처럼 말이야.

어쨌든 엄마는 한 사건을 계기로 유치 찬란한 서운함을 털어버리게 되었단다. 좀 심각하게 말하자면 ‘그 서운함은 나만의 것이 아니며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굴레’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거야. 어떤 사건인지 한번 들어볼래? 아마 깜짝 놀랄 걸.

그건 네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어. 졸업 축가로 러브홀릭의 '버터플라이'가 흐르면서 졸업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하나씩 스크린에 올라가는데, 차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더라. 그래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는데 자연스럽게 다른 부모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그분들도 한결같이 눈물을 참느라 눈이 벌게 져 있었지.

아이들 앞에서 우는 게 창피해서 죽을힘을 다해 참다가 결국에는 눈물을 쏟고 말았는데, 나중에는 모든 부모들이 폭풍 눈물을 흘리는 사태가 벌어졌단다. 선생님들까지 이 눈물 행렬에 동참했고(그분들도 교사이기 전에 부모란다).

그런데 너희들은 하나같이 해맑게 웃고 장난을 쳤지. 우는 어른들을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말이야. 학교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눈치였어.

그때 확실히 깨달았단다.

아직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내가 너희들 눈에는 완벽한 기성세대이자 그저 '역할로서의 엄마'라는 사실을.

엄마가 상상한 이상적인 엄마가 아니라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는 귀찮은 엄마'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야.

너를 잘 키우기 위해 힘들여 쌓은(쌓았다고 생각한) 인격이나 수양, 지식은 간 데 없고 고리타분한 엄마만 남았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 엄마가 마음속으로 자주 떠올린 존재는 바로 '내 엄마', 외할머니였단다.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 말을 마음속으로 자주 중얼거렸지. 당해봐야 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더라.

PS. 이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이전에 썼던 브런치 글들을 일부 참고하고 편집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글들도 많이 들어갈 계획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