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진실만이 살아남는다

<아가씨> - 박찬욱 감독

by 김진만
297fde1d037041d5803865c5b6582a7a9d9f1504.jpg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 스포일러 있습니다 -

박찬욱 감독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스타감독의 반열에 오른 이후 한번도 '예술영화'로서의 장편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해 적잖은 제작비를 들인 후 대형 배급사의 지원을 받아 선보여진 그의 영화들은 늘상 그가 인터뷰에서 밝혀온 바와 같이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한 '상업영화'가 맞았다. 다만 우리가 국산 상업영화로부터 떠올리게 마련인 보편적인 즐거움과는 사뭇 다른, 감독 자신이 대단히 재미있다고 생각해 더 많은 관객들과 이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 즐거움이었을 테고 때문에 작품 하나하나마다 취향을 좀 많이 탔던 것 뿐이다. 또한 그들 중 대다수가 전인미답의 즐거움을 추구하다 보니 영화가 끝났을 때 우리가 예상했던 감흥으로 귀결되지 않으면서 흐릿하고 모호한 감정으로 남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취향의 차이, 선호도의 차이와는 별개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이 보여준 누구도 반박하기 힘든 가치가 있다. 그것은 이런 내용을 담은 영화에 이런 배우들이 출연하고 이 정도 규모로 극장에 선보이게 되는 경우는 그 정도 감독이 아니면 만나기 대단히 힘들다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이 7년만에 국내 영화계로 돌아온 신작 <아가씨>도 그런 귀한 경우 중 하나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주연급 신인 여배우 공개 오디션 개요에 적힌 '노출 수위 협의 불가'라는 문구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이 영화는 그만큼, 대자본과 스타 캐스팅의 힘을 업고도 여전히 타협하지 않을 수 있는 감독의 독자적인 신념이 담긴 영화다. 그런데 영화에 담긴 그 신념의 면면이 상당히 대조적이어서 더욱 흥미롭다. 그의 영화가 아니고선 한국영화에서 만난다는 걸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과, 그의 영화에서 만나게 될 거라 쉽게 생각하지 못했던(심지어 그 보편적이었던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도 못 만난) 보편적인 감수성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가씨>는 대중영화로서 대중에게 즐거움을, 대중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표현에 담아 전하겠다는, 박찬욱감독의 예술가이자 이야기꾼으로서의 야심이 빛나는 영화가 되었다.


2cb2e374b96feaab226830d7b80efd0c6644c4c1.jpg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한국, 일본, 영국의 양식이 모두 들어간 이국적 분위기의 일제 강점기 한 저택. 이 곳에 사는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의 새로운 하녀가 들어온다. 옥주, 일본이름 타마코라는 그녀는 사실 장물아비의 손에서 소매치기로 길러진 소녀 숙희(김태리)다. 백작(하정우)이라는 남자가 히데코가 상속받을 막대한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일종의 첩자 개념으로 숙희를 저택에 심으려는 것. 백작은 숙희를 통해 히데코와 자연스럽게 만남을 가진 뒤, 결혼하여 그녀의 재산을 홀랑 뺏으려 한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뼛속까지 일본인이 되려는 친일파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로부터 어릴 때부터 억압받는 삶을 살아온 히데코에게 숙희는 하나뿐인 벗이 되고 둘의 사이는 점점 각별해진다. 그러나 예정대로 백작인 히데코와 본격적인 만남을 갖게 되면서 거짓과 진심이 혼탁하게 얽힌 이들의 관계는 점차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홍진 감독이 자신의 작품인 <황해>를 멜로물이라 하고 <곡성>을 코미디물이라 일컬은 것 만큼이나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를 상업영화라고 밝힌 것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나, 그의 말은 사실이다. <아가씨>는 <올드보이> 이후 오랜만에 이미지나 분위기, 감정의 조성보다 이야기를 분주하게 구성하는 기운이 또렷하게 느껴지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다. 사실 감독의 전작이자 할리우드 진출작인 <스토커>에서부터 그의 영화 속 스토리텔링이 다시금 대중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는데, <아가씨>는 거기서 좀 더 진일보한 느낌이다. 이전 그의 영화들 다수가 복수극, 뱀파이어물 등 대중적인 장르영화의 틀을 사뭇 심오하고 진중한 화두를 던지기 위한 매개로 활용한 느낌이 들었다면, <아가씨>는 스릴러라는 장르의 틀을 그 특유의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 또는 다양화하기 위해 재치 넘치게 가지고 논다는 느낌을 준다. 겉으로 보기엔 스릴러인데 막상 영화를 보니 철학적 드라마였던 것이 아니라, 스릴러로서의 겉모습에 걸맞게 속 알맹이도 그에 부응하는 장르적 즐거움을 준다는 뜻이다. "그 영화 재미있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 "재미있다"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는 오랜만의 박찬욱 감독 영화다.


