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듄: 파트2>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SF 소설 대작을 영화화한 '듄' 시리즈의 두번째 편 <듄: 파트2>는 팬데믹 시국에 개봉했음에도 국내를 비롯한 세계적 흥행에 성공한 전편에 이어 많은 팬들의 기다림 끝에 등장했는데요, 원작의 열혈 팬인 감독의 야심과 본격적으로 투입되는 물량과 비로소 본 궤도에 오르는 캐릭터와 이야기가 더해져 팬들의 기다림에 벅차게 부응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전편만 보았을 때에는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창작물들의 원형이 되었기에) 익숙한 영웅 탄생 신화에 바탕을 둔 대서사극으로 다가왔지만, 이번 2편을 보고 난 뒤 이야기는 오히려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으니 그것은 타협하지 않는 감독 고유의 터치가 깃든 시청각적 스펙터클과 예리한 문제 의식, 그로 인해 더 생동하게 되는 캐릭터들 덕분이었습니다.
우주의 운명을 좌우하는 자원인 스파이스를 둘러싼 치열한 암투가 펼쳐지는 먼 미래의 우주. 백성들의 신임을 받는 유서 깊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황제 샤담 4세(크리스토퍼 월켄)의 뜻에 의해 스파이스가 대량 매장된 행성 아라키스의 관리를 맡게 되었으나, 이는 황제의 아성을 위협하는 이 가문을 멸족시키려는 황제의 계략이었고 결국 황제의 명에 따라 라이벌인 하코넨 가문에 의해 완전히 파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 가문의 아들인 폴(티모시 샬라메)와 어머니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는 살아남았고, 통과의례를 거쳐 아라키스의 원주민 종족인 프레멘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과의례를 거치는 과정에서 폴이 프레멘이 기다리던 구원자, 즉 예언 '리산 알 가입'일 수도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이 과정에서 종교에 신실한 남부 출신 프레멘과 그렇지 않은 북부 출신 프레멘이 의견차를 보입니다. 한편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멸족시킨 하코넨 남작(스텔란 스카스가드)은 아라키스를 넘겨받을 후계자로 조카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를 지목하니,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소시오패스로서 우주에 불어닥칠 피바람을 예고합니다. 한편 미래를 볼 수 있는 여성 종교 권력 집단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이기도 한 레이디 제시카는 프레멘의 일원이 된 후 의식을 통해 부족을 정신적으로 이끌 수 있는 대모의 위치에 오른 뒤, 아들 폴을 프레멘이 고대하는 메시아로 만들기 위한 모종의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문제는 폴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메시아의 존재를 애초에 믿지 않는, 따라서 누군가를 숭배하고 신성시하는 것 또한 믿지 않는 프레멘인 차니(젠데이아)라는 것입니다.
감독이 호언장담했듯 과연 1편은 워밍업 수준이었음을 <듄: 파트2>는 보여줍니다. 1편이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가 서사의 중심에 서야만 하는 명분을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면, 2편은 그렇게 서사의 중심에 선 폴이 정치와 종교,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까지 얽힌 우주 전쟁에 본격적으로 휘말리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1편에서 이미 세계관 세팅을 웬만큼 마쳤기에, 영화는 1편의 이야기를 플래시백이나 대사로 요약 설명해주는 수고를 따로 들이지 않는 한편 1편에서부터 보여준 고유의 태도로 본론에 진입합니다. 일반적인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 영화보다는 한참, 심지어 '반지의 제왕' 같은 익숙한 대작 판타지 시리즈와 비교해도 <듄> 시리즈의 호흡은 비교적 긴 편인데, 이는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아라키스라는 행성의 성격과 무척 잘 어울리기에 가능합니다. 끝 모를 모래사막이 물결을 이루며 세상을 뒤덮은 가운데 그 아래에서는 천지를 뒤흔들 만한 크기의 모래벌레(샤이 훌루드)가 무서운 힘을 머금고 또아리 틀고 있는 아라키스와 같이, 영화 또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우주의 드넓은 풍광과 그 위에 선 작은 인간의 뒤엉킨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 본 끝에 뜨겁고 격렬한 전투로 돌입하니 말입니다. 1편보다 당연히 액션 시퀀스는 늘어났는데 단지 물량공세와 인해전술로만 승부하지 않고 모래벌레 탑승 장면부터 결투장에서의 대결, 군대와 군대 간의 사막 전투 등 다양한 규모의 액션 시퀀스에서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연출로 다채로운 볼거리를 선사합니다. 모래벌레 탑승 장면에서는 땅이면서도 바다같은 사막의 고유한 질감을 한껏 살려 지표면을 한껏 헤집어놓으며 펼쳐지는 질주의 쾌감을 극대화하는 한편, 페이드 로타의 첫 등장 장면이기도 한 결투장 장면에서는 흑백의 색감으로 모던한 감각과 절제미가 가득한 연출을 보여주며 독보적인 개성을 뽐냅니다. 