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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Apr 28. 2024

이토록 섹시한 스포츠, 이토록 에너제틱한 로맨스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챌린저스>

<챌린저스>(Challengers, 2024)


테니스를 소재로 청춘 남녀들의 불꽃 튀는 삼각관계를 보여주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영화 <챌린저스>는 그간 감독이 선보인 영화들 중 가장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역동성이 테니스 경기의 승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그 승부를 둘러싼 남녀의 요동치는 감정선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영화는 독보적인 에너지를 갖습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본스 앤 올>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 안에서 사랑에 관한 탐구를 때론 애절하게 때론 집요하게 이어 온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테니스 코트에서 연애하는' 수준이 아닌, 테니스와 사랑을 황금비율로 결합한 이번 영화에서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을 완성해 내고 맙니다.


타시(젠데이아)는 주니어 시절 실력과 쇼맨십을 겸비한 타고난 스타성으로 커다란 팬덤을 형성하고 유수 브랜드 모델 자리까지 꿰차며 말그대로 잘 나갔던 테니스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불의의 부상 후 선수로서의 꿈은 그만 꺾이고, 대신 테니스 선수로 전향하여 지금은 남편인 아트(마이크 파이스트)를 코칭하고 있습니다. 타시의 코칭 덕인지 아트는 세계 유수의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US 오픈만은 아직 정복하지 못했고, 게다가 현재는 연이은 패배로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다. 아트의 회복을 위해 소규모 대회 출전을 검토하던 타시는 한 챌린저급 대회에 아트를 와일드 카드로 출전시키는데, 하필 그 대회에는 타시의 옛 연인이자 아트의 옛 친구인 패트릭(조쉬 오코너)도 출전합니다. 과거 복식 경기에도 함께 출전하며 어릴 때부터 볼 꼴 못 볼 꼴 다 보는 친구 사이였던 아트와 패트릭은 주니어 US 오픈에 출전했다 당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타시에게 동시에 반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벌어진 일련의 감정 싸움 끝에 아트와 패트릭은 그만 의절했던 것이고, 한때 연인이었던 타시와 패트릭도 다시 안 볼 사이가 된 것입니다. 그 사이 세계적인 선수가 된 아트와 숙박비조차 내지 못할 만큼 쪼들리는 무명의 선수가 된 패트릭은 10여년 만에 한 대회에서 다시 맞붙으며 전의를 불태웁니다. 그 의지가 사랑을 향한 것이건, 승부를 향한 것이건.


<챌린저스>(Challengers, 2024)


