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 스트리트> - 존 카니 감독
노래는 소리의 마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시간의 마술이기도 하다. 신기하게도 어떤 노래들은 그 노래를 듣던 순간, 그 당시 주변의 상황이나 내가 겪었던 사건을 함께 머금고 있다. 처음 들었을 때, 소중했던 누군가와 함께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매우 각별한 상황에서 들었을 때처럼. 그래서 그런 노래들은 다음에 어디선가 또 듣게 되면 그 때의 기억들을 또 한번 끄집어내게 하는, 단지 멜로디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기억들이 선명해서 자꾸 곱씹으며 빠져들게 되는 그런 경험을 선사한다. 3~4분 남짓한 시간의 멜로디 안에 어느 시간과 공간을 거의 손상 없이 보관할 수 있는, 일종의 타임캡슐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래는 기억을 불러내는 가장 손쉬운 수단으로서 활용되기도 한다.
<원스>, <비긴 어게인>으로 음악영화계의 실력자로 부상한 존 카니 감독은 이런 노래의 속성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관객으로 하여금 흥이 나게 하거나 멜로디에만 젖어들게 하는 걸 넘어서, 노래와 그것이 연주되는 순간을 너무나 극적으로 만나게 하여 좋은 OST 모음집이 아닌 인상적인 순간들이 담긴 앨범처럼 영화를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음악영화의 정수임을 알고 있는 감독 덕분에, 우리는 <원스>나 <비긴 어게인>을 그저 '음악이 남는 영화'가 아닌 '음악과 함께 한 순간이 남는 영화'로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런 음악영화 특유의 정체성에 있어서 존 카니 감독의 새로운 음악영화 <싱 스트리트>는 어쩌면 그 정점에 서 있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아련했고, 어딘가 판타지적이기도 했던 감독의 전작들을 지나 <싱 스트리트>는 (감독의 실제 성장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한) 시대의 공기,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온 아이들이 선명하게 살아 숨쉰다. 그 속에서 만들어내는 음악의 기운은 더욱 또렷한 힘으로 세상을 때리고, 우리를 달랜다.
10대 소년 코너(퍼디아 월시-필로)의 사정은 안팎으로 좋지 않다. 이혼 위기에 놓인 부모님으로 인해 위태로운 집안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의 계속되는 실직 상태로 집안 형편이 안 좋아지면서 코너는 잘 돼 있는 사립학교에서 영 안 돼 있는 공립 학교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전학'당한다'. 형 브랜단(잭 레이너)은 오랜 기간 사회 생활을 포기한 채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며 부모님의 속을 소리없이 갉아먹은지 오래다. 그렇게 내키지 않게 전학 가게 된 학교마저도 코너에게는 고난의 연속이니, 교장과 같은 권위를 과시하는 신부는 철저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코너의 일거수 일투족을 옥죄고, 조용하고 쭈뼛쭈뼛거리는 코너를 주먹 좀 쓴다는 아이들은 못 괴롭혀서 안달이다. 그렇게 사막처럼 메말라가는 코너의 일상에 한 줄기 빛이 나타나니, 바로 라피나(루시 보인턴)라는 이름의 소녀다. 말은 소녀라고 해도 조각같이 조숙한 비주얼을 소유한 그녀는 모델을 꿈으로 삼고 있는, 학교 생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자유로운 영혼. 코너는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얼떨결에 상당히 구체적인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바로 '자신이 현재 밴드를 하고 있는데, 마침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참인데 출연해 달라'는 제안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라피나가 이 제안에 의외로 흔쾌히 수락하면서, 코너는 하루아침에 없던 밴드를 만들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코너는 개성 확실하고 의외로 실력도 꽤 있는 학우들을 모아 '싱 스트리트'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고, 라피나와 함께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만들어가며 추억을 쌓아간다. 생전 해 본 적 없던 자유로운 예술적 행보(?)에 코너의 일상도 들뜨기 시작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그를 단단히 옭아매려 한다.
