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전 개봉해 <베테랑2>에 이어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국산 독립영화 <장손>을 이제 보았습니다. 매년 국산 독립영화를 살뜰히 챙겨본다고 단언할 순 없지만 그래도 시간이 되는대로 잊지 않고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올해의 베스트 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영화들을 꼭 한 편 이상 만나고는 합니다. 올해는 <장손>이 아마도 그 베스트 영화로 꼽히지 않을까 싶네요. 겉보기에는 남아선호사상이 기저에 깔린 전통적 가부장제와 현 세대의 구성원들이 주장하는 현대적 개인주의의 충돌에 관한 가족소동극이 아닐까 싶었던 영화는 사실 그보다도 더 근원적인 곳을 건드립니다. 전통을 부르짖는 집안에서라면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그놈의 핏줄 타령, 아들 타령, 장손 타령은 무엇의 산물이며 그 수혜와 피해는 어디에까지 미친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요. 사회와 스스로 모두를 향해 통렬한 성찰의 비수를 꽂는 이 영화는 아름다우면서 쓰리고, 정다우면서도 신랄합니다.
서울에서 배우를 하고 있는 성진(강승호)네 가족은 경북의 어느 마을에서 가업으로 두부 공장을 하고 있습니다. 1대 장손인 할아버지 승필(우상전)에서 시작되어 2대 장손인 아버지 태근(오만석)을 거쳐, 이제는 3대 장손인 성진에게까지 전해지려 하는 곳이죠. 한여름날 전통을 중시하는 이 집안의 제사가 다가오고, 서울에 있던 성진을 비롯해 가족 3대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입니다. 성진이 도착한 집에서는 역시나 익숙한 그림이 연출됩니다. 할머니 말녀(손숙), 엄마 수희(안민영), 큰고모 혜숙(차미경), 누나 미화(김시은)까지 여자 구성원들은 음식을 만들거나 나르는 등의 집안일을 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 태근은 방안에서 그림공부(?)에 열중입니다. 할아버지 승필은 아들에게 물려주고 난 뒤에도 두부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궁금함을 참지 못해 불시에 시찰을 나오기도 합니다. 기온이 30도가 넘는다고 고래고래 소리쳐도 선풍기만 틀던 할머니는 장손이 오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에어컨을 틀고, 그렇게 오랜만에 찾아온 장손에게 집안 어른들은 짝은 언제 데려오냐는둥 나중에 가게 물려받으면 어쩐다는둥 미래를 위한 환담(?)을 나누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제사는 자정에 치러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고집을 어렵게 꺾고 앞당겨 제사를 지낸 뒤 늦은 저녁식사 중, 가족들 사이에서 묻어두었던 갈등이 다시 새어나오고 이때를 틈타 성진은 두부공장을 물려받지 않겠노라고 선언합니다. 그렇게 한바탕 우여곡절 끝에 제사를 치른 후 얼마 뒤, 가족은 예기치 못한 이별로 인해 다시 한 자리에 모입니다.
<장손>(House of the Seasons, 2024)
<장손>의 첫 장면은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김으로 가득찬 두부 공장의 풍경입니다. 사람과 기계가 어우러져 일사불란하게 두부를 만들어내는 장면이 한동안 이어진 후, 완성된 두부를 든 수희를 따라 들어선 집 안에서는 제사 준비에 한창인데 어째 느낌이 두부 공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 것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누구는 재료를 나르고, 누구는 음식을 만들고, 누구는 구석에서 놀고 있는 식으로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고 그 역할대로 가정이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영화의 주인공들인 한 가족과 그들이 만드는 두부에는 사뭇 비슷한 지점이 여럿 보입니다. 번듯하게 뭉쳐지기도 가차없이 흩어지기도 쉽다는 점도 그렇지만, 완성된 그럴듯한 모양새의 결과물에서 수도 없이 갈아넣어졌을 원료 본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또한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입으로 향할 때 두부는 그저 두부일 뿐 그 두부가 완성되기까지 소요된 콩의 맛과 질감이 어땠는지는 떠올릴 수도 없고 떠올려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그리는 가족의 초상 또한 이내 두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가치, '전통'이라는 형식적 가치만 당장에 보일 뿐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구성원 각자의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저 밥 짓는 사람, 전 부치는 사람, 노는 사람, 지방 쓰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영화는 이렇게 일종의 역할놀이처럼 작동되는 전통적 대가족의 모습을 비추며, 그 아래 희생된 가치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들여다 보려 합니다.
