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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May 19. 2016

관객 눈치 보지 않는 영화를 위하여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 조성희 감독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Phantom Detective, 2016)

올해 한국영화계가 굵직한 감독들의 귀환에 기대를 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요 몇년 사이 한국영화계가 관객을 잘 끌어모을 수 있는 영화(다른 말로 '천만 영화'라 일컫기도 한다)가 되기 위한 나름의 공식을 많은 사례를 통해 축적해 냈고, 이렇게 성립된 공식을 대형 배급사들이 빤히 활용하면서 풍성했던 개성을 일정 부분 도려냈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 '재미있는 영화', '새로운 영화'에 대한 욕심보다는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에 대한 욕심을 더 냈다는 얘기다. 그러나 관객들은 그들 생각보다도 영민하기에,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라고 무언가를 내놓는 순간 관객들의 기호는 이미 다른 어딘가로 이동하기 일쑤였다. 할리우드는 소재 고갈의 어려움 속에서도 여전히 관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대작들을 턱턱 내놓는 마당에,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만족도와 기대감은 자연히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뭘 어쩌라는 거냐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관객은 관객 눈치를 보지 않는 영화를 더 좋아한다. 관객의 기호를 간파해서 그 기호에 맞춰 만들어낸 영화는 오히려 '속이 빤히 읽히는 영화'로 받아들여 재미없게 여긴다.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기대하기 마련인 블록버스터나 짜릿한 공포감을 기대하기 마련인 호러물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 관객은 자신의 기대를 넘어서 내지르고 싶은 대로 내지르는, 그리하여 생가기 못한 곳으로 카타르시스가 이르게 하는 영화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지난 몇년 간 대형 배급망을 탄 한국영화들 다수가 관객들에게 온전히 만족스럽게 다가오지 못한 것 역시 알아서 관객 눈치를 너무 본 나머지 뜻밖의 도발을 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는 '과잉충성'을 관객에게 보여온 탓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과잉충성의 경향을 가장 적극적으로 따라왔다고 해도 좋을 대형 배급사로부터, '관객 눈치를 보지 않는 영화'가 모처럼 나왔다. 기이한 세계관으로 독립영화 시절 이목을 집중시킨 후 <늑대소년>으로 성공적인 상업영화 데뷔를 한 조성희 감독의 신작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이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제목에서 풍겨져 나오는 진부함을 벗어던진 채, 우리나라의 상업영화가 창작자의 개성과 협력할 수 있는 의미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Phantom Detective, 2016)


1980년대 한국으로만 짐작할 수 있는 정체불명의 시공간. 흥신소 '활빈당'의 탐정 리더 홍길동(이제훈)은 어린시절의 사고로 감정이란 것을 잃어버린 냉혈한이다. 그에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곤 눈앞에서 목격한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를 죽인 김병덕(박근형)이라는 남자다. 사람을 찾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 그가 20여년이 걸려도 찾지 못하던 김병덕의 위치가 어렵사리 파악된 후 홍길동은 김병덕을 찾으러 나서지만 간발의 차로 그를 놓치고 만다. 김병덕의 집에 도착해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이 김병덕을 이미 납치해 간 상황이고, 집에는 김병덕의 두 손녀인 동이(노정의)와 말순(김하나) 만이 남아있다.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어린 자매를 홍길동은 마지 못해 데리고 다니지만, 홍길동의 위장잠입작전에 천진난만하게 깽판을 놓는 말순의 활약 덕분에 사건을 쫓는 데 애로사항을 겪는다. 한편 김병덕의 납치에 현직 경찰인 강성일(김성균)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뒤이어 홍길동은 이 사건에 생각보다 더 거대한 진실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한다. 홍길동이 처단해야 할 자는 과연 김병덕일까, 강성일일까.