611a45c7108c70c28695fd0def8e88843a3c11c0.jpg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를 작정하고 대중영화로 만들었다는 인상은 주연 캐릭터의 설정에서부터 드러난다. 한동안 박찬욱 감독 영화 속 주인공들이 힘차게 손을 들어주기엔 좀 께름칙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었다면, <아가씨>의 주인공들은 그런 구석이 거의 없이 떳떳하게 손을 들어줄 수 있는 인물들이다. 고아로 장물아비의 손에서 소매치기로 길러지다가 백작에 또 다시 이용당할 상황에 놓인 숙희나, 날 때부터 고모부의 끈질긴 협박과 학대 속에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 온 히데코가 그러하다.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두운 환경에서 자라온 그녀들은 박찬욱 감독의 말처럼 더 나은 내일을 향해 가야 마땅하며, 마음 놓고 응원해도 될 만한 사람들이다. 덕분에 관객은 이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한껏 가까이 하게 되고, 이후 그려지는 높은 수위의 장면들조차도 당혹감을 자아내기보다 명료한 감수성을 자아낸다. 주인공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이들이 그에 상응하는 징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명확하게 생겨난다는 점에서 <아가씨>는 대중영화임이 분명하다.

폭력적이고 난해한 묘사를 직접적으로 들이대기보다 스릴러에 걸맞게 시선에 따라 사건의 흐름을 다층적으로 쪼개는 작법의 기교를 구사한다는 점 또한 <아가씨>가 대중적 스릴러물로서 보여주는 덕목이다. 물론 원작소설인 '핑거스미스'의 영향을 받은 바가 크겠지만, 각 등장인물의 시선을 따라 같은 기간동안의 이야기를 디테일을 달리 하여 서술하거나, 앞 부분에서 다뤄지지 않았거나 건너 뛰었던 시간대를 들춰내는 식으로 흩어진 사건의 퍼즐을 맞춰 가는 전개는 장르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한 대목이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두터운 시간대를 순차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현재의 기이한 행동이나 심리 상태를 유발한 원인으로 과거의 사건을 보여준다거나, 등장인물의 트라우마를 유발한 과거의 어떤 것을 비밀로 한 채로 건너뛰었다가 현재로 넘어와서 보여준다든지 하는 식의 전개도 흥미롭다. 이와 같은 비선형적 전개는 때로 관객은 아는데 등장인물들만 모르는 이야기로, 때로 관객은 모르는데 등장인물들은 아는 이야기로 그려지며 호기심을 자아낸다. 여기에 영화는 비밀을 들추고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올드보이> 때처럼 좌절과 비극이 어린 분위기보다는 코믹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며 보다 경쾌한 오락영화가 되기를 추구한다.


