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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Sep 22. 2016

그는 기적의 일부일 뿐이었다

관람직후 리뷰 -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 2016)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새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이하 <설리>)을
돌비 애트모스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기적이란 한 사람의 비범한 선택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당연하지만 바람직한 선택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입니다.
 
우리는 영화에서 많은 것들의 역할 중 하나라도 틀어져서 생기는 혼돈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영화 만드는 이들이 이런 것을 보통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리>는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할 때 생기는 일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적'으로 일컬어지는데 심지어 개연성을 따져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화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이렇게 만들어진 기적의 몸집에 집중하는 대신,
그 기적의 일부가 되었던 사람들 한명 한명의 모습에 주목합니다.
그럼으로써 '기적의 결과'만이 아닌 '기적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누구나 될 수 있는 영웅,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기적을 그려냅니다.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대사로 "할 일을 했다(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영화가 '허드슨강의 기적' 사건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합니다.
엔진 유실로 155명의 인원을 태운 여객기가 위험에 빠졌을 때,
체슬린 '설리' 설렌버거 기장(톰 행크스)이 내린 선택은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결단도 아니었고
그저 40여년 간 한 가지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온 프로페셔널이 위기에 맞서는 방식이었습니다.
 
비행기가 비상착수하는 순간 기장실을 나와 승객들에게 가장 먼저 "탈출하십시오"라고 말한 것도,
모든 탑승인원들이 자리를 비운 뒤에야 자신이 기체를 빠져나온 것도,
탑승자 전원이 생존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야 굳어져 있던 표정을 푼 것도
영웅심에 찬 행동이 아닌, 직업인의 올곧은 직업의식이 낳은 당연한 처사였습니다.
사고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설리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는지 우려에 휩싸이게 되지만,
그것은 그 선택이 옳은 것이었음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한 검증의 과정일 뿐이고,
그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들 역시 악의를 품은 이들이 아닌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 2016)


하지만 영화는 이렇게 '할 일을 할 줄 아는' 의식을 설리에게만 불어넣음으로써
주인공만 어화둥둥 받드는 영웅담으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큰 소리로 승객들에게 대응방법을 숙지시키고,
구조된 후에도 승객을 챙기는 역할을 멈추지 않았던 승무원들,
강에 추락한 비행기를 목격하고 본능적으로 구조에 앞다투어 뛰어든 선박들과
신속하게 달려와 전력을 다해 승객들을 구조한 구조요원들,
이런 믿음직한 스태프들의 요청에 혼란없이 침착하게 따라준 승객들까지.
설리 기장은 기적의 전부가 아닌, 그저 기적의 방아쇠를 당긴 남자였고,
기적을 완성한 것은 그들 모두였음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선망을 넘어선 희망을 안겨줍니다.
 
너무나 모범적인 이야기라 오히려 감동이 반감될 수도 있겠으나,
실화를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옮기려는 연기력과 연출력이 실화임을 실감케 합니다.
최상의 영상과 음향 효과로 마치 사고의 현장에 관객들까지 함께 던져놓은 듯 당시를 재현하고,
설리 기장 역의 톰 행크스는 신뢰감 가득한 얼굴과 강건한 감정 묘사로
이상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가슴 뭉클하게 구축합니다.
다른 감독들이라면 감정을 고양시키는 장면을 꼭 하나 이상 넣었을 이야기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인물들의 맑은 선의와 책임감을 간지러운 칭송 없이 묵묵히 바라볼 뿐입니다.
그 결과 감동은 더 묵직하고 숭고하고 오래 남게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사고 당시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허드슨 강의 기적' 이야기는
이 영화 덕분에 그 당시 매스컴이 낳았던 갖은 허울을 걷어낸 채,
일상에서의 성실하고 책임있는 노력으로 기적을 일궈낸 사람들로 이루어진 건강한 실체를 찾았습니다.
2년 반쯤 전에 이 영화를 봤다면 '저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난다면...'하는 희망에 마냥 행복했을텐데,
지금 보게 되니 '저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났더라면...'하는 탄식이 새어나왔습니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Sully,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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