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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an 13. 2024

개인적인 2023년 영화 베스트 10 - 외국영화 부문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3

지난 외국영화 베스트 10에 이어서 이번에는 외국영화 부문에서 2023년 베스트 10을 꼽아 보았습니다.

한동안 OTT 오리지널 영화들이 득세하면서 베스트 명단에 OTT 영화들이 포함되곤 했는데,

올해 외국영화 베스트 10에는 오랜만에 모든 영화가 극장 개봉작들로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그 리스트입니다.

(한국영화와 마찬가지로 2023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정식 개봉작 중 제가 본 영화들을 대상으로 꼽았습니다.)



10위 <엘리멘탈>


목소리 출연: 레아 루이스, 마무두 아티, 로니 델 카르멘, 쉴라 옴미, 웬디 맥클렌던 커비, 캐서린 오하라

감독 : 피터 손

물, 불, 흙, 공기 등 원소들이 사는 세계가 배경이라는 설정부터가 흥미를 자아냈지만, 막상 영화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큰 흥행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세계관에 투영된 자의식에 대한 공감이었습니다. 한국계인 피터 손 감독이 자신의 부모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만든 영화에는, 바꾸거나 죽여야 한다는 세상의 강요에도 차마 그럴 수 없는 본성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결국 타인을 향한 경계 없는 사랑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그만큼 진심 어리게 담겨 있습니다. 4가지 원소가 만들어내는 세계의 다채로움이 주는 시각적 호사도 이미 감지덕지이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의 방점은 거기에 반영된 저마다 다른 여정을 지나온 캐릭터들의 삶과 그들이 서로의 본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하는 용기가 피워내는 사랑의 결실에 있습니다. 픽사 애니메이션들 중에 완성도 면에서 최상위권으로 놓긴 힘들 보편적 이야기이지만, 그 감동만은 특히 우리에게 지극히 특수했을 것입니다.



9위 <사랑은 낙엽을 타고>


출연: 알마 포이스티, 주시 바타넨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원제도 한제도 흔한 가을 시즌 멜로물처럼 느껴지지만 그 이상의 유니크함을 지닌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로맨스+코미디 영화였습니다. 입꼬리 올리는 것도 인색할 만큼 표정 변화 없는 인물들 사이에서 단조로운 톤으로, 그러나 정곡을 찌르며 전개되는 유머러스한 대화는 핀란드 특유의 고독하고 쓸쓸한 공기를 넘어 보는 이의 웃음벨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그 피곤한 얼굴과 자조적인 말들 사이에는 더 나아지길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 섞여 있다는 걸 알기에 웃음은 페이소스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그런 탄식 가운데에서도 서로를 향한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을 수줍은 듯, 아니면 말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듯 뱉어내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온기 가득한 심장을 느끼게 됩니다. 좀처럼 보지 못한 방식으로 (아니 어쩌면 뒤늦게 보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세상을 쿡 찌르고 사람을 폭 감싸안는 영화에서 뜻밖의 큰 위로를 얻었습니다. 낯간지럽지 않게 현실에 찌든 이들을 다독이는 거장의 거친 손길에 웃음짓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8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목소리 출연: 산토키 소마, 스다 마사키, 시바사키 코우, 아이묭, 기무라 요시노, 기무라 타쿠야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지금까지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들 중 가장 불친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영화는 나이가 들수록,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답을 내는 게아니라 질문이 더 많아지는 감독의 내면을 담아낸 듯도 보입니다. 그런 고로 영화는 관객에게 삶의 선배로서 훈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순수한 질문을 건넨다는 점에서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감독의 애니메이션 경력을 농축한 것처럼 보이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의 향연과 그 속에서 누빈다기보다 끌려다니는 것에 가까운 주인공의 여정에는, 감독 자신이 여지껏 어떻게 그런 영화들을 만들어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백과 함께 혼돈과 죄의식 사이에서 나의 내일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선뜻 답을 주지 않는 영화가 혹자는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답을 주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창작자는 물론 보는 사람에게까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적 애니메이션으로서 거장의 아우라를 다시금 실감케 하는 작품입니다. 



