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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만 Jul 04. 2024

잘생김을 주장하는 그들처럼, B급을 주장하는 A급

인상적인 영화리뷰 2024 - <핸섬가이즈>

<핸섬가이즈>(Handsome Guys, 2024)


근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장르 혼합 B급영화 <핸섬가이즈>는 최근 몇년 간 여러 편의 한국영화들에서 마주해 온 '안전한 선택'들에서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나온 도전적인 영화로 무척 반갑습니다. 캐릭터나 스토리만 보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볼 법한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독립 장편 데뷔작을 연상시키는 영화는 사실, 베테랑 제작사가 깔아놓은 판 위에서 베테랑 배우들이 작정하고 노닌 결과물입니다. 영화는 너무 진심이라 촬영하고 나서 '현타'가 오긴커녕 그 신남을 주체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 배우들의 활약과 멈추지 않는 연출자의 추진력을 통해,  B급 영화가 그에 걸맞은 'B범한' 에너지로 관객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제대로 갈고 닦은 창작자의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형제처럼 지내는 절친한 친구 사이인 재필(이성민)과 상구(이희준)는 바라만 봐도 상대방이 살려달라고 뒷걸음질 칠 것만 같은 외모와 달리 고운 심성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 심성을 따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세상에 이바지하며 살고 싶어도 사람들의 시선에 오히려 마음만 더 상해서인지, 둘은 전 재산을 털어 시골 외딴 숲에 위치한 오래된 저택으로 이사를 옵니다. 오래전 한 외국인 신부를 위해 지어졌다는 그 저택은 무척이나 을씨년스럽지만, 자신들이 일구어갈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저 기쁠 따름입니다. 한편 다른 한 쪽에서는 때마침 한량 청년들이 호화 별장으로 바캉스를 온 참인데, 그 일행 중 한명인 미나(공승연)는 친구들과 트러블을 겪은 뒤 홀로 뛰쳐나와 마을의 호숫가로 향해 울분을 토로합니다. 그러다 사고로 그만 호수에 빠지고, 마침 근처에서 낚시 중이던 재필과 상구는 특유의 선의를 발휘해 미나를 구해내고는 병원까지 가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허겁지겁 자신들의 저택으로 데려가 안정을 취하게 합니다. 깨어난 미나는 몇 차례 요란스런 오해 끝에 재필과 상구가 보이는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과 그들의 착한 심성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렇게 미나가 재필과 상구의 집에서 안정을 취하는 동안 성빈(장동주)를 필두로 한 미나 일행들은 실종된, 아니 실종됐다고 믿고 있는 미나를 찾기 위해 재필과 상구의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당혹스런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마을 경찰인 최 소장(박지환)과 남 순경(이규형)까지 가세하면서 상황은 한치 앞을 알 수 없게 흘러갑니다.


<핸섬가이즈>(Handsome Guys, 2024)


