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3 - <파벨만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그동안 세간에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성장기를 처음으로, 그것도 직접 연출하여 보여주는 영화 <파벨만스>에는 꺼내놓기 조심스러웠던 만큼 개인적인 성장기의 아픔과 그 속에서 꽃핀 영화에 대한 애정이 긴밀하게 엮여 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특히 대단한 것은 감독이 지닌 천재적 자질의 눈부신 발자취에 관한 이야기도, 굴곡진 성장기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생과 영화가 나란한 위치에서 조응하며 영화를 정의하고 예술을 정의하는, 개인사의 고백보다 한층 높은 경지에 있는 드라마라는 점입니다.감독 경력을 시작한 후 반세기가 지나서야 비로소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던 이야기는 그만큼 드넓은 품으로 관객을 감동시킵니다.
1952년 어린 소년 새미는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 아빠 버트(폴 다노)와 함께 난생 처음 영화관을 찾습니다. 어두운 곳에서 거인 같은 사람들을 보는 것이 두려웠지만, 그가 처음 본 영화 '지상 최대의 쇼'가 전해준 충격은 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대한 열차들이 눈앞에서 충돌하는, 재난이지만 멋지고 거대하게 펼쳐지는 그 장면은 내내 새미의 머릿 속을 맴돌고, 새미는 선물 받은 열차 장난감들을 모아 영화 속 열차 충돌 장면을 재현해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엄마 미치가 건네준 카메라로 그 장면을 담아낸 영상을 보는 순간, 내 손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생겨납니다. 새미는 아빠가 선물한 8mm 카메라로 친구들과 함께 단편 영화도 만들어보고 가족의 추억을 담기도 하며 꿈을 키워갑니다. 이런 새미의 꿈에 대해 엄마 미치와 아빠 친구 베니(세스 로건)는 응원을 건네고 아빠 버트는 어디까지나 취미생활로 치부하는 가운데, 새미는 영화의 힘을 비로소 느끼게 되니 그 계기는 실로 반갑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상심한 엄마를 위로하고자 가족 캠핑의 추억을 편집하던 중 발견한 뜻밖의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예기치 못한 행복과 슬픔의 순간을 지나며, 그 순간들과 밀접하게 호흡하며 영화를 향한 새미의 꿈은 모습을 갖추어 갑니다.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다른 후배 감독이 영화로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개인사가, 이제서야 그것도 본인의 손에서 영화로 탄생하게 된 것은 이 안에 기쁨의 순간만큼 아픔의 순간 또한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 아픔이 스필버그 감독의 가족, 그것도 부모와 얽혀 있는 것이기에 다가가기 더 조심스럽고 본인 또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렇게 감독 본인이 연출하면서 유지하려 한 객관성과 침착함 덕분에, 우리는 거장 감독의 못다한 고백을 영화로 처음 목격하면서도 그 고백에 매몰되지 않은 채 영화와 인생이 서로를 비추며 만들어가는 눈부신 광경과 잰체하지 않는 진솔한 교훈을 함꼐 만나게 됩니다. 재능에 대한 예찬도 개인사에 대한 연민도 아닌, 그 모든 것들을 거쳐오며 비로소 발견한 영화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죠. 감독은 이 이야기를 다룸에 있어서 별다른 기교를 사용하지 않은 채, 그저 시간 순서대로 지나온 날들을 찬찬히 되짚을 따름입니다. 영화 속에서 감독 자신이 모델인 주인공은 만나는 세상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그걸 보여주면 될 뿐 플래시백도 필요없습니다. 개인의 성장기를 다루는 만큼 대단한 볼거리에 대한 야심도 여지도 없이, 그저 조곤조곤 고백하듯 풀어내는 이야기 안에서 현실을 관통하는 인생과 인생을 굴절하는 영화가 자연스럽게 조응하고 예술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니, 의식할 필요도 없이 그저 몸에 밴 듯한 그 거장의 솜씨를 볼 때는 워낙 물흐르듯해 몰라도 보고 나면 곱씹어볼수록 실감하게 됩니다.
