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3 - <TAR 타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TAR 타르>로 작년 베니스 영화제 은곰상(여우주연상)을 받은 케이트 블란쳇은 올해 아카데미에서도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꼽히고 있는데요, 그만큼 이 영화는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 자체가 하나의 서사, 한 편의 영화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드높은 거장의 자리에 오른 예술가가 맞이하는 가장 위태로운 순간을 그리는 이 영화는, 거시적으로 보면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예술적으로는 새롭게 접근하며 관객을 각성시키고 영화에 참여시킵니다. '제 잘난 맛에 살던 자의식 과잉 일류 예술가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는 빤할 것이란 관객의 팔짱은 첫 장면에서부터 풀어지게 되니까요.
피아니스트에서 시작해 세계 최고 권위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아티스트, 리디아 타르(케이트 블란쳇)는 토크쇼에서 약력만 읊어도 한 코너를 만들 만큼 눈부신 커리어로 현대 클래식을 대표하는 인사입니다.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확신을 갖고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에선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거 같은 자신감이 넘쳐 보입니다. 그 확신과 자신감은 때로 강의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매서운 공격을 퍼붓는 것도 가능케 할 만큼 단호하기도 하죠. 어시스턴트 프란체스카(노에미 메를랑), 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리니스트이자 아내인 샤론(니나 호스)의 아낌없는 지원과 사랑 속에 거칠 것 없는 커리어의 정점에서 타르는 현재 자신의 숙원인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집 중 마지막으로 5번 교향곡 녹음을 준비중입니다. 그러나 타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랑스러워마지 않는 커리어의 여파로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타르는 그 어떤 위협 앞에서도 단호하려 노력하지만, 그 노력이 오히려 그녀를 더 막다른 길로 내몹니다.
지휘자가 주인공인 창작물로는 우리에게도 한국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경우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지휘자인 주인공이 매우 권위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는 점이고, 이 영화 <TAR 타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케스트라는 다양한 악기들의 조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라지만, 지휘자는 그 가운데에서 권력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션일 것입니다. 영화는 그처럼 예술가이면서 동시에 오케스트라라는 공동체 안에서 최고의 권력자이기도 한 지휘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 위치에 걸맞은 실력과 영향력을 뽐내는 주인공을 그림으로써 예술과 권력의 내밀한 관계를 보여주려는 듯 합니다. 영화 초반 매우 수 차례의 롱테이크로 긴 호흡을 띠며 등장하는 리디아 타르의 토크쇼 장면은 다소 당혹스럽습니다. 진행자(실제 작가인 애덤 고프닉)가 읊는 타르의 기나긴 약력부터 영화는 굳이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 뒤, 이후 진행자의 난해한 질문에 대한 타르의 난해한 답변까지도 쳐내지 않고 내보내는데, 보고 있으면 '대단한 사람인가보구나' 싶다가도 이럴 줄 알았으면 영화 보기 전에 클래식 기초에 대해 좀 보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까지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초반부의 이런 감흥은 내가 사전지식이 부족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심지어 어쩌면 이런 감흥을 느끼게 하는 게 감독의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릅니다. 