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영화계의 떠오르는 '젊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새 영화는 작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감독에게 세계 3대 영화제 (베를린-칸-베니스) 석권의 영광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간 감독이 보여 온 일련의 성과에서 한발짝 나아가는 영역 확장으로 이미 젊은 거장이 된 감독의 미래를 점점 더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내러티브의 전환과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대화의 긴장감, 거기에 환경 문제라는 사회적 이슈를 예상 가능한 관점에서 다루기를 거부하고 어떤 근원적 관점으로까지 내다 보는 대담한 시선까지 여러모로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차를 타고 와서도 숲길을 한참 또 걸어야만 집에 도착할 수 있는, 그러나 그 대신 걷는 길목마다 만나는 낯선 나무들의 이름을 배울 수 있는 일본의 어느 외딴 시골마을에 타쿠미(오미카 히토시)라는 남자와 그의 딸 하나(니시카와 료)가 살고 있습니다. 현재 이 마을의 주요 안건은 한 연예기획사의 글램핑장 건립 문제. 글램핑장 건립을 주관하는 연예기획사는 이를 구실로 정부로부터 신사업을 위한 코로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 사업이 조속히 실행되지 않으면 지원금이 날아갈 판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합니다. 기획사에서는 날짜를 기습적으로 바꾸는 게 어찌 속이 빤히 보이는 공청회를 마을 사람들 대상으로 열고, 예상대로 마을 사람들의 경계 어린 시선과 함께 지적이 쏟아집니다. 마을의 수자원을 해칠 수 있는 정화조 설치 위치 문제나, 모닥불 등 숙박객들의 과실로 인한 화재 발생 가능성에 대한 대책 문제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기획사는 듣는 티는 내는 가운데에서도 마치 '답정너'인 듯 사업이 아예 백지화될 가능성은 0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 타쿠미는 이 마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글램핑장 건립에 대한 마을 측 주요 의사 결정권자가 되고, 기획사 측 실무진인 타카하시(코사카 류지)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가 그런 타쿠미에게 중요한 제안을 하고자 다시 마을로 향합니다.
<아사코>, <해피 아워>,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 등 지금까지 많은 작품들에서 일상 속 순간을 매우 예리하게 포착하며 날카로운 파장을 남겼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번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로 자연에 발을 들이기 시작합니다. (영화의 출발점이 음악을 맡은 작곡가 이사바시 에이코의 라이브 퍼포먼스 영상 제작이었다곤 합니다만) 외관상 영화는 글램핑장을 건립하려는 자들과 이에 반대하는 시골마을 사람들의 대립을 그리는 듯 하지만 그 접근법과 표현 방식, 그리고 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역시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뜻밖의 신랄함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자연 속에서의 삶, 자연과 문명의 갈등, 자연으로 들어서는 문명에 관한 세 개의 챕터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타쿠미와 하나를 중심으로 자연 속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장면은 때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편집을 거의 하지 않은 채 펼쳐집니다. 나무를 하고 물을 길어 실어나르는 등의 과정을 그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식이죠. 그렇게 한가롭다 싶게 긴 호흡으로 전개되는 초반부를 지나, 이런 자연 속에서의 삶이 글램핑장 계획으로 대표되는 문명과 만나 갈등하고, 나아가 문명의 일원이 자연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고 그 긴장감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은 채 결말부에 가서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폭발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감독 특유의 독특한 유머감각 또한 빠지지 않습니다) 이 과정을 결코 가쁘지 않은 호흡으로 따라가며, 넋을 놓고 지켜보게 되는 광활한 자연에서 의중이 뭘까 생각해 보게 되는 인간의 표정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다양한 영역에 심리적 채찍질을 가하는 감독의 솜씨에 경탄하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글램핑장이라는 곳은 (인간에게) 안락한 환경에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만끽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이를 위해 자연을 건드리고 심지어 오염시키는 것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한편 자연은 타쿠미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그러하듯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 호의를 베풀기도 하지만, 본디 그 안에서 살아가기에는 기나긴 숲길처럼 불편하고 불친절하게 마련입니다. 이렇듯 영화 속에서 인간(또는 문명)과 자연의 관계는 단순히 상생하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정복하는 양자택일의 관계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위태로운 공존 속에 있으며 그 공존에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길 경우 얼마든지 파괴로 이어질 수 있는 관계랄까요. 이처럼 영화는 자연을 침범하는 문명에 관한 문제를 보통의 사회고발 장르에서 봐 온 '자본과 원주민의 대립'이라는 사회적 관점에서 다루는 대신, 공존과 파괴 사이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자연과 인간의 근원적 대치 상태로 바라보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자연의 관점에서는 무례하고 무심하게 허락되지 않은 영역에까지 발을 들이는 인간이, 인간의 관점에서는 손바닥 뒤집듯 호의를 불호령으로 뒤바꾸기도 하는 자연이 경계와 공포의 대상 즉 '악'일 수 있습니다. 둘 다 서로에게 악일 수 있다면 결국 어느 한 쪽도 악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겠죠.
어떤 갈등도 일어나지 않는 자연에서의 삶, 기어코 불거진 갈등 속에서 대화를 통해 경계하고 경고를 보내는 자연과 문명의 대립 상황, 그 경계가 기어이 무너지면서 어떤 일이 생기고야 마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자연과 문명의 공존 혹은 대치 상황을 시청각적으로 무척 강렬하게 그려냅니다. 좌에서 우로 또는 우에서 좌로 자주 등장하는 수상한 트래킹 숏, 자동차를 탄 인물의 뒤편을 비추는 이른바 '후방 카메라 숏', 하늘을 올려다 본 인물의 시점을 따라 숲 너머 하늘을 비추다 어느 순간 눈앞의 광경이 숲 위의 하늘인지 아니면 나무 아래 눈 덮인 땅인지 알 수 없게 되는 장면, 여기에 위엄 있게 나타나다 불현듯 끊어지곤 하는 클래시컬한 음악까지 더해지는 것이 마치 예측 불가능한 풍경을 만들어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보는 듯 합니다. 감독이 네임 밸류가 아닌 캐릭터에 맞추어 캐스팅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이런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큰 몫을 합니다. 감독과 작업한 영화 스태프 중 한 명이었다는 오미카 히토시가 연기한 주인공 타쿠미는 마치 자연의 대리인처럼 보이는데, 내내 무표정을 하고는 배려와 경계심을 함께 내포한 말들을 뱉으며 다음 장면에서 무슨 말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들어 냅니다. 또한 타쿠미의 딸 하나 역의 니시카와 료 역시, 마치 순수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호기심을 대변하는 듯 영롱한 연기로 시선을 붙잡아 둡니다.
영화 속에서 글램핑장 건립 위치를 둘러싼 대화가 전개되던 중 타쿠미가 "그럼 사슴은 어디로 갈까?"라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 본디 사슴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겁이 많아서 사람을 보면 피해갈 것이라는 예측은, 사슴이 자연의 구성원임을 감안할 때 무척 경솔한 판단일지도 모릅니다. 예측대로 사슴은 사람을 피해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지만 사람이 있는 곳을 짓밟고 갈 수도 있고, 자신의 길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자신이 의도한 바로 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처럼 우리의 선택에 따라 자연의 선택지 또한 무한해질 수 있다는 것, 그런 자연의 예측 불가성을 예측하려는 인간의 작고 어리석은 본성에 관하여 우리에게 마치 우화처럼, 신화처럼 이야기를 전합니다. 제목처럼 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거역할 수 없는 힘은 분명 존재할지도 모르며, 그 힘은 높은 확률로 자연이 거머쥐고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