<싱 스트리트>는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들 중 이야기와 세계의 존재감이 가장 사실적인 영화다. <원스>의 이야기와 세계가 로맨틱하고도 아련한 느낌이었고, <비긴 어게인>의 이야기와 세계가 트렌디하고도 판타지적인 느낌이었다면, <싱 스트리트>의 이야기와 세계는 복고적이고 투박한 한편, 좀 더 진실된 느낌을 준다. 1980년대 아일랜드의 당시 모습을 뉴스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영화의 오프닝부터가 그렇다. 미래를 찾아 젊은이들이 바다 건너 영국 땅으로 건너가던 그때 아일랜드의 현실이 등장하고, 그 가운데 착잡한 집안 사정으로 바라지도 않은 고생을 겪는 코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감독의 전작 속 주인공들의 시작점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일말의 낭만을 품고 있었다면, <싱 스트리트> 속 코너의 시작점은 그 일말의 낭만마저도 희미한 곳인 셈이다. 엄마와 아빠에게선 책임감보다는 날선 갈등이 먼저 느껴지고, 형은 세상에 없는 존재마냥 자신을 꽁꽁 싸매고 있는 가운데 자신마저 척박한 공립 학교에 내던져진 코너의 모습에 낭만을 대입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감독이 음악영화 3부작을 완결하는 지점에 선 이 영화에 이르러, 자신의 성장기 또는 보통 사람들의 성장기를 관통했을 실재적인 한 순간을 바탕으로 삼으려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가 살아숨쉬다 보니, 그 위에 수놓아진 이야기도 활기를 얻은 느낌이다. 소심했던 소년이 첫사랑을 만나면서 음악을 접하고, 이를 통해 변화를 맞게 된다는 이야기의 기본 얼개는 여느 하이틴 성장물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대의 공기와 그 속에서 변화를 겪는 아이들의 속마음을 순수하면 순수한 대로,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가감없이 그리는 가운데, 그런 마음의 흐름이 완성도 높은 음악에 실려 전달되다 보니 빤한 이야기에도 활력과 설득력이 붙는다. 인물과 이야기를 통해 실제로 형성되는 정서들을 되짚은 뒤에, 음악을 통해 그 정서들이 극적으로 표출되는 과정. 음악으로 표현된 진솔한 감정이 현실에 전하는 변화와, 그 변화가 만들어낸 감정을 음악으로 다시 증폭시키는 일련의 순환 과정. 이는 음악영화로서 <싱 스트리트>가 보여주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 할 만하다.
<싱 스트리트>는 특히 음악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음악을 통해서 시대의 공기를 조성하는 일을 상당히 섬세하게 해낸다. 전편 <비긴 어게인>이 일상 속 곳곳의 소음까지 있는 그대로 잡아내며 거리공연 영상을 담아내는 이 시대 '유튜브 스타일'의 음악과 영상 감각을 보여줬다면, <싱 스트리트>는 MTV의 등장으로 뮤직비디오라는 영상 콘텐츠가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던 80년대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과장되게 위아래, 앞뒤로 널뛰는 카메라 속에서 자극된 헤어와 의상을 한 아티스트들이 한껏 모델스런 포즈를 과시하던 뮤직비디오, 그 위로 아하, 듀란듀란 등 추억 속 인기 그룹사운드들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영상 속 아티스트들을 로망의 최전선으로 삼았던 소년은 몹시 어수룩하나 개의치 않고 능청스러울 줄 아는 친구들과 함께 그 영상들을 성심성의껏 따라한다. 신시사이저가 부각되며 째지는 소리의 질감이 인상적인 당대 분위기의 오리지널 곡들까지 흘러나오면서, <싱 스트리트>는 팍팍한 현실에 휩싸인 소년소녀들을 한껏 자극했던 당대 음악의 낭만을, 어렴풋한 분위기 수준을 넘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생태계 수준으로까지 되살리는 데 성공한다.
