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그녀가 죽었다>는 팬데믹으로 인해 개봉이 미뤄진 끝에 이번에야 개봉을 하게 된, 부득이하게 조금 늦게 나오게 된 영화이지만 여러모로 기대 이상의 인상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선악의 명확한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캐릭터들과 감각적인 연출,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통해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현대 사회의 병폐를 꿰뚫고 있죠. 이 영화가 꾸준히 재미를 놓치지 않는 상업영화이면서도 끊임없이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게 하는 것은, 지켜보는 우리를 상관없는 방관자가 아니라 이내 어떻게든 연관될 수 밖에 없는 연루자로 만들고 말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인중개사 구성태(변요한)는 부동산 카페에서는 '개미아빠'라는 닉네임으로 믿을 만한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며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고, 직장에서는 친절하고 세심한 부동산 전문가로서 고객의 신임을 얻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은밀하지만 커다란 취미는 타인을 관찰(이라고 쓰고 관음이라고 읽을 만한)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집 열쇠를 지닐 수 있다는 직업적 특성을 악용하여,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도 모자라 그 집에서 가장 필요 없을 것이라 판단된느 물건들을 수집하는 악취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성태는 그 취미가 떳떳하진 못할 수 있어도 타니에게 결코 피해를 주지 않는 행위라고 스스로 강변합니다. 그런 그의 레이더의 유명 SNS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가 들어옵니다. 화려한 일상을 자랑하는 한편 동물들과 소외계층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그녀의 일상은 막상 관찰해 보니 SNS 속 삶과 다소 괴리가 있어 보입니다. 구성태는 그런 괴리감에 한편으로 묘한 매력을 느끼고 한소라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한소라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간 해온 짓이 있기에 구성태는 선뜻 이를 신고할 수도 없어 전전긍긍하는데, 그런 그에게 마치 그가 해온 짓을 알고 있는 듯한 의문의 협박이 날아듭니다. 그리고 며칠간 이어진 한소라의 실종을 둘러싸고 형사 오영주(이엘)가 본격적으로 수사를 시작하게 되면서 성태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합니다.
<그녀가 죽었다>(Following, 2024)
<그녀가 죽었다>는 누구나 자신의 삶을 실시간 중계에 가깝게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과 공유할 수 있고, 그런 환경에 따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타인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현대 사회의 폐해를 고발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이를 사회고발극 대신 스릴러 장르의 오락적인 틀 안에서 꽤 능숙하게 구사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영화가 놓치지 않은 것은 관객이 이 이야기를 마냥 즐기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가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캐릭터들에게 정을 붙일 구석을 주지 않는 모습에서 이런 면이 잘 느껴집니다. 이야기의 화자라 할 수 있는 구성태는 멀쩡한 외양과 직업을 가지고서 초장부터 범법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일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내레이션으로 그게 자신의 그저 조금 비밀스러울 뿐인 취미생활임을 누누이 강조합니다. 영화 초반 구성태의 내레이션은 이상하게 명랑하고 그 뒤로 깔리는 BGM마저 맞장구치듯 명랑한데, 얼핏 보면 이 연출은 영화 안에서 상당히 이질적입니다. 그런데 다르게 생각하면 이는 자신의 행위를 일상화-정당화하려는 구성태의 의도를 연출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으로도 읽힙니다. 그래서인지 관객은 초반부터 구성태라는 인물에 대해 (그가 앞으로 극을 이끌어갈 인물임을 인지하면서도) 심리적 거리감을 효과적으로 형성하게 됩니다. 실종된 누군가를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그의 숨겨진 비밀을 추적하게 된다는 스토리는 전형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구도를 띠고 있지만 그 행동의 주체 역시 결코 떳떳하지 못한 입장이라는 점에서, 그렇게 현대사회에서 악의로든 본의 아니게든 자신과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이들이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장르적 구도는 비틀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인공 캐릭터의 스탠스에서 장르적 전형성을 한번 비튼 영화는 중반 이후 이야기의 전개 양상과 시점을 바꾸며 또 한번 비틀기를 시도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는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관점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관점이 충돌하는 이야기로, 사회의 양면을 고루 조망하는 영화가 됩니다. 초반 화자인 구성태를 향해 영화가 보였고 관객이 취한 태도가 그러했듯, 관객은 구성태와 한소라의 이야기를 한때 구경꾼 입장에서 손가락질하며 지켜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절대 관찰자 시점에만 머무를 수 없는, 우리 모두가 누구나 내 삶을 보여줄 수 있고 누구나 남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현대 사회의 구성원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극중 인물들을 향한 손가락질은 이내 우리 스스로에게 향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관심을 간절히 갈구하며 자신의 삶을 열심히 치장하는 '관종'이 되거나, 타인의 삶을 끈질기게 들여다 보며 우월감이든 동경이든 열등감이든 자신의 삶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으려 하는 '관음'을 하거나. 우리 모두가 어쩌면 둘 중 한 쪽의 입장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관음과 관종이 충돌하는 대환장의 시대는 우리에게 당신도 조심하라는 피상적 주의 메시지가 아니라 당신도 이 중 어느 한쪽에 속할지도 모른다는 내밀한 경고를 보냅니다.
<그녀가 죽었다>(Following, 2024)
호감을 줄 수 없고 그러므로 감정이입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에도 장르물을 이끌어가야 하는 캐릭터들을 배우들은 혼신을 다해 연기합니다. 사건을 추적하는 구성태 역의 변요한은 자칫하면 일차원적인 '변태' 캐릭터가 될 수도 있는 인물을, 음침한 욕망과 평판을 향한 갈망 사이에서 위태롭게 얼굴을 갈아끼우는 인물로서 입체적으로 표현합니다. 단련된 사회성이 담긴 표정 뒤에 숨은 불안감을 매끄럽게 연기하며, 스릴러 구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갈 뿐 아니라 극이 전하는 메시지의 표상으로서의 역할 또한 충실히 해냅니다. 한편 이 영화는 작품마다 변화무쌍한 연기를 선보여 온 신혜선 배우가 작정하고 보여주는 또 다른 변신의 좋은 쇼케이스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인플루언서의 모습에서부터 그 뒤에 숨은 예상을 넘어서는 본성까지, 극과 극을 오가는 스펙트럼의 연기를 유려하고 능숙하게 보여주는 그의 열연은 어떤 장르를 맡겨도 그에 걸맞은 얼굴을 보여줄 것이라는 두터운 신뢰감을 다시 한번 형성합니다. 더불어 이전 여러 작품들에서 보여 온 강렬한 이미지 대신 철저히 직업인으로서의 형사를 그리는 데 집중한 오영주 역의 이엘 배우 또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길지 않은 러닝타임 속에서 워낙 스피디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다 보니 그 과정에서 개연성을 일부 양보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가 죽었다>가 강렬한 연출로 담아낸, 현대 사회가 낳은 병폐의 여러 단면을 상징하는 캐릭터들의 충돌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어쩌면 그럴싸한 맛으로 끔찍한 오물의 실체를 숨기고 있는 이른바 '카레맛 똥'이 될 수도, 음침한 시선을 자연스런 모습에 감춘 '똥맛 카레'가 될 수도 있는 대환장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지 우리에게 묻는 듯 합니다. 이런 이야기에 대한 저의 이런 평가를 함꼐 좀 봐 달라고 이런 곳에 올리는 저의 모습까지가 어쩌면 이 이야기의 완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