<핸섬가이즈>는 2010년작 미국 영화인 <터커 & 데일 vs 이블>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보통 원작이 있는 영화라고 하면 크리에이티브적인 측면에서 어느 정도 평가를 절하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보고 나면 리메이크작임에도 원작에 기댔다는 생각따위 할 겨를 없이 크리에이티브를 높이 사게 됩니다. 그 이유는 상업영화로서 어지간히 타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분들을 타협하지 않고 진정성 가득 담아 수행해 나간 추진력 때문입니다. 상업영화로서 영화가 타협했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15세 이상 관람가' 수준으로 폭력 수위를 조절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영화에는 가장 원초적인 코미디의 한 형태인 '외모 개그'부터 해서 슬랩스틱 코미디, 거기에 슬래셔 호러와 오컬트까지 끝과 다른 끝에 위치한 장르의 지점들을 겅중겅중 넘어오며 전개되는데, 이런 전개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건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영화는 취향을 탈 수 밖에 없지만, 혹 이 영화에 대한 불호가 있다면 높은 확률로 완성도에 대한 불만족은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영화는 B급 영화스러운 '똘끼'를 실은 대단히 철저한 준비와 세공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급격한 장르 전환이 이루어지면서도 초반부터 끊임없이 떡밥을 던지고 뒤에 가서 그 떡밥을 살뜰히 회수하면서 이야기의 아귀를 맞추어 가고, 무리수에 무리수를 거듭하는 상황들이 이어짐에도 코미디와 호러 사이 온갖 장르의 자장 아래 나름 치밀하게 계산해 배치하며 장면의 힘을 끝까지 유지하고 터뜨려야 할 타이밍에 확실히 터뜨려 줍니다. 때문에 처음엔 당혹해 하던 관객들도 그런 관객들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돌파해 나가는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군말없이 영화에 마음을 내어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영화의 정신나간 듯한 에너지가 얼마든지 용인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선량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타고나길 험상궂은 외모로 늘상 오해를 사는 재필과 상구는 무슨 어두운 과거가 있었는데 지금은 손을 씻었다 이런 수준도 아니고 날 때부터 그저 착하고 순하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해 오히려 시비걸고 공격하는 걸로 오해를 사는 식인 거죠. 그들 앞에 온갖 당혹스런 상황들이 닥쳐도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만의 선량한 방식으로 상황을 돌파해 나가고, 이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전개 끝에 관객에게 유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흠칫 놀랄 수 있는 장면들이 종종 펼쳐짐에도 사람의 손에 다른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고, 성품이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윤리적인 이야기가 뒷받침된 덕분에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에도 뒷끝은 없습니다. 착한 사람들이 승리한다는 지극히 도덕적이고 상식적인 메시지를 코미디와 동떨어져 감성에 호소하는 익숙한 코드에 의지해 전달하지 않고, 본연의 장르적 동력에 실어 넘치는 웃음과 함께 전달하기에 영화를 빼어난 코미디물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핸섬가이즈>(Handsome Guys, 2024)


감독의 배포 좋은 연출력과 더불어 <핸섬가이즈>는 A급 배우들의 열연, 명연 없이는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영화입니다. 우리가 이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에 기꺼이 마음을 던질 수 있는 것이 그들의 한없이 진지한 연기 덕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재필과 상구를 연기하는 이성민-이희준 배우는 (그들이 이토록 본격적인 코미디 연기를 펼치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지난 수많은 영화 속 수많은 배역에서 보여온 치밀한 캐릭터 세공력과 폭발적인 에너지를 이 영화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한껏 쏟아냅니다. 저 사람들이 전작에서 무시무시한 권력자,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섬뜩한 살인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이 맞나 싶게 온몸은 물론 흰자위, 대사 뉘앙스로까지 웃음기를 발산하는 이성민-이희준 배우의 코믹 연기는 경이로울 따름입니다. 여기에 순진무구한 히로인이 아니라 육두문자도 서슴지 않으며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여주인공 미나 역의 공승연 배우,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순간의 명장면으로 신스틸러 1순위 자리에 오르는 최 소장 역의 박지환 배우, 성실하고 순수한 남 순경 역의 이규형 배우를 비롯해, 성빈 역의 장동주 배우, 제이슨 역의 김도훈 배우, 병조 역의 강기둥 배우, 용준 역의 빈찬욱 배우, 또 한명의 신스틸러인 우현 배우까지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이 쉽고 단순하게 연기하질 않습니다. 그들 덕분에 처음엔 '이게 뭔 소리...' 하며 새어나오던 머릿속의 소리를 어느 순간 본능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이 거뜬히 음소거시키며, 웃음이 자아내는 도파민에 몸 가눌 길이 없게 됩니다.


<핸섬가이즈>는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등의 진중한 영화들을 주로 제작해 온 제작사가 만든 영화라곤 믿기 힘들 만큼 시종일관 웃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웃긴 영화라고 해서 진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핸섬가이즈>는 오히려 '이래도 안 웃겨?'라는 마음으로 짜인 듯한 이야기와 장면들 속에서 배우들과 제작진이 누구보다도 진중하게 임할 때 진정 큰 웃음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때문에 내내 웃기기만 해도 영화가 가볍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며, 당혹스런 이야기의 연쇄 속에서도 끝까지 웃음이 마르지 않을 수 있는 거겠죠. 영화 속에서 끝까지 자신들의 잘생김을 확신에 차 주장하는 재필과 상구처럼, <핸섬가이즈>는 확신 어린 태도로 B급을 주장하지만 실은 A클래스에 위치한 영화입니다. 


<핸섬가이즈>(Handsome Guys,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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