음악을 시대와 훌륭하게 조화시키는 감독의 재간 덕택에, 그 음악이 주인공에게 펼치는 변신의 마법조차도 진부하고 허황되긴커녕 보는 이를 하염없이 매료시킨다. 80년대에 익히 들어봤을 법한 복고적 사운드에 요즘 관객들이 흔쾌히 흥얼거리고 들썩일 멜로디와 리듬이 얹어진 오리지널 곡들은, 때론 색다른 사운드로 고개를 까딱이게 하고, 때론 애틋한 멜로디로 가슴을 저미게 하고, 때론 강렬한 비트로 온몸을 들썩이게 한다. 노래 가사들도 때론 못다한 말을 대신 전하는 편지처럼, 때론 세상에 고하는 촌철살인의 외침처럼 그때그때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관객의 뇌리에 꽂힌다. 그 나이에 걸맞은 수줍음과 그 나이에 버거운 현실의 무게 때문에, 말로 모든 걸 다 전할 수 없었던 때. 소년소녀들은 서툴지만 자신 있게 노래를 쓰고 악기를 연주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불쌍하고 불안했던 소년은 점점 너무나 멋진 소년으로 성장해 간다. 노래들을 통해 결심과 도전, 낙담과 다짐의 순간들이 고르게 펼쳐지기 때문에 이런 변화의 과정이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런 아이들의 활기와 마음이 담겨 있어서인지, 존 카니 감독 영화 속 음악들은 안 좋은 경우를 찾기 힘들었으나 <싱 스트리트>의 경우는 특히 더 마음을 적극적으로 건드린다.
소년이 노래를 통해 배우는 것은 '행복한 슬픔'이라는, 이름은 단순해 보이나 그 설명은 결코 단순하지 않을 감정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론 고요하지만은 않을 인생의 나날 속에서 꼭 움켜쥐어야 할 감정이기도 하다. 노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코너는 주변 분위기 속에서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일랜드는 젊은이들이 영국으로 속속 건너가면서 그 공백이 점점 커지고 있고, 눈 앞에 닥친 팍팍한 현실 앞에 엄마와 아빠는 싸우기를 반복하며, 한때 잘 나갈 뻔 했던 형은 무슨 두려움에 휩싸여서인지 집 밖을 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 고결해 보이는 신부라는 사람마저도 학생에게 주먹을 날려가며 억압을 가하는 학교는 또 어떤지. 세상은 온통 무기력함과 두려움으로 그를 옭아매는 듯 했다. 그처럼 용기를 깎아먹는 세상을 감미롭게 달래고, 어렵게 꺼낸 고백에마저 멜로디를 입히는 노래를 만나면서 코너는 무기력함과 두려움을 깨뜨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가게 된다. 아플 줄 알면서도 사랑해 보는 것, 넘어질 걸 알면서도 달려가 보는 것. 실패하더라도 내 삶의 또 다른 페이지가 쓰여졌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 있는 '행복한 슬픔'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설령 허황되다 할지라도, 다듬어지지 않은 아이들의 진솔한 감정과 그 감정을 활기차게 실어나르는 음악에 눈과 귀를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게 된다. '훔친 듯이 달려'라는 의미의 노래 'Drive It Like You Stole It'이 코너가 마주한 현실들이 모두 봉합된 것만 같은 상상 속에서 흘러나올 때, 노래가 자아내는 것은 단지 흥만이 아닌 저릿한 공감이다.
밴드를 결성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음악을 '미래파 음악'이라고 명명한다. 중2병의 기운이 충만한 허세 작명처럼 느껴져 처음에 들었을 때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음악을 통해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꽤 뭉클해지는 구석이 있다. 그 아이들은 '미래에 있는 아이들'이기보다 '미래를 향하는 아이들'인 것이다. <싱 스트리트>가 음악영화로서 지니는 결정적인 미덕도 여기에 있다. 미래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이라면 누구나 동감이라 여길 만한 성장기의 희로애락을 골고루 어루만지면서도, 미래에 먼저 서 있음으로써 뜬구름 같은 동경에까지 성급하게 다다르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보다 단지 한 발짝 더 미래에 가깝게 나아간 아이들의 모습을 비춤으로써, 이 이야기는 대단히 멋진 녀석들이 주인공이지만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된다. 활기로 똘똘 뭉친 아이들 이야기의 대단원을 접한 후의 여운이 생각보다 큰 것 역시, 이 아이들이 이미 원하는 곳에 발을 딛고 선 현재완료형이 아닌, 총기가 가득한 눈빛을 하고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현재진행형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감상적인 공감대나 느끼한 자아도취 그 어디에도 빠지지 않은 채 발은 현재에 붙이면서도 시선은 곧 걸어가게 될 앞을 내다보는 태도를 통해, <싱 스트리트>는 예술의 에너지와 정신을 담은 영화라면 무릇 이래야 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