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필드 10번지> - 댄 트라첸버그 감독
원작의 인기에 기댄 블록버스터들이나 속편들의 향연으로 식상해져 가는 할리우드에 때때로 신선한 이벤트들이 활력을 불어놓고는 한다. 지금은 <스타워즈>와 <스타트렉>, 두 양대 SF 시리즈의 감독을 모두 거치는 진기록을 쓰며 대형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J.J. 에이브럼스도 인기 미드 제작자 출신으로서 이런 '신박한' 이벤트를 할리우드에서 대담하게 기획한 적이 있다. 8년 전에 등장한 영화 <클로버필드>가 그것이다. 길게는 1~2년 전부터 자신이 기대작임을 대중에게 강하게 어필하게 마련인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클로버필드>는 미드 시절 '떡밥의 제왕'이라 불렸던 J.J. 에이브럼스가 어떤 비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내용으로만 알려졌을 뿐, 누가 나오고 어떤 이야기인지를 전혀 밝힌 바가 없다. 자유의 여신상 머리가 날아가는 충격적인 이미지가 담긴 예고편과 포스터로 실체가 불명확한 궁금증을 한껏 자아내던 영화는 마침내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는 <클로버필드>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공개되었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기특했던 것은, 에이브럼스가 던진 떡밥을 문 관객들이 실은 별것 없다는 실망감보다 뜻밖의 것을 만났다는 놀라움을 더 많이 느꼈다는 것이다. 놀라운 방식의 마케팅은 놀라운 형태의 콘텐츠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런데 그 두번째 프로젝트가 또 나온단다. 이번에도 마케팅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현지 개봉 두 달 전이 되어서야 제목과 포스터, 예고편이 한꺼번에 공개되었다. 워낙 마케팅을 바트게 하는 한국영화계에서도 이 정도로는 마케팅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 <클로버필드 10번지>를 통해 이번에는 에이브럼스가 '속편'이라는 콘텐츠가 지니게 마련인 편견마저도 깨고 싶었던 모양이다. 엄밀히 말해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속편 아닌 속편'이다. '클로버필드 프로젝트'라는 같은 지붕 아래에서 비슷한 듯 전혀 다른 길을 간다. 방향이 짐작되지만 한치 앞을 예측하기는 힘든 이야기, <클로버필드>와의 연결고리가 있는지 없는지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만드는 희미한 연결성. 거기에 뜻밖에도 잠깐의 기교에 기대지 않고 침착하고 촘촘하게 긴장감을 쌓아올리는 솜씨까지. 에이브럼스는 이 프로젝트 혹은 프랜차이즈를 지금껏 보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듯 보인다.
미셸(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이 황급히 짐을 싸고는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반복적으로 걸려오는 남자친구의 전화를 애써 외면하는 가운데, 그녀가 어딘가로부터 벗어나려 하는 건지 아니면 어딘가로 향하려 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미셸의 차가 무언가와 강하게 부딪히면서 사정없이 구르는 사고가 발생하고, 의식을 잃었던 그녀는 곧 어떤 밀폐된 공간 안에서 깨어나게 된다. 영양제 주사가 꽂혀 있는 팔과 결박되어 있는 다리. 이내 밀폐 공간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오고, 제발 나를 해치지 말아달라는 미셸의 말에 남자는 도리어 내가 너를 구했노라고 말한다. 하워드(존 굿맨)라는 그 남자의 말에 따르면, 지상에 거대한 핵 공격이 있었고 이로 인해 지상의 공기가 잠시만 노출되어도 목숨이 위태로워질 만큼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미셸은 당연히 단번에 믿을 수 없는 가운데, 밀폐공간을 벗어난 미셸은 하워드와 함께 지하 방공호에 기거하는 에밋(존 갤러거 주니어)이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미셸은 하워드, 그리고 하워드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에밋과 함께 의심과 불안이 뒤엉킨 동거를 시작한다. 하워드는 지상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말하지만, 자동차가 달려가는 듯한 소리들이 여러 차례 천장에서 들리자 미셸은 의심을 거둘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건물 밖에 심상치 않은 것들이 있다는 단서 또한 발견되면서 미셸의 처지는 점점 위태로워진다. 그녀에게는 바깥이 더 위험할까, 아니면 이 안이 더 위험할까.
