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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an 15. 2024

유쾌 + 쫄깃 + 통쾌 + 따뜻 다 해버리는 시민의 힘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시민덕희>

<시민덕희>(Citizen of a Kind, 2024)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시민덕희>는 2016년에 한 평범한 시민이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내내 평범한 시민들을 향한 진정성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정 장르의 전형성에 기대지 않고 기대만큼 웃기고 따뜻하며, 기대 이상으로 쫄깃하고 통쾌한 웰메이드 오락영화였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 덕희(라미란)는 운영하던 세탁소를 화재로 잃은 후 아이들과 함께 집도 잃고 거리로 나앉게 된 상황입니다. 대출을 알아보던 덕희에게 어느날 주거래 은행의 '손대리'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좋은 대출 상품이 있다고 제안하고, 덕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손대리'의 제안에 응하게 되죠. 그러나 전화 너머 '손대리'가 요청한 각종 수수료 명목의 돈을 3,200만원어치나 입금하고 난 뒤에야 덕희는 그것이 보이스피싱이었음을 깨닫고 절망에 빠집니다. 경찰서로 달려간 덕희는 박형사(박병은)를 만나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당했으니 피해 금액을 되찾고 우두머리를 잡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지만, 박형사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뒤 그녀에게 사기를 친 '손대리'가 또 전화를 걸어오는데, 본명이 재민(공명)이라는 그 청년이 한다는 말이 자신도 여기 끌려와 갇힌 신세인데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아는 걸 다 알려줄테니 경찰에 제보해 구출해 달라는 겁니다. 이에 덕희는 경찰에 다시 SOS를 쳐 보지만, 수백억대 범죄로 서 안이 난리통인 와중에 3,200만원어치 피해는 후순위로 밀리고 맙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도 힘들지 모를 상황에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던 덕희는 마음 맞는 동료인 봉림(염혜란)과 숙자(장윤주)와 함께 보이스피싱 조직의 콜센터가 있는 중국 칭다오로 직접 향합니다.


<시민덕희>(Citizen of a Kind, 2024)


<시민덕희>를 보면서 기대 이상으로 가장 만족했던 점은 긴박한 추적과 짜릿한 응징의 서사가 상당히 균형을 잘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추적과 응징의 배경을 단단히 세팅하는 것인데, 서로 다른 측면으로 보이스피싱 범죄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덕희와 재민의 이야기가 그런 면에서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여갑니다.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도 당할 정도로 점점 치밀해지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속절없이 당한 뒤 일어나는 후폭풍은 피해자인 덕희 관점에서 철저히 그려지며 사실적이면서 절박한 상황 묘사로 보는 이도 덩달아 깊은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다른 한편에서 재민이 청년 고액 알바라는 미끼에 걸려 보이스피싱 조직에 강제적으로 가담한 뒤 겪게 되는 보이스피싱의 조직의 실상은 실제로 어디엔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을 듯 실감나게 그려지며 경각심을 한껏 일깨웁니다. 보이스피싱 범죄가 어떤 식으로 악의적으로 일어나는지, 이로써 평범한 시민들이 금전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정신적으로 얼마나 큰 피해를 입게 되는지를 두루 보여줌으로써 후반 통쾌한 일망타진으로 이어질 영화의 동력은 점점 그 가속도를 붙여갑니다. 


그러나 <시민덕희>에서 방점을 찍는 부분은 범죄에 대한 고발보다 그런 악랄한 범죄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삶을 이어나가는 소시민들의 의지입니다. 덕희와 동료들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본거지인 칭다오로 호기롭게 나서는 것은 특출난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없는 사람 등골까지 빼먹는 악랄한 자들에 굴복하지 않고 반드시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자신같이 좌절한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한 명이라도 다시 살아내도록 하겠다는 결의가 능력치의 한계를 감수하고도 덕희로 하여금 위험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죠. 당연히 주도면밀한 범죄 조직을 스스로 압도적으로 응징할 수는 없을지라도 덕희와 동료들은 각자의 역량을 모아 가능한 최선을 다해 범죄를 추적하고, 그런 현실성 덕에 결과에 더욱 진심어린 응원과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여느 영화들에서 리얼리티란 때로 팍팍한 현실 앞에 우리를 굴복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범죄의 거대함보다 거기에 굴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의지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영화는 어떠한 상황도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으로 돌파해가는 덕희와 동료들의 호흡을 영화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그리고, 덕희와 재민의 동맹을 통해 악랄한 범죄의 마수 앞에서 손을 잡는 피해자들의 연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시민덕희>(Citizen of a Kind, 2024)


영화를 보면서 유쾌하고도 쫄깃하게, 통쾌하고도 따뜻하게 몰입할 수 있는 데에는 이번 영화로 첫 상업영화에 데뷔한 박영주 감독의 침착하고 안정된 연출력과 더불어 '연기 구멍'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탄탄한 배우진의 활약 또한 매우 큽니다. 저마다 뚜렷한 커리어를 쌓으며 주목받고 있는 배우들이 그에 걸맞는 존재감으로 장면장면마다 존재감을 가득 채우죠. 타이틀롤인 덕희를 연기한 라미란 배우가 무엇보다 그 중심을 단단하게 잡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를 당한 소시민의 애타는 상황을 절절하게 그려내며 마음을 움직이는 한편, 범죄의 마수에 굴하지 않는 소시민의 힘과 넉살 또한 특유의 시원시원한 연기로 표현해내며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영화에 온기와 활기를 모두 불어넣는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덕희와 함께 동맹에 나서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된 피해자 청년) 재민 역의 공명 또한 총명한 연기로 극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해외 취업의 덫에 걸려 피해를 겪는 청년의 위태로운 상황을 긴박감 넘치게 전하는 한편, 선량함과 용기를 함께 갖춘 청년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와 함께 봉림 역의 염혜란, 숙자 역의 장윤주, 애림 역의 안은진 배우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덕희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든든한 동료들로서 관객에게 웃음은 물론 응원을 북돋으며, 박형사 역의 박병은 배우는 밀려드는 수사 업무에 허덕이던 중 덕희의 행보에 다시 한번 직업적 사명에 불을 붙이게 되는 현실적인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며 미워할 수 없는 연기를 선보입니다. 영화의 반 이상 되는 분량동안 얼굴의 절반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소탕되어야 마땅한 악인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보이스피싱 조직 총책 역의 이무생 배우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표면적으로 피해 당사자가 스스로 돈을 입금케 하면서 발생하기에, 피해자들은 그로 인하여 벼랑 끝에 몰리는 상황에 처하고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덥석 입금한 것도 잘못'이라는 시선에 유독 더 큰 모멸감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시민덕희>는 그런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위로를 건넵니다. 범죄 피해를 당한 이들의 처지에 함께 가슴 아프게 되고, 범죄 조직의 실상에 함께 가슴 졸이게 되고, 범죄 추적의 행보에 함께 힘을 내게 되고, 범죄 응징의 순간에 함께 통쾌함을 느끼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는 피해를 당할지언정 삶의 의지는 꺼질 줄 모르는 평범한 시민들을 향한 응원과 위로가 내내 영화 내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 진정성에 더욱 시원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민덕희>(Citizen of a Kind,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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