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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May 12. 2024

혁명 이후의 세계, 충격 대신 성찰을 택하다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 2024)


이전에 나왔던 '혹성탈출' 프리퀄 3부작이 그래픽 기술의 진보와 기대 이상으로 강력한 드라마에 기반한 묵직한 메시지로 큰 성공을 거둔 터라, 그렇게 마무리된 3부작 이후 '혹성탈출' 시리즈의 새로운 챕터를 여는 영화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도 공존했더랬죠. '메이즈 러너' 3부작으로 이미 미래 배경의 3부작 영화를 무사히 이끈 바가 있는 웨스 볼 감독이 새로 메가폰을 잡은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이전 3부작을 뛰어넘을 정도인지는 의문일 수 있겠지만서도 새로운 챕터를 무난히 열 수 있는 수준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성공한 듯 합니다. 이미 이전 영화들을 뛰어넘을 수 없는 측면은 과감히 포기하면서, 그 대신 더 파고들 수 있는 부분을 택하면서 말이죠.


인류가 만들어낸 바이러스로 인해 역으로 인류의 지능은 퇴화하고 유인원의 지능이 진화하면서 시작되었던 혁명. 유인원 시저가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종을 지켜냈고, 그렇게 세상의 주인이 바뀐지 수 세대가 흘렀습니다. 유인원들은 저마다 부족 사회를 이루어 '뭉치면 강하다'고 힘주어 외쳤던 시저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합니다. 자연 친화적이고 공생 지향적인 독수리 부족 족장의 아들 노아(오웬 티그) 역시 그런 가르침을 어렸을 때부터 따라 왔고, 이제 곧 있으면 치르게 될 성인식을 기다리며 친구들과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누군가의 침입으로 무참히 깨지고 맙니다. 프록시무스 시저(케빈 듀랜드)가 이끄는 호전적인 성향의 다른 유인원 부족이 그만 노아의 뒤를 밟았고, 그 결과 그 부족은 독수리 부족을 습격해 터전을 완전히 불살라버리고 부족원들을 모조리 끌고 가 버립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졸지에 홀로 남겨진 노아는 납치된 자신의 부족들을 되찾기 위한 여정에 나서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뒤를 따라온 소녀 메이(프레야 앨런)와 뜻하지 않은 동행을 하게 됩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 2024)


1960년대부터 나온 오리지널 '혹성탈출' 시리즈, 팀 버튼이 리메이크한 2001년작 <혹성탈출>, 2010년대에 나온 '혹성탈출' 프리퀄 3부작까지 지금까지의 '혹성탈출' 시리즈는 인간과 유인원 간의 지배종-피지배종 관계가 전복됨으로써 오는 시각적, 정서적 충격에 기인하여 인간과 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 주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혹성탈출: 새로운 세계>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유인원과 인간의 전면적 대립이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저의 등장 후 수백 년이 흐른 영화 속 세계에서 인간은 거의 멸종된 것으로 간주되고, 군락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유인원들만이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새로이 세워진 세계에서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법한데, 영화는 또 다시 충격을 추구하는 대신 다시 쓰여지는 땅의 역사 위에서 처음부터 곱씹어 볼 만한 근원적인 질문을 꺼냅니다. 진화한 존재의 조건이란,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의 조건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죠. 우리가 지난 3부작에서 주인공으로 만났던 유인원 시저는 이번 영화 속 유인원들에게 거의 신적인 존재입니다. '유인원은 뭉치면 강하다'던 시저의 외침은 금과옥조처럼 부족을 불문하고 유인원들 사이에서 떠받들여지고 있죠. 그러나 그 정신을 실현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입니다. 노아가 소속되어 있던 독수리 부족은 금독수리를 잡아서 잡아먹는 대신 키워서 반려조로 키우듯 공생의 힘을 믿고, 이는 어쩌면 시저가 생전에 추구했던 유인원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에 대해 은연중에 긍정하는 것으로도 읽힙니다. 그들에게 배움이란 세계를 읽어가고 그 세계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인 셈이죠. 그러나 독수리 부족을 습격하는 또 다른 유인원 부족의 수장 프록시무스 시저의 태도는 다릅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스스로를 또 다른 시저라 칭하는 그는 정복이 더 강건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곳곳에 흩어진 부족들을 (무력을 이용해서라도) 규합해야 하며 그렇게 부족은 '왕국'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에게 배움이란 더 강력하게 세상을 이끌기 위한 수단인 셈이죠.