7위 <괴물>


출연: 안도 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다나카 유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동안 프랑스, 한국 등 타지에서 영화 작업을 해왔지만 결과물은 무난한 정도였습니다. 이후 5년 만에 자국에서 내놓은 이 영화는 더욱 예리해지고 여전히 깊은 감독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저력 넘치는 영화였습니다. 감독은 학교, 가정등 자신의 주무대였던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삼지만, 그 안에서 전개되는 분절된 서사와 그를 통해 자아내는 궁금증을 통해 자연스럽게 팽배되어 있는 인간 내면의 폭력적인 정서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어떤 끔찍하고 거대한 범죄를 소재로 하지 않아도, 평범한 소년들을 둘러싸고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까지 손을 뻗치는 편견과 몰이해를 통해 영화가 제시하는 인간의 부끄러운 초상은 더욱 저릿하게 보는 이를 슬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 절망 어린 슬픔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의 해사한 웃음 앞에서 비로소 감정의 퍼즐을 완성시킴으로써, 영화는 뇌의 파동을 일으키는 각성과 마음의 파문을 일으키는 감동을 모두 일으키는 역작이 됩니다.



6위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목소리 출연: 샤메익 무어, 헤일리 스테인펠드,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오스카 아이삭, 제이크 존슨, 다니엘 칼루야, 잇사 레이, 제이슨 슈왈츠먼

감독: 조아킴 도스 샌토스, 저스틴 톰슨, 켐프 파워스


안타깝게도 MCU는 자신들이 야심차게 제시한 멀티버스 세계관에 잠식된 듯 합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멀티버스의 성격이 결국 '어떤 것도 대체 가능하다'며 서사를 깃털처럼 만들어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죠. 마블의 멀티버스 세계관을 관통하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 건 의외로 MCU의 가장자리에 있는 이 '스파이더 유니버스'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최소 4명의 스파이더맨을 만나 오며 고유의 서사를 당연한 듯 숙지해 온 관객들에게 영화 속의 스파이더맨은 '누가 나의 운명을 규정하는가'라며 물음을 제기합니다. 현대미술의 여러 장르들을 넘나들듯 각양각색의 필치로 그려진 세계들을 오고 가는 그의 활약은 그저 시각적 곡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벽을 넘기 위한 진중한 저항으로 거듭납니다. 우주를 넘나들며 확정되지 않은 운명에 도전하는 어린 영웅의 성장 서사는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대한 피로감을 말끔하게 날려보냅니다. 동시대 어느 애니메이션보다도 뛰어난 미학적 성취하는 영화가 보여주는 성과의 일부일 뿐입니다. 


5위 <애프터썬>


출연: 폴 메스칼, 프랭키 코리오, 실비아 롤슨-홀

감독: 샬롯 웰스


감흥이 명확한 대단한 이야기보다 감흥이 불분명한 대단치 않은 이야기가 다루기에 더 어렵습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더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냄으로써 영화라는 예술의 진가를 상기시킵니다. 영화를 움직이는 것은 서사가 아닌 감정입니다. 튀르키예로 떠난 어린 부녀가 그곳에서 겪은 일보다, 그곳에서 순간순간 느낀 감정들을 포착하는 것이 영화가 최우선으로 수행하는 일입니다. 그 감정은 늘 산처럼 솟아있는 게 아니어서 옅은 파도처럼 흔들리기도 하고 물결처럼 가만히 너울거리기도 하는데, 그래서 한 컷도 들어낼 새 없이 그 감정의 흐름을 꾸준히 들여다 보게 만드는 매분 매초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말과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내내 기저에 깔려 있는, 그때는 지나쳤을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목격하게 될 때 관객은 각자의 지나온 삶과 함께 해온 사람들을 떠올리고 영화는 그렇게 우리의 현실에까지 가 닿습니다. 어쩌면 관객마저 손을 뻗게 될지도 모를, 지나쳐 온 소중한 사람과 사랑을 향한 그리움이 응축된 마지막 장면은 올해의 라스트 신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위 <파벨만스>


출연: 가브리엘 라벨, 미셸 윌리엄스, 폴 다노, 세스 로건, 주드 허쉬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올해의 라스트 신을 꼽는다면 빠지지 않을 영화가 여기 또 있습니다. 수십년에 걸쳐 장르를 막론하고 걸작들을 남겨 온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왜 이제서야, 그것도 타인의 손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자신의 성장기를 영화로 만들게 되었는지 영화를 보면 저절로 납득하게 됩니다. 영화는 그간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을 개인적인 아픔을 고백하면서까지 증명하는 영화의 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카메라 안에 담기는 하나의 온전한 세계에 매혹되어 영화를 찍기 시작한 소년이 그 안에서 통제할 수 없는 진실을 발견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그를 통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세계를 구축하는 것을 넘어 진실을 발견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영화는 뚜벅뚜벅 걸어가며 관객에게 진솔하게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무슨 대단한 걸 보여주겠다는 야심도 거둔 채 그저 털어놓는 이야기에서 관객은 진실과 만나고, 그 고백이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가 되어가는 과정을 목격하는 감동을 뒤로 갈수록 크고 깊게 축적되어 갑니다. 감독이 지금껏 만들어 온 숱한 명작들과 조응하며 빛을 발하는 눈부신 고백의 영화입니다.