새미가 어린 시절 열차 충돌 장면을 보며 영화에 매료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안에 하나의 세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지어 열차와 열차가 부딪히는 비현실적인 재난 장면마저도 만들어내고 각도에 따라 그 감흥을 한껏 극대화시킬 수도 있는, 카메라 안에 하나의 평행 세계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도 있다는 점이 새미에게는 꿈 같은 요소로 다가온 것이죠. 자신이 만든 영화를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보여줄 때에도 그가 느꼈을 가장 큰 쾌감은 자기가 만든 세계를 보여준다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담은 가족의 모습에서 발견한 비밀로 인해 새미는 희망했던 바와 달리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진실을 깨닫습니다. 이는 처음엔 영화를 향한 새미의 열망이 꺾이는 지점으로 작용하는 듯 보이나 시간이 지나 오히려 영화가 지닌 더욱 빛나는 가치를 발견케 하니, 그 가치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의 단면들을 기록하여 그것을 나만의 진실로, 나만의 세계 안에 오롯이 담아낸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감정이 분명한데도 피할 수 없었던 부모의 불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겪어야 했던 괴롭힘 등 슬프고 아프고 두려운 감정으로 남은 경험들조차도 그 감정의 조각들을 넘어 새길 만한 의미를 품게 하는 것이 영화의 힘임을 알게 되는 것이죠. 실은 대부분 통제할 수 없는 세계의 흐름을 카메라의 앵글을 바꾸는 것만으로 기어이 통제해 내고, 그리하여 어디에도 없는 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며 나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 그런 영화의 힘 앞에서 개인의 희로애락은 사사로운 것이 되어 나를 압도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직해야 할 것'으로 남을 뿐입니다. 공존하는 것이 무척 힘겨우면서도 서로가 없다면 완성될 수 없는 영화와 인생, 예술과 인생의 관계란 얼마나 얄궂고도 매혹적인 것인지.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이 어떤 영화를 만들어왔는지를 고백하는 걸 넘어,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는지를 고백하는 것으로 한번도 인간으로부터 멀어진 적 없었던 그의 작품 세계와 호응하며 그의 영화 역정을 너른 품으로 아우릅니다.
자신의 성장기를 재현하는 만큼 스필버그 감독은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에도 특히 공을 들였겠습니다만 소년이 품은 영화의 꿈과 마주보는, 기쁨과 슬픔이 맞닿은 나날들을 채우는 배우들의 연기는 기품과 섬세함을 갖추었습니다. 이 영화로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미셸 윌리엄스는 예술가를 꿈꾸었으나 현실과 타협해야만 했던, 그래서 현실의 사랑과 행복과는 별개로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려야만 했던 엄마 미치의 여린 마음을 조심스런 손길로 빚어냅니다. 현실이 지닌 디테일과 영화가 지닌 곡절을 모두 담아낸 연기로 여러 장면에서 보는 이의 마음에 공명합니다. 한편 아빠 버트를 연기한 폴 다노의 절제되고도 진중한 연기 역시 이에 못지 않게 견고하여 훌륭한 조화를 이룹니다. 미치와 극점에 있는 성격과 천재성을 지녔음에도 녹록치 않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착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죠. 감독 자신이 모델일 새미 역을 맡은 가브리엘 라벨은 예기치 못한 성장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겨워 하다가도 자신의 꿈을 성장시키고 나아가게 할 방법을 모색하는 소년의 다양한 얼굴을 매끄럽게 그려내며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아빠 버트의 직장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로서 새미가 만나는 우여곡절의 단초가 되기도 하는 베니 역의 세스 로건, 새미의 꿈이 자리잡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는 '영화인 선배' 작은외할아버지 보리스 역의 주드 허쉬도 인상적인 연기로 또 다른 풍경들을 남깁니다.
영화사에서 잊지 못할 족적을 숱하게 남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돌아보면, 방점은 '무엇을'보다는 '어떻게'에 찍혀 있었습니다. 재난, 모험, 전쟁, 사랑, 정의 등 인간사의 여러 장면들을 고루 다루며 그것을 그리는 방법으로 전세계의 영화팬들을 놀라게 하고 감동시켰죠. 자신이 성장하며 깨달은, '무엇을'보다 '어떻게' 담을 것인가가 영화와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진실을 그는 그 걸작들로 몸소 입증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거장이 스스로 증명해 온 영화의 힘을 이 영화를 통해 절감하며, 제가 좋아하는 영화라는 것이 참 아름다운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파벨만스>는 진솔하고 겸손한 태도로, 기탄없는 고백과 포용으로 만들어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걸작입니다.
+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더 이상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으로부터 초탈한, 모든 것을 내재화했고 그저 고백할 따름인 거장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머와 여유와 통찰력이 담긴 장면으로서 절대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