서정적이든, 고전적이든, 원색적이든 영화마다의 개성에 걸맞는 이미지의 질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연출 감각은 <챌린저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실제로 테니스 선수를 했던 거 아닌가 싶게 능숙하고도 박력 넘치는 세 배우의 육체를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과 조응시켜 시야를 압도하는 한편, 눈높이와 머리 위를 넘나들며 예상할 만한 구도를 흔쾌히 벗어나고 기상천외한 시점 숏을 구사하는 경기 현장의 묘사는 코트를 박동하는 전쟁터로 만들어냅니다. 연애하는 테니스 선수들의 이야기야 흔할 수 있다 쳐도 감독의 이러한 신선하고 생생한 연출 앞에서 이미 더 이상 흔하지 않게 되는데, 사랑과 테니스를 그대로 병치시키며 그 닮은꼴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감독의 연출은 거기에 대단한 시너지를 불러일으킵니다. 영화는 타시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트와 패트릭이 맞붙는 현재 시점에서 출발한 후, 과거의 특정한 시공간을 수시로 넘나들며 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사랑의 역사를 한꺼풀씩 벗겨냅니다. 마치 테니스 라켓을 불태우리라 싶게 전개되는 치열한 랠리처럼 세 사람 사이에서 시간을 건너오며 펼쳐지는 솟구치는 감정의 랠리는 그 향방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영화는 롱테이크를 자주 구사하며 그 감정의 랠리를 최대한 편집의 개입 없이 오롯이 관객에게 전달하려 하죠. 엎치락뒤치락하는 세트 스코어 속에서 경기의 주도권이 전환되듯 세 사람 사이 관계의 흐름 또한 태세가 전환되길 거듭하고, 이처럼 팽팽한 테니스 승부에 완전히 이입된 삼각관게의 양상은 그간 삼각관계를 다뤘던 어떤 이야기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뜨거운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영화가 다루는 삼각관계 속 감정의 흐름은 어느 한 사람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겁니다. 한 여자 타시와 두 남자 아트, 패트릭이 있다고 해서 여기서 타시를 향한 아트와 패트릭의 마음만 발견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사랑이든 우정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그들이 만날 때마다 치열한 랠리가 전개되는 이 관계는 흥미진진한 테니스 게임을 볼 때처럼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고자극의 감흥을 이끌어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단지 자극에만 머물지 않고 인간을 욕망하고 움직이게 하는 감정이란 꽤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순종적으로 서포트해줄 때도 샘솟는 한편, 도발하며 맞불을 놓을수록 더 불타오르기도 하고, 그 감정들이 뜨겁게 부딪히는 현장을 지켜보며 그저 '훌륭한 테니스 경기'를 만끽하는 것만으로 흥분케 할 수도 있는 사랑이란 감정. 누군가를 연모하고 욕망할 때만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 경쟁싱과 동반자 의식까지 얽혔을 때 더 불꽃을 키워 가는 관계의 기이한 역학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요사스런 감정의 랠리가 쉴새 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육체를 따라, 내리쬐는 햇볕에 반항하듯 쏟아지는 그들의 땀을 따라, 도발과 경의를 함께 담아 상대방에게 날려버리는 그들의 공을 따라 생생하게 펼쳐집니다. 


<챌린저스>(Challengers, 2024)


걸출한 젊은 배우들을 꾸준히 자기 작품을 통해 발굴해 내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이번 <챌린저스>에서도 비범한 에너지로 스크린을 잡아먹는 주목할 만한 젊은 배우들을 소개합니다. 판을 만들어 내며 그 위에서 전개되는 남자들의 리턴 매치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타시 역의 젠데이아는, 전작 <듄: 파트 2>에 이어 이 영화까지 이제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하는 듯 합니다. 코트 위에서의 야성미, 코트 밖에서의 의연함, 상대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주도적인 태도까지 타시의 매력을 일필휘지로 그려내며, 바로 얼마 전 만났던 전작 <듄: 파트 2>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선보입니다. 한편 또렷한 자기 확신으로 자신을 나락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도약의 기회로 이끌기도 하는 패트릭을 적당한 나르시즘을 섞어 그려내는 조쉬 오코너의 연기 또한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여기에 아트 역의 마이크 파이스트는 코트 위에서의 도발적인 면모를 뒤로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감정에 호소하며 자신의 주도권을 누군가 대신 쥐어주길 바라는 아트의 상반된 모습을 매끄럽게 표현하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습니다. 스포츠적 에너지는 물론 로맨스적 관능미까지 너끈히 그려내는 세 배우의 앙상블이 보는 이의 심장을 박동하게 하는 또 다른 중요 요인일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행위도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향한 집요한 갈망 위에서 시작될 수 있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도 같은 루카 구아다니노 식 사랑의 탐구는 <챌린저스>에서도 또 한번 그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며 관객을 매료시킵니다. 상대를 무너뜨리겠다는, 그러나 상대가 있기에 내가 이토록 절실하게 뛰어들 수 있다는, 그러므로 시기하고 질투하지만 한편으론 몹시 원한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사랑이라는 인류의 가장 격정적인 게임에 우리 모두는 승자와 패자가 아니라 언제까지나 필연적으로 '도전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흥미로운 가설을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선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렇게 보여주네요. 이렇게 섹시한 스포츠 영화도, 이렇게 에너제틱한 러브스토리도 만나기 힘들 것입니다. 


<챌린저스>(Challenger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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