<클로버필드 10번지>와 프로젝트의 이전 영화 <클로버필드>와 공유하고 있는 공통 분모를 굳이 꼽자면 세 가지 정도다. 제목에 똑같이 '클로버필드'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점, '외계인 침공'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섣부른 예측을 불허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 중에서도 '예측불가성'이라는 요소가 '클로버필드 프로젝트'의 일부로서 지니는 가장 뚜렷한 개성이다. 전편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연출을 보여주는 것부터가 이 '예측불가성'의 일부이다. 프로젝트의 전작 <클로버필드>는 대담한 양식이 관객의 감각을 압도하는 영화였다. 외계인 침공류 블록버스터들이 으레 보여주기 마련인 스펙터클의 과시를 <클로버필드>는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배제했었다. 제 아무리 괴물의 사이즈가 거대해도, 사람의 시야에 다 담기지 못하면 그 몸집을 온전히 다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실적인 스펙터클을 구현하면서 괴물이 습격해 아수라장이 된 도심 곳곳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주인공의 숨가쁜 상황을 시청각적으로 전달하며 일부 관객들에게는 어지럼증까지 유발하기도 했다. 여기에 뜻밖에도 젊은이들의 불타는 사랑까지. <클로버필드>는 말하자면 기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뜨거운 영화였다.
그러나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정반대로 기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차가운 영화다. 무엇보다도 전작과 달리 기술적인 도발을 철저히 배제한다.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도 없이 밀폐공간에 갇히기 전까지의 여정을 고전적인 OST 위에 매끄럽게 얹은 오프닝부터, 영화는 고전적인 스릴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신선한 기술적 시도로 관객의 시각을 자극하기보다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정보량을 철저히 통제하며 관객의 두뇌를 자극한다. 아비규환 속에서 무조건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 달려가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렸던 전작과 달리,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이런 식으로 공간과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면서 오히려 주인공과 관객으로 하여금 무조건적인 믿음이 아닌 끝없는 의심에 시달리게 만든다. 감수성의 온도는 최대한 낮춰야 하고, 대신 두뇌를 신경질적으로 자극해 온다. 영화의 대부분이 지하 방공호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전개되는 만큼, 화면의 움직임과 톤 역시 극도로 점잖다. 어쩌면 같은 세계를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르나, <클로버필드 10번지>는 그렇게 공유된 세계를 운영하는 방법도 천차만별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연결되어 있지만 별개'라는 모순된 말은 <클로버필드 10번지>에 한해서는 사실이다.
전작 <클로버필드>가 지닌 주된 흥밋거리가 '파운드 푸티지'라는 신선한 형식이었다면, 이번 <클로버필드>가 지닌 주된 흥밋거리는 이야기 운용의 묘와 배우들의 연기라는, 오히려 덜 신선하고 더 전통적인 요소들이다. 색다른 형식의 힘에 의존함으로써 다른 영화적 요소들이 잘 보이지 않게 했다는 식으로 전작이 뒤집어썼을 혐의에 철저히 반박하기라도 하듯, 이번에는 신묘한 장비가 주는 혜택을 마다하고 외려 전통적인 영화적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우선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 운용의 묘란 '멀리 보면 방향이 예상되지만 당장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 안에도 상식적으로 힘을 주겠다 싶은 곳과 빼겠다 싶은 곳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예측되는 힘을 줄 곳과 뺄 곳의 위치를 의도적으로 바꿔버린다. 가장 요란할 것 같은 부분을 무난하게 넘어가는 한편, 숨죽이고 조용히 지켜봐야 할 부분에서 뜻밖의 일격을 날리는 식이다. 관객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능력이겠지만, 관객이 어느 정도 예측할 만한 이야기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쥐락펴락할 줄 아는 어떻게 보면 더 대단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빤히 보이지만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외줄타기를 이어가는 기분이 든다.
