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악마와의 토크쇼>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은 할리우드 호러 영화 <악마와의 토크쇼>를 개봉 전 프리미어 상영으로 미리 보았습니다. 영화는 '악마와 접선하는 순간을 토크쇼가 생방송으로 보여준다'는 기발한 설정만으로도 우선 관심을 끌지만, 이 기발한 시작을 예리한 시선과 집요한 연출로 클라이맥스까지 이끌고 가며 호러 장르에서 좀처럼 만나지 못했던 고유의 공포와 뒤틀린 쾌감을 선사합니다. 호러 영화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사실 호러의 탈을 쓴 신랄한 사회극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영화는,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현재에 와서도 1도 빛바래지 않은 화두를 제시하며 얼얼한 뒷맛을 남깁니다.
1970년대 미국은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밖으로는 전쟁의 불길이 거센 만큼 안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향한 부르짖음이 어느 때보다 컸고, 그 투쟁의 물결만큼 불안과 방황 또한 극심하여 끔찍한 범죄의 현장을 대중은 뉴스에서 날것 그대로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대중은 현실을 잊게 해줄 자극을 찾아 헤맸고, 미디어는 그런 대중의 수요에 부응하여 통제불능에 가깝게 갖은 자극을 쏟아내기도 했죠.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심야 토크쇼 '올빼미 쇼'와 진행자 잭 델로이(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가 있습니다. 라디오 DJ 출신인 잭 델로이는 야심차게 TV 심야 생방송 토크쇼 진행자 자리를 꿰차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철옹성 같은 동시간대 프로그램의 기세에 눌려 시청률은 좀처럼 반등하지 않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개인적인 아픔까지 더해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기도 하고요. 생방송으로 출연자들끼리 싸움을 붙여도, 암 말기에 있는 아내를 출연시켜 눈물겨운 사랑이야기를 들려주어도 경쟁 프로그램을 꺾지 못하는 상황을 반전시킬 아이템은 할로윈을 맞이에 준비됩니다. 바로 다가오는 할로윈 주가 프로그램의 수명을 결정지을 시청률 조사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자극적인 심령 관련 소재로 채워진 이번 토크쇼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영능력자 크리스투(파이살 바지), 그런 영능력자들을 검증하는 이른바 영능력자 사냥꾼 카마이클 헤이그(이안 블리스), 그리고 최근 '악마 들린 소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릴리(잉그리드 토렐리)와 그녀의 후견인이자 초심리학자 준(로라 고든)의 출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대망의 생방송이 시작되고, 초반부터 피어오르던 심상치 않은 기운은 마지막으로 릴리와 준이 출연하면서 한껏 증폭됩니다. 잭과 제작진은 릴리를 통해 악마와 대면하는 순간을 감히 생방송으로 내보내기로 하고, 그들의 선택은 미국 안방극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습니다.
지금은 TV 시청률이 날마다, 심지어 실시간으로 집계되기도 하지만 영화의 배경인 1970년대만 해도 TV 시청률은 지금과 다르게 집계되었습니다. 시청률을 집계하는 기간이 따로 정해져 정기적으로 전개되고, 그 기간동안 각 TV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해 제작되었던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의 라디오 청취율 조사 방식이 이처럼 기간을 별도로 정하여 설문조사 형태로 이루어지는 식인데, 아마 이 당시에도 설문조사와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조사에 임하는 시청자들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려면 그 어떤 프로그램들보다도 대담한 콘텐츠로 승부해야 했겠죠.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사달은 이러한 배경 위에서 펼쳐졌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마도 도덕적 감수성이 현재보다도 현저히 낮았을 1970년대 TV는 무엇을 보여줘야 하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 또한 지금만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중계하든,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강렬한 자극을 제공하든, 미디어는 대중의 수요에 열렬히 화답할 뿐 책임은 뒷전으로 미뤘을테죠. 영화는 그처럼 도덕적 책임까지 생각하기 이전, 자극에 복무하며 성공을 좇던 당대 미디어의 온상을 당대 TV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 예리하게 까발립니다. 채널 ID 영상부터 해서 실제로 1970년대 '올빼미 쇼'가 방영되는 채널로 돌린 것처럼 시작한 영화는, 당시 TV 토크쇼 프로그램이 구사했을 시청각적 형식을 집요하게 재현합니다. 메인 MC와 그의 진행과 객석 분위기를 돋우는 보조 MC, 밴드와 게스트로 이루어진 출연자 구성, 메인 MC가 먼저 등장해 몇 가지 농담으로 객석 분위기를 띄운 후 게스트를 순서대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시범을 지켜보는 구성은 당시 TV 토크쇼가 실제로 이렇게 전개되었겠구나 눈에 선하게 그려지게끔 만듭니다. 