대망의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에서는 전통적인 원경의 인해전술 속에 이 사이를 가로지르는 모래벌레들의 이채로운 스케일이 더해지며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자아냅니다. '녹색의 낙원'과는 거리가 한참 먼, 위험하지만 매혹적인 이미지의 사막 행성이 지니고 있는 여백과 점/선/색의 미학을 살뜰히 챙기는 영상미는 그 스펙터클의 한계를 한껏 스트레칭하여 최대치로 확장해 가는 듯한 한스 짐머의 음악이 더해져 잊지 못할 장면을 숱하게 만들어 냅니다. 1.43:1 비율의 풀 아이맥스 화면으로 목격하는 붉은 사막의 물결과 그 광활한 풍경을 누비는 전사들의 전투는, 그야말로 장관이고 절경이며 테크닉의 장인이 건네는 선물임에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의미 없이 전시되기만 하는 볼거리는 아무리 스펙터클해도 매력적일 수 없습니다. <듄: 파트2>의 이 많은 볼거리들이 특히 관객의 마음에 강력하게 떠밀려 오는 것만 같은 것은, 이 볼거리들을 통해 풀어내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지극히 입체적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둠이 드리운 우주를 구할 고전적인 메시아 신화일 줄만 알았던 이야기는 복수를 향한 욕망, 황제와 대가문과 베네 게세리트까지 다양한 세력들이 얽힌 권력을 둘러싼 복마전이 더해지며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게 됨은 물론 오히려 메시아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주를 구할 절대자 '리산 알 가입'으로 지목된 폴 아트레이데스는 1편 초반부터 꿈의 형태로 미래를 보기 시작했고, 리더의 자리를 공고히 하며 그러한 예지력은 더욱 확장되고 또렷해집니다. 그런데 그런 예지력으로 거리낌없이 미래를 '선언'하고 그 미래를 따라가는 것이라면 그는 과연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끄는 메시아라고 할 수 있는가. 심지어 그런 메시아의 존재를 옹립하고 그 메시아가 제시하는 미래를 유효하게 만들기 위한 갖은 술책이 세계의 뒤편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술책에 의한 메시아를 우리는 메시아라고 부를 수 있는가. 더구나 그렇게 메시아가 된 존재가 복수심에 불타 자신의 반대편에 있는 세계를 쓸어버리려 한다면, 어느 한쪽에게만 메시아가 될 수 있는 존재를 우리가 메시아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런 갖은 질문이 교차하고, 그 속에서 폴 아트레이데스는 이상적인 성장만 해나가는 게 아니라 신화와 비극의 기로 사이에서 위태롭게 각성하고 도약하며 보는 이로 하여 끊임없이 경계하고 긴장하게 만듭니다. 폴과 차니의 더욱 짙어진 감정선 또한 단지 러브라인 조성에 머물지 않고 이러한 긴장감 조성에 크게 일조한다는 점 또한 눈에 띕니다. 둘은 언제까지나 서로를 사랑할 것임을 약속하지만, 문제는 차니가 (언젠가 폴이 그 이름을 취하게 될) 메시아의 존재를 믿지 않는 인물이라는 점이 이야기 속 팽팽한 갈등에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절대선이나 완벽을 향해 가는 존재가 아닌, 휘둘리고 방황하며 갈등하길 거듭하는 인간이라는 점이 그저 고전적이어 보였던 이야기를 갈수록 흥미롭게 만듭니다.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 역의 티모시 샬라메는 이번 2편에 이르러 왜 자신이 이 역할을 연기해야만 하는지를 생생하게 입증합니다. 그저 액션 히어로로서 몸을 잘 써야 하기 때문에, 우주를 구할 영웅으로서의 카리스마와 위엄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번뇌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인물이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이 역할을 맡았음을 절감합니다. 과연 메시아가 될 운명의 인물답게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한껏 과시하는 한편, 섣불리 폭발하곤 하는 울분과 떨쳐낼 수 없는 사랑까지 아우르며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한편 차니 역의 젠데이아 또한 폴과 애정관계 혹은 가치관의 대립 관계를 형성하며 본격적으로 활약합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와는 또 확연히 다른, 명확한 자기 주장으로 누가 뭐래도 세상을 자기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인물의 강인한 면모를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1편에선 인자한 어머니처럼 보였으나 이번 2편에서 현저히 달라진 모습으로 극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레이디 제시카 역의 레베카 퍼거슨도 기억에 남습니다. 한편 2편의 새로운 빌런으로 등장하는 페이드 로타 하코넨 역의 오스틴 버틀러가 보여주는 변신도 무척 강렬합니다. <엘비스> 속 모습은 물론 배우 본연의 모습도 완전히 지워버린, 살인과 파괴에 굶주린 광인의 모습만 남은 얼굴을 소름끼치게 보여주며 또렷한 존재감을 새깁니다. 거니 역의 조슈 브롤린, 스틸가 역의 하비에르 바르뎀, 하코넨 남작 역의 스텔란 스카스가드, 황제 샤담 4세 역의 크리스토퍼 월켄, 대모 모히암 역의 샬롯 램플링 등 관록의 중견 배우들이 여전히 세계관의 무게감을 든든하게 형성하고, 이룰란 공주 역의 플로렌스 퓨, 베네 게세리트의 일원인 마고트 펜링 역의 레아 세이두가 짧지만 강렬한 등장으로 이후 이야기에서 보여줄 활약을 기대하게 합니다.
<듄: 파트2>에 이르러 액션은 비로소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고 전투는 더욱 거대해질 것임을 예고하지만, 인물들의 앞날은 오히려 더 안갯속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뜻으로 귀결될 수가 없는 복수와 야심, 욕망과 사랑이 온갖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나온 원작소설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내용보다 그 이야기가 '우리 눈 앞에 어떤 '장면'으로 펼쳐질 것인가'일 것입니다.) 하나 부인할 수 없는 단점을 꼽자면, 짧지 않은 시간을 속절없이 빠져들며 보다가 끝날 때쯤 결국엔 '다음 이야기를 보려면 또 최소 2~3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된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렇듯 <듄: 파트2>는 감각적, 감성적, 철학적으로 충만해서 볼 것도 할 이야기도 몹시 많은, 안팎으로 이름 그대로의 '대작'인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