이야기 운용의 묘로 예측불허의 스릴을 자아내는 가운데,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이 스릴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큼 정보 또한 최소한으로 주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여러 상황들에 대해 관객이 그럴 듯하게 믿으려면 의지할 곳은 뭐니뭐니해도 배우들의 설득력 있는 연기이기 때문이다. 뉴페이스 위주로 캐스팅했던 <클로버필드>와 달리 제한된 가짓수의 인물들을 대부분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에게 맡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생존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끊임없는 의심이 엇갈리는 미셸의 모습을 연기하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와 그런 미셸에게 구원일지 위협일지 모를 인물인 하워드를 연기하는 존 굿맨의 팽팽한 대립은 덕분에 이 미지의 공간에 충분한 설득력을 부여한다. 평소 연상되는 호탕한 호인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포커페이스에 가깝게 무표정한 얼굴로 신경질적인 친절을 베푸는 하워드를 완벽히 소화해낸 존 굿맨은 이 '설득력 있는 긴장감'을 구현해내는 결정적인 인물이다. 굿맨인지 배드맨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그의 연기 색깔은, 잠시도 관객이 편안해선 안되는 이 영화의 노선에 강력한 힘을 실어준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다이하드 4.0>, <링컨: 뱀파이어 헌터> 등 액션영화에서 주로 활약을 펼치며 강인한 생존의 이미지를 구축해 온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의 연기도 믿음직하고, <뉴스룸>으로 익숙한 얼굴인 존 갤러거 주니어가 보여주는 느슨하고 인간적인 에밋의 모습도 인간적이다. 영화의 태반이 이 세 사람이 좁은 공간 안에서 형성하는 긴장어린 관계일텐데,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명확히 캐릭터를 구축한 덕에 이 관계는 성공적으로 관객들을 이끌어나간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외계인 침공'이라는 SF적 설정에 '밀실 스릴러'라는 전통적인 장르 장치를 끌어옴으로써 오히려 새로운 결과물로 거듭났다. 사실 각각의 면면만 놓고 보면 빤한 갈등이 예상되지만, 그 갈등들이 한 곳에서 충돌하면서 더 이상 빤하지 않게 된다. 밖에 나가면 정체불명의 외계 생물 또는 화학 무기 같은 것이 목숨을 위협할 것이라는 게 점점 확실해지나, 그런 바깥의 상황만큼 안의 상황도 결코 편안하지 않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진다. 이때부터 관객은 '탈출하는 것이 안전하다'와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 사이의 양자택일에 대해 난처해 하게 된다. 수습하기 힘들 만큼 하나의 이야기를 배배꼬는 것보다도, 한 영화에 공존하지 않을 것 같은 설정이나 갈등을 공존시키며 그것들이 부딪치게 하는 것. 그리고 어떤 선택도 장담할 수 없는 그 상황으로부터 하나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것으로써 영화는 예측불가의 스릴을 효과적이고도 책임있게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이야기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는 침착함과 꼼꼼함을, 그렇게 구축된 이야기들을 충돌시키는 데 있어서는 대담함을 발휘한 신예 댄 트라첸버그의 연출력이 놀랍다. 없던 방법을 만들어내는 대신 있던 방법을 충실하게 따르는 듯 사실은 갖고 노는, '곰 같은 여우'와 같은 영화가 이 영화다.
<클로버필드 10번지>까지 등장하면서 에이브럼스가 이 프로젝트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그 심중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도 '외계인 침공'이라는 묵시록적 설정을 공유하면서, 관객의 섣부른 예측을 불허하는 장르적 유희를 시도하는 형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첫편이 재난영화의 형태였고, 이번 두번째 편이 정통 스릴러 형태였으니, 다음 편은 또 어떤 모양새를 취할지 알 수 없다. 이 <클로버필드 10번지>의 결말을 이미 봤다고 해서, 다음 편이 이 영화와는 별개의 스토리로 나올지 연결되어서 나올지 속단할 수도 없다. 앞의 두 편과 달리 1년이나 남은 시점에서 세번째 '클로버필드 프로젝트'가 내년에 선보일 예정임이 드러났지만, 이번 편까지의 모양새를 봤을 때 1년씩이나 남았다고 3편의 모양새를 예측하는 것은 몹시 섣부른 일일 수 있다. 하나의 세상, 하나의 설정을 얼마든지 다르게 기록할 수 있는 시험대로서, '클로버필드 프로젝트'는 한동안 영화팬들을 '흥분의 오리무중'에 빠지게 할 멋진 함정으로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클로버필드 10번지>까지 보고 나니 이 프로젝트가 지향할 '예측불허'의 방향을 확신하게 되었다.
+ 사전 정보를 가급적 접하지 않고 보는 것이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행여 (중요 정보들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포스터와 예고편 등의 사전 정보를 접했다 하더라도,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 또한 참고하시면 좋겠다. 그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다.
+ 영화 초반 미셸의 남자친구 '벤'의 전화 속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는 브래들리 쿠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