조상을 보살피고 그 은덕을 입기 위해서라지만 은덕은 불확실하고 그를 위해 들이는 고생만은 확실한 상황에서, 몇 대째 전통을 이어온 끝에 이제는 그 전통의 정수는 희미해진 채 고달픈 형식만이 근근이 남은 듯 합니다. 영화는 가족 구성원 저마다 가슴 속에 지니고 있던 응어리들을 꺼내 보이며 그 전통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던 개개인의 가치가 얼마나 많고 다양한지를 짚어 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들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평생을 자리하게 했고, 누군가에게는 이곳을 떠나야만 제대로 된 삶을 이어갈 수 있겠구나 결심하게 했고, 누군가에게는 토로하고 싶은 고통을 홀로 외로이 삭이게 한 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영화의 태도가 어떤 각성한 이가 외부자적 관점에서 고루한 전통적 관념들을 매섭게 비판하는 느낌이 아니라, 스스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누군가가 가족 곳곳에 자리잡은 상처를 과묵하게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는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장손'이 바로 영화의 주인공이자 화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진은 '3대 장손'으로서 가만히 있어도 당연스레 주어지는 두부공장 가업의 다음 운영자 자리를 대번에 마다하고, 제삿날만 되면 눈앞에 펼쳐지는 집안 풍경도 지겹다고 손사래칩니다. 그러나 그런 전통의 풍경에 힘입어 현재의 그에 이르기까지 자신도 모르게 줄곧 수혜를 입어 왔으며, 그 수혜는 어른이 된 지금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으며, 자신도 굳이 그 수혜를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시대착오적인 전통을 이제는 거부한다면서도 그 전통으로 인해 입어온 수혜를 쉬이 뿌리치지 못하는,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장손'인 성진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전통은 점차 사라져 가지만 새로운 것을 아직 받아들이지는 않은 시대의 과도기를 읽어봅니다. 개개인의 가치를 희생시킨 채 형식으로 유지되어 온 전통을 향한 성찰을 시도하지만, 그 성찰의 주체 또한 전통의 혜택을 입어온 자이기에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죠. 그렇게 개인의 행복을 담보잡는 전통의 오랜 억압에 반기를 드는 '시늉'에 열심인 사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세월에 떠밀려 떠날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다른 어떤 무형의 것이든) 어떤 식으로든 모습을 감추어 가는 것입니다.
<장손>(House of the Seasons, 2024)
이렇게 요즘 세대의 관점에서 지난 세대의 전통을 지적하는 도식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화자 역시 그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이로서 비판을 넘어서 자기반성적인 성찰을 시도하는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깊고 진합니다. 가까이서 보면 웃음이 나올 수가 없는 가족사가 먼 거리에서 '웃지 못할' 희극으로 그려지는 한편, 그런 가족사를 너르게 감싸안는 여름-가을-겨울 세 계절의 풍경은 고즈넉하면서도 동시에 무상함마저 느끼게 할 만큼 압도적입니다. 한 해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의 계절의 흐름보다도 인간의 역사란 자그마한데, 그 안에서 어떤 빛을 얼마나 그러모으기 위해 얼마나 짙고 넓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는가 곱씹어 보게 됩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사와 같이 나무는 클수록 짙고 넓은 그림자를 드리우듯, 수 세대에 걸쳐 두텁게 쌓아올려진 가족의 전통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얼마나 짙고 넓을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게 현재의 혼란 뿐만 아니라 지나온 녹록지 않은 역사와 앞에 놓인 미래까지 들여다 보게 만드는 이 파란만장한 가족의 초상을 만들어내는 배우들의 앙상블 또한 대단합니다. 방관자를 자처하려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당사자'인 장손의 굴레 아닌 굴레를 조용히 감내하는 성진을 묵직하게 보여주는 강승호 배우를 비롯해, 할아버지 승필 역의 우상전, 할머니 복녀 역의 손숙, 큰고모 혜숙 역의 차미경, 아버지 태근 역의 오만석, 어머니 수희 역의 안민영, 작은고모 옥자 역의 정재은, 작은고모부 동우 역의 서현철, 누나 미화 역의 김시은, 매형 재호 역의 강태우 배우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배우들이 진정 가족과 같은 애증의 응어리를 진솔하게 그려내며 현실의 가족을 소환합니다.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가족이라는 형태의 공동체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습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서 출발해 인간 본연의 욕망부터 한국의 현대사까지 미시적으로나 거시적으로나 역사를 두루 훑는 <장손>은 이렇듯 관찰자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피해자가 아닌 수혜자로서 비판의 대상인 전통적 가족 공동체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를 내세우며 예상을 뛰어넘는 입체적이고도 통렬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그 메시지를 단 두 컷으로 관통하며 가히 올해의 엔딩으로 꼽아도 손색 없을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장손>은 오랜 시간 드리웠지만 세월에 의해 지워져 가는 가족의 역사를 떨치지도 품지도 않은 채 바라보며 섣불리 재단하거나 포용하지 않고 되새겨 보게 합니다. 나의 현재를 위해 소모된 다른 수많은 현재들, 그리고 나의 현재를 세워두고 뒤안길로 사라지는 오랜 과거들. 누군가에겐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누군가에겐 컴컴한 그림자를 드리웠을 큰 나무 같은 그 모든 가족의 역사에 송구함을 표시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