3위 <오펜하이머>


출연: 킬리언 머피, 에밀리 블런트,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플로렌스 퓨, 조쉬 하트넷, 케이시 애플렉, 라미 말렉, 케네스 브래너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그간 자신이 만들어 온 많은 대작들에서 활용한 기술을 집약시켜 완성한 영화는 거대한 재난보다도 더 요란하게 소용돌이치는 개인의 내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탐구하고 경험하며 진실을 추적해 왔던 남자가 반드시 선택과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현실과 만나게 될 때 생겨나는 내면적 충돌은 맨해튼 프로젝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무기를 세상에 내보였을 떄만큼이나 위태롭고 파괴적입니다. 세 가지 시점을 통해 개인의 진실과 세계의 현실, 그 둘 사이의 경계를 면밀히 다루는 전개는 놀란이 과연 서사 구축 아니 '건축'의 대가임을 실감케 합니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전기 영화임에도 인물의 내적 갈등에 대한 치밀한 시각적 형상화로 지루할 새를 주지 않는 연출 또한 감탄을 자애닙니다. 오락영화처럼 몰입한 끝에 관객으로 하여금 세계가 강요하고 개인이 실행해야 하는 선택과 책임이 파국의 스펙터클을 낳는 과정에 다다르게 하는 추진력에 박수를 절로 보내게 되는 놀란 감독의 이 역작이 결국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우주나 역사보다도 광대한 인간의 연대기입니다.



2위 <이니셰린의 밴시>


출연: 콜린 파렐, 브렌단 글리슨, 케리 콘돈, 베리 케오건

감독: 마틴 맥도나


어떻게 이런 이야기로 이만큼 빼어난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까, 물음표 섞인 경탄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갑자기 절교를 선언한 친구, 그리고 또 자신에게 아는 척을 했다간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서 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약속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향하는 곳은 뜻밖에도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걸 또 현학적인 대사나 사색하는 인물들을 가지고 전개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순하면서도 새삼스럽게 맞는 말들이 오고 가며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보내며 스쳐 지났을 근원적 질문을 건드립니다. 타인과의 다정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인간의 본성과 모든 관계에는 종말이 있기 마련이라는 세상의 섭리가 부딪히는 순간의 혼란은 크지만, 세상의 거대한 순환 아래에서는 얼마나 하잘것 없는 것인가. 허허실실 웃다가 얼어붙게 되는, 참 한심한 사람이다 하면서 조소를 보내다가 어느 순간 그로부터 허를 찔리고야 마는, 서사와 인물을 가지고 노는 수준의 이 다크 코미디는 소담하지만 거대한 걸작입니다. 



1위 <플라워 킬링 문>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 릴리 글래드스톤, 제시 플레먼스, 탄투 카디날, 존 리스고, 브렌든 프레이저

감독: 마틴 스콜세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여러 영화에서 폭력적이고 어두운 미국 역사의 이면을 고발해 왔지만,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가장 엄숙하고 품위를 갖춘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 엄숙함과 품위는 손에 피를 묻히며 미국의 역사를 만들어 간 인물들이 아니라, 그들의 손에 희생당한 이들을 향해 있습니다. 마치 미국 개척의 과정에서 당연한 절차인 것처럼 자행되어 온 범죄들을 건조하게 보여주는 한편, 악인보다 범인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는 범죄자들의 위선과 그 반대편에서 고통받는 한편 시선을 거두길 멈추지 않는 희생자들의 시선을 교차하며 미국 역사의 죄를 낱낱이 실토합니다. 자국의 역사를 냉엄하게 바라보는 한편, 그 속에서 외면당했던 희생자들의 절규 또한 놓치지 않는 감독의 통찰력은 세월과 상관없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 니로 등 죄스러운 시대를 탐험하는 베테랑 배우들의 굳건한 연기와 함께 송곳처럼 내려꽂히는 릴리 글래드스톤의 한 서린 연기는 가슴을 짓누릅니다. 미국의 원죄에 대한 추적과 고발, 속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오롯이 담아냄으로써 영화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대작입니다. 


이상 외국영화 부문까지 2023년 개인적인 영화 베스트 10을 꼽아 보았습니다.

2024년에도 다양한 수작 영화들이 나와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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