<탐정 홍길동>의 가장 큰 성취는 트렌드나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 온전히 감독의 역량으로 세계관, 이야기, 캐릭터가 확고히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관객을 많이 모으겠다는 심산과는 거리가 먼 감독의 인장이 배급사의 입김보다도 더 뚜렷하게 느껴져서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조성희 감독은 단편영화(<남매의 집>), 독립 장편영화(<짐승의 끝>), 상업 장편영화(<늑대소년>)에 이르기까지 일맥상통하는 기조를 유지해 왔다. 익숙한 동화를 레퍼런스 삼은 판타지와 현실이 머금은 공포를 한 이야기에 공존케 함으로써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해 온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동화에 기반한 섬뜩한 현실 풍자가 될 수도 있었고, 다르게 보면 섬뜩한 현실에 더하는 동화적인 희망이 될 수도 있었다. 덕분에 관객의 마음은 하나의 감정이 지배하기보다 두 개 이상의 감정이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장이 되었는데, 이번 <탐정 홍길동>에서도 그런 기조는 이어진다. 이번에 감독이 가져온 레퍼런스는 '홍길동'이라는 한국식 히어로다. 그러나 정의구현, 출생의 비밀과 같이 홍길동 하면 으레 떠올릴 만한 친숙한 코드를 상당 부분 배제하고, '신출귀몰, 불분명한 정체성'이라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활빈당 안에서 악을 무찌르는 데 일조하지만 그 목적을 위해서는 악보다 더 악해질 각오도 되어 있는 냉혈한. 그의 캐릭터 자체에서 이미 동화의 판타지와 현실의 공포가 동전의 양면처럼 버티고 있다. 그의 동행에는 순수하기 이를 데 없는 두 자매가, 그가 맞선 쪽에는 개인의 인생을 파괴하는 것 이상의 악마적 영향력을 떨칠 '광은회'라는 조직이 서게 되면서 <탐정 홍길동> 역시 빛과 그림자를 함께 머금은 감정의 줄다리기를 이어간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Phantom Detective, 2016)


손쉬운 몰입을 위해 관객들에게 특정한 감정을 강요하기 마련인 한국영화들 속에서, 오히려 하나의 감정으로 몰입하는 걸 방지하고 두 개 이상의 감정을 저울질하게 하는 건 확실히 보기 드문 시도다. 홍길동의 과거, 그가 새롭게 맞닥뜨리는 사건의 진상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비밀은 '1980년대 군사정권의 한국'이라는 시대적 배경과도 무관하지 않은 듯한 묵직함을 드러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비밀을 추적하는 과정에 천진한 자매 캐릭터(특히 말순)가 끼어들어 밝고 깜찍한 순간을 수시로 만들어내면서 영화의 분위기도 수시로 반전된다. 무작정 늪같이 우중충한 분위기로 관객을 끌어내리기보다, 긴장에 휩싸인 채 가볍게 발을 딛어야 하는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로 관객에게 감정의 줄다리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더불어 홍길동이 자기 원수의 손녀들과 동행하는 과정에서도 반전을 더하여 전형적인 교감과 심경변화를 보여주길 거부하고, 자신이 뒤쫓는 조직의 비밀을 캐니는 과정에서 적과 동지, 내가 속한 세계와 내가 추적하는 세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것도 관객이 하나의 감정에 무작정 기대는 것을 막으려는 영화의 나름 영민한 시도이다. 어떤 장르를 가져오든 결국은 감정에 호소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장르의 개성을 어느덧 잊게 만드는 한국영화의 습관에서 벗어나, <탐정 홍길동>은 관객이 감정이란 버팀목에 쉽게 기대지 않고 감독이 성립한 세계관의 긴장감, 장르적인 재간을 좀 더 즐길 수 있는 여지를 준다. 

 <탐정 홍길동>이 감수성에 의존하는 드라마 대신 캐릭터와 세계, 이야기가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장르물을 지향하고자 하는 의지는 배경이나 사건을 묘사하는 데에서도 발견된다. 리얼리티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은 그저 '1980년대 군사정권 당시의 한국' 정도로만 짐작할 수 있을 뿐, 그 외에 추측을 이끌어내는 단서들은 나오지 않는다. 로케이션 대신 CG의 힘을 빌린 외경의 아득함, 시대적인 디테일을 걷어낸 세트 디자인은 여기가 한국이라고 해도 지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제3의 장소처럼 여겨지게 만든다. 구체적인 지리 조건이나 사물의 배치 대신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가 지배하며, 각각의 공간은 색감을 통해 그 분위기가 정의된다. 시각적으로 강렬하나 시공간적으로는 모호해서 관객에게는 신비롭게 다가온다. 홍길동의 과거, 그가 쫓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있어서도 영화는 자초지종을 다 설명함으로써 관객들이 무조건 납득해야 한다는 상업영화로서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롭다. 시작부터 홍길동의 과거와 관련된 악몽으로 문을 여는 영화는 강렬한 이미지로 그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한 단서를 끊임없이 제공하다가도, 후반부 진실을 풀어낼 때는 그 묘사를 간명하게 함으로써 호흡을 늘어뜨리지 않는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Phantom Detective, 2016)