사람은 때로 누군가 함부로 자신의 권위에 범접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온갖 난해한 말들로 자신을 방어한다는 걸 떠올리게 되고, 타르의 이런 고매한 말들 역시 한편으로는 마에스트로서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도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예술관을 그 번지르르한 말들을 동원해 확신에 찬 태도로 이야기하는 초반의 모습을 보자면 타르는 무척 명료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 명료함은 토크쇼 이후 이어지는 개인 일정들과 줄리어드 음대에서 이루어지는 강의 장면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죠. 자신이 팬젠더(모든 성별의 성 정체성을 함께 갖고 있는 젠더)라는 남학생이 바흐의 여성혐오적인 면으로 인해 그의 음악을 못듣겠다고 하자, 타르는 그런 외적인 요소 때문에 음악의 본질에 다가가지 못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렇다면 너도 그런 정체성으로 판단받을 건지 일갈하죠. 더불어 여성 지휘자로서의 호칭에 대해 '마에스트로'든 '마에스트라'든 개의치 않는다든지, '세계 여성의 날'이 언제인지도 모른다든지, 그녀의 이름인 '리디아 타르' 또한 어딘지 예술가적 면모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지어진 듯한 이름임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라든지, 여러 장면에서 타르는 자신의 그 어떤 정체성보다도 지휘자, 예술가로서의 정체성만이 가장 중요하고 분명한 것이라고 믿는 듯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런 그녀의 신념이 남긴 과오들이 예측 못한 결과로 되돌아오는 일련의 양상들을 지켜보게 되면서 타르의 삶은 어쩌면 음악만이 세상인 명료한 것이기보다 끊임없는 위장과 그로 인한 위험으로 점철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녀를 지금에 이르게 한 것은 음악과 예술 자체에 대한 열망이었는지, 음악과 예술이 부여하는 강력한 힘에 대한 열망이었는지 모호해집니다. 영화는 타르를 덮쳐 오는 갖은 스캔들 와중에도 그 진위를 판명하며 그녀의 실체를 까발리는 데 몰두하지 않습니다. 그저 바람에 나부끼는 스캔들의 숲속에서 폭풍 치는 내면을 깨질 듯한 평정심으로 위장하며 버티려는 타르를 지켜볼 뿐입니다. 얼음장 같은 사람인 척 하지만 그 얼음장이란 실은 너무나 얕은, 그러나 깨지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심연을 품은 살얼음인 것입니다.
이런 개인의 내면을 때로는 무편집에 가깝게 지극히 사실적으로, 때로는 의미를 알 수 없게 형이상학적으로 연출하며 위태롭고도 우아하게 그려내는 감독의 필력과 연출력도 뛰어나지만, 영화의 정점에는 역시 케이트 블란쳇이 있습니다. 이미 아카데미를 2회(주연상, 조연상) 수상한 바 있는 케이트 블란쳇은 한 인물이 하나의 서사가 되어야만 하는 이 영화의 미션을 얼음처럼 냉철하게 계산되었으면서도 용암처럼 뜨겁게 솟구치는 연기로 완벽하게 수행해 냅니다. 케이트 블란쳇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블루 재스민>에서 이미 극적인 추락을 겪는 인물을 연기한 바 있지만, <TAR 타르>에서는 집요하게 권력을 좇는 속물 근성과 그럼에도 마냥 내칠 수 없는 예술가의 품격을 함께 지닌 인물로서 격랑 속에서도 절박함과 고고함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의 양면성을 교향악처럼 우아하게 그려내며 또 한번 탄성을 자아냅니다. 여기에 타르의 아내이자 제1바이올리니스트로서 타르에게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샤론 역의 니나 호스, 타르의 충실한 어시스턴트이면서 연모의 감정 또한 품고 있는 듯한 프란체스카 역의 노에미 메를랑 등 유럽 영화에서 봐 온 유럽 배우들까지 모여 만들어내는 연기 앙상블이 모던하면서도 운치 있는 협연을 연상케 합니다.
<TAR 타르>는 문제적 주인공을 힐난하지도 두둔하지도 않는 태도를 견지하며, 관객에게 명료한 메시지를 주입하기보다 모호한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에게 예술이란 보다 고매한 존재로 승화시켜주는 것인지, 아니면 고매한 존재라는 자기최면에 둘러싸여 욕망으로 뛰어들게 하는 수단인지. 오케스트라라는 공동체를 배경으로 타르와 주변 사람들이 펼치는 팽팽한 신경전, 그 속에서 날카롭게 벼러지는 타르의 예술적 집념은 아마도 예술 안에서는 자아실현의 욕망과 권력에의 욕망이 모두 순수한 집념으로 얽혀들어 작용할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TAR 타르>는 외적으로는 정점에 선 자의 드라마틱한 추락에 관한 꽤 심플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예술과 욕망, 권력의 삼각형 위에 선 인물을 들여다 보는 시선은 그 모두에 대해 명료한 만큼 복잡한 인물의 내면만큼이나 입체적인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