인간 소녀 메이가 극중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유인원과 인간 세력의 전면전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한 유인원들의 이러한 상반된 태도는 인간이 여전히 지배종인 현실 세계를 거울 삼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누구나 크고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세계에서 우리를 보다 우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가능한 더 많이 넓게 끌어안고자 하는 공존의 가치인지, 가능한 더 많은 이들의 위에 서 세상을 이끌어나가려는 정복의 의지인지. 전혀 다른 성격을 띠는 두 개의 공동체를 경험하며 떠밀리듯 어른이 되어가던 이에서 넓고 깊은 경험적 식견을 지닌 리더로 성장해 가는 유인원 노아의 모습,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유인원과 인간 사이에서 맺어지는 일시적 연대는, 이렇듯 세계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는 근원이 무엇인지를 생각케 하는 유의미한 순간들을 만들어 냅니다. 비록 시저가 'No!'를 외치던 순간처럼 전작들이 주었던 전복의 충격과 쾌감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진화를 거치며 지배종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유인원들이 마치 거울처럼 세계를 둘러싸고 인간들이 거듭하던 고뇌를 몸소 보여주는 장면들은 다른 방식으로 신선함을 줍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 2024)


영화에서 혁명 이후 세계에 관해 이러한 성찰이 가능한 것은, 역설적으로 혁명적인 수준의 CG 기술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영화의 상당 분량이 배경부터 캐릭터까지 모조리 CG로 채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입에 방해되는 요소가 거의 없을 만큼의 사실감을 구현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인류는 멸종 내지는 세계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유인원들이 활보하게 된 세상에서 유인원들의 비중은 현저히 늘어날 수 밖에 없는데, CG로 구현된 그 많은 유인원 캐릭터들은 이제 탈을 쓴 인간 배우들의 경직된 얼굴도, 얼굴 여기저기에 모션 인식 센서를 달고 연기하는 인간 배우들의 모습도 연상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예 유인원 배우들이 나와서 연기하고 있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 수준인 것이죠.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서 어느 때보다도 자연스럽게 감정을 읽어낼 수 있고, '불쾌한 골짜기' 같은 부분 하나 없이 그들의 내적 갈등과 정신적 성장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인원 캐릭터의 디테일 뿐 아니라 자연의 산물들로 뒤덮인 인류의 흔적을 나타내는 곳곳의 풍경들, 난이도 극상+극상의 조합이라 할 수 있는 후반부 물에 휩쓸린 유인원들의 전투까지 큰 화면에서 감탄을 연발할 만한 장관들도 등장해 시각적 만족감을 줍니다.


다만 이전 3부작이 그 전까지는 빌런 세력으로 인지되었던 유인원을 주인공으로 삼고 그 중에서도 '시저'라는 중심 캐릭터에 한껏 감정이입할 수 있는 강렬한 드라마를 전개했던 데 반해, 이번 영화에서 그려지는 주인공 노아의 이야기는 다소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따라가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더불어 유인원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말을 하게 되어서인지 깊고 넓은 스펙트럼의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임팩트 있게 보여주기보다 말로 직접 들려주는 경우도 더러 있는 점 또한 흠이라면 흠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성공한 프랜차이즈의 토양의 생명력을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프랜차이즈 위에서 지속되어 온 담론의 의미를 이해하고 제목처럼 새로워진 시대에 맞춰 그 담론을 깊고 넓게 해석해 보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Kingdom of the Planet of the Ape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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