일부러 저하된 화질과 변형된 비율까지 적용하며 큐시트를 따르듯 정해진 순서를 따라 전개되죠. 때문에 차곡차곡 쌓여가던 긴장감이 후반부에 폭발하는 흐름 자체는 익숙할 수 있으나, 이렇게 TV 프로그램의 일반적 구성을 영화 전개에 그대로 대입함으로써 새삼 신선하게 느껴지도록 합니다. TV 프로그램 큐시트를 그대로 재현하듯 전개가 이뤄지기 때문에 공포 분위기를 별도로 조성하지 않고, 그래서 호러 장르로서의 임팩트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무서운 것은 따로 있으니,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극단으로 치닫는 무모함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보조 MC 거스(리스 오터리)의 말 등 여러 장면을 통해 향후 끔찍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여러 차례 암시합니다. 반전이랄 것도 없는 이 예상된 앞날을 향해 그러나 잭과 제작진은 돌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들에게는 호응이나 돌팔매보다도 무관심이 가장 무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긍정이든 부정이든 사람들 입에 열렬히 오르내리면 '이슈메이커'로서의 유명세를 톡톡히 누릴 수 있었던 시대였고, 잭과 방송사에게는 이번 할로윈 특집 생방송이 그런 이슈메이커 자리에 앉을 절호의 기회인 것이죠. 토크쇼에는 영능력자나 초심리학자 등 심령 현상을 믿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이를 믿지 않아 검증하려는 이도 게스트로 함께 등장합니다. 속임수로 돈을 벌고픈 심령술사와 그들을 인신공격 수준으로 비판하는 회의론자 사냥꾼은 언뜻 대립 구도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미디어가 주는 성공의 유혹에 매료된 이들이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습니다. 여기에는 그들을 대면시켜 굳이 싸움날 상황을 만들고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려는 제작진도 포함되죠.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MC의 진행을 따라 관객은 믿기 힘든 현상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되지만, 이게 진짜인지 속임수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영화에 주요하게 등장하는 '최면'이라는 소재와 일맥상통하게 됩니다. 최면이라는 행위가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의 진위를 조작하여 최면 대상을 조종하듯, 자본에 손쉽게 복종하는 현대인들이 스스로 자극과 쾌감이라는 최면에 복종하게 되는 현실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쇼에 서게 되는 자들은 악마를 불러낸 이들, 악마가 된 이들, 그리고 악마를 만들어내는 이들 뿐이니 어쩌면 이 안에서 지옥이 탄생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시청률의 유혹에 사로잡힌 '방송국 놈들'이 제 발로 파국으로 걸어들어간다는 이야기는 끝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예상한 끝에 이르러 목격하게 되는 것이 주는 충격은 새삼 큽니다. 마치 최면에서 깨어나 TV 밖으로 나온 우리들이, 한껏 최면에 빠져 있던 TV 속 우리들의 모습을 목도하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이 영화가 70년대 심야 TV 토크쇼의 형식을 악착같이 구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진행자 잭 델로이 역의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은 그야말로 발견 수준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여러 대작 영화에서 비주얼은 인상적이지만 대체로 과묵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던 그는, 이번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마치 단단히 벼른듯 당대 토크쇼 진행자 특유의 지칠 줄 모르는 입담을 과시하며 마치 당시의 TV를 튼 듯 관객을 착각하게 만듭니다. 한편 막다른 길에서 성공을 위해 위험한 선택으로 뛰어드는 이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내면 또한 중간중간 보여줌으로써 한편으로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진정성을 더합니다. 이 밖에 토크쇼를 채우는 다른 출연자들 역의 배우들 또한 모두 낯선 얼굴임에도 영화 속에서 당대 TV 토크쇼에 실재했을 법한 풍경들을 실감나게 만들어내며 극을 단단하게 채워나갑니다.
<악마와의 토크쇼>에서 이 무시무시한 쇼를 만들어낸 사람들은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비정상적인 광기에 휩싸여 있다기보다 어쩌면 투철한 직업정신처럼도 보이는, 주목받고 성공하는 것에 다만 절실히 매달릴 뿐인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을 따름이죠. 영화가 50여년 전 심야 토크쇼의 기괴스러움을 꼬집으면서 동시에 추억하며 만들어낸 풍경은 이렇듯 시대로부터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를 공고히 이루고 있었던, 자극과 냉소와 관심에 모두 목말랐던 인간 군상을 신랄하게 담아내 더욱 모골이 송연하게 다가옵니다. 호러라는 장르는 단지 오래 전 아득히 사라진 줄 알았지만 실은 지금도 현현하는 이 세계의 공포를 들여다 보기 위한 통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