이렇게 만들어야 관객들이 좋아한다는 생각, 이렇게 만들어야 관객이 납득한다는 생각을 걷어낸 덕분에, <탐정 홍길동>은 장르물로서의 개성을 뚜렷이 하게 되었다. 홍길동의 현재 활약, 숨겨진 과거, 사랑까지 그의 모든 이야기를 풀어내 관객에게 다채로운 즐거움을 주겠다는 성급한 욕심을 부리는 대신, 판타지가 가미된 미스터리 수사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한 것이다. 때문에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가 허무맹랑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때론 영화가 현실과 완전히 분리된 채로 장르의 자장 안에서만 세상 편하게 뛰놀기를 원하는 관객도 있지 않는가.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익숙해진 관객들이라면 더욱 그럴텐데, 주로 할리우드에서 봐 온 이런 식의 '장르 몰입형' 영화를 우리나라에서도 오랜만에 만나게 됐으니 충분히 반가워 할 만 하다.

이처럼 현실과 거리를 두고 장르의 틀 안에서 노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익숙치 않다 보니, 이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자칫 현실성이 결여되어 박제된 듯한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 그러나 다행히 <탐정 홍길동>의 배우들은 장르영화 속 도식적, 전형적, 상징적 연기를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매끄럽게 소화해냈다. 타이틀롤을 맡은 이제훈 배우는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 초반에 다소 연극적인 대사톤이 지적받은 바 있는데, 이번 <탐정 홍길동>에서는 그러한 드라마틱한 멘트 구사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듯 하다. 메마른 감정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캐릭터의 상징성을 딱 캐릭터에 어울리는 수준의 전형적 연기를 통해 영화 톤과 무척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많은 영화들에서 악역을 연기했지만 이번 영화에서 가장 세련되고 깔끔한 악역을 연기한 강성일 역의 김성균 배우 또한 마치 <매트릭스> 시리즈의 '스미스 요원'을 연상시키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무미건조한 악역의 임팩트를 효과적으로 보여주었다. 주인공과 괜한 러브라인을 형성하지 않고 상관 내지는 동업자로서 어디까지나 비즈니스적 관계를 이어가는 황회장 역의 고아라 배우 또한, 적은 비중임에도 담백한 개성이 살아있는 연기를 펼친다. (이 쯤에서 로맨스가 들어가야 한다는 상업영화의 강박으로부터 이 영화가 자유로운 지점이 여기에도 있다!) 무척 심각하고 어두운 캐릭터인 홍길동과 동행하며 영화 분위기에 균형감을 부여하는 두 아역배우, 동이 역의 노정의 배우와 말순 역의 김하나 배우도 인상적이다. 특히 본능적인 총명함, 다듬어지지 않은 천진함으로 무장해 대사를 던질 때마다 관객의 웃음보를 자극했던 말순 역의 김하나 배우는 <탐정 홍길동>이 이토록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조력자가 되었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Phantom Detective, 2016)


우리 영화계는 관객들이 좋아할 영화를 만들기 위한 어떤 빅데이터라도 보유하고 있을지 모르나, 관객이라는 이름의 까다로운 손님들은 관객 눈치 안보는 영화를 좋아한다. 관객을 나 몰라라 하고 독주하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게 아니라, 관객의 기호와 취향을 손쉽게 예측하고 거기에 맞추어 가는 식으로 관객을 쉽게 아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영화가 관객의 눈치를 본다는 걸 깨닫는 순간, 관객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영화가 흘러갈 때 이미 지치기 시작한다. 영화가 스스로 먼저 그런 강박을 벗어날 때 관객도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걸 감안하면, <탐정 홍길동>은 관객이 가벼운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청량감 있는 영화다. 이야기의 A부터 Z까지를 다 풀어내느라 템포를 잃어버리는 일도 거의 없고 (다만 조금 더 밀도를 강화해 러닝타임을 줄였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관객들이 좋아하겠다 싶은 걸 억지로 우겨넣으며 방향성을 잃는 일도 없다. 캐릭터와 이야기에 상상의 여지를 남기고, 클라이맥스는 구구절절 사연으로 채우며 늘어지는 대신 사이다 같은 액션으로 채워진다. 눈치 보며 강박에 얽매이는 대신 장르물로서의 세계관에 대한 줏대가 꾸준한 이런 영화는 더 잘 됐으면 하는, 다음 편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갈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한국영화들이 이 사실을 깨닫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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