b00d68c146eb16cb9ebc6b14744ce5ce0d183ae0.jpg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아가씨>는 기본적으로 '가짜들의 게임'에 대한 이야기다. 숙희, 히데코, 백작, 코우즈키 네 사람 모두 본심을 드러낼 줄 모르고 등 뒤에 숨긴 채 마주치는 서로 간의 반응을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성적 우월감으로 억압하고, 어른은 아이를 무력으로 억압하면서 자신들이 억압하는 대상의 마음을 통제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인, 한국과 일본과 영국의 양식이 뒤섞인 코우즈키 저택마저도 진의를 알 수 없이 뒤틀린 것만 같다. 그런데 등장인물들 중 숙희와 히데코만은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진심을 허심탄회하게 내보인다. 때론 가혹하리만치, 때론 천진하리만치 말이다. 처음엔 관객들만이 알고 있던 그들 각자의 마음은 결국 서로가 아는 마음이 되고, 그들이 공유하는 사랑의 감정은 거짓으로 점철된 이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진실한 것이 된다. 외적인 표현과 내적인 의도, 추구하는 목표가 하나인 유일한 것이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이다. 이런 점에 주목한다면,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이 본격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했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보다도 어쩌면 더 직접적일 최초의 본격 러브스토리라 할 만하다.

그렇게 따지면 이 영화를 꽤 센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 만드는 파격적인 성묘사들도 자극만 추구하는 음란한 장면이기보다, 그들의 삶과 사랑이 지속되어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는 필연적인 장치에 가깝다. 낭독회로 대표되는, 코우즈키가 히데코에게 가하는 오래된 성적 학대는 어른이 자신의 변태적인 성적 취향에 연약한 어린 아이를 강제적으로 가담시키는 아주 파렴치한 행위다. 아무런 감정 없이 자신의 입으로부터 어른들도 뜨악할 음란한 말들을 뱉어내야 했던 히데코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가면을, 그것도 어른들이 좋다고 낄낄거릴 음란한 형태의 가면을 써야만 했던 것이다. (이를 당대 우리나라 여성들의 아픈 역사로 해석한다면 이 영화는 매우 통렬한 역사드라마가 될 것이고, 현대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으로 해석한다면 이 영화는 매우 강력한 여성영화가 될 것이다.) 그 가면은 쓰고 살아도 굳이 불편한 점을 못 느낄 것이 아닌, 반드시 벗어야만 히데코가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기능한다.


744d0e3864ce58c4f43389eb7e1455f8eda5d094.jpg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이 정도 자본을 들이고 이 정도 배우들이 출연한 거대 배급사의 영화에서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수준의 정사신 역시 실은 그 화제성만으로 언급될 것이 아니다. 앞서 말했든 모든 인물들이 서로의 맨얼굴을 숨기고 신체적 접촉마저도 조심스러워 하는, 각자의 진심을 꽁꽁 싸맨 상황에서 이 장면은 유일하게 서로의 살이 주저없이 맞부딪히는 장면이다. 영화는 오직 서로에게만 뜨겁게 타오르는 진심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숙희와 히데코의 관계가 지니는 의미를 가장 명징하게 설명하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임을 거듭 강조한다. 숨죽이고 지켜본다기보다 대사를 동반한 리액션이 발랄하게 오감으로써 이것이 커뮤니케이션이며 화학작용에 관한 장면임을 잊지 않는다. 뜻밖에 튀어나오는 순수하고 천진한 리액션에 관객은 심지어 이 장면을 보며 웃음까지 자아낼 정도다. 대담한 묘사가 돋보이기에 박찬욱 감독의 인장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속임수와 억압이 만연하는 이 영화 속을 분연히 질주하는 단 하나의 진실한 감정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한 것이다.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개인 욕망의 부조리함을 두고만 보고 있지 않고 보기 좋게 깨뜨릴 것이며, 자신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고 기꺼이 진보하길 택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릴 것임을 선언하는 순간과도 같다.

<아가씨>를 우스꽝스럽고 웃기는 미스터리물이자 강렬한 러브스토리로 만든 데에는 배우들의 훌륭한 호흡 덕도 크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처럼 가다듬어지지 않은 채 풍성한 솜사탕 같은 감정 표현에 능숙했던 김민희 배우는 극도로 양식이 뚜렷한 박찬욱 감독의 세계와도 제대로 부합한다. 정제된 표현과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동시에 훌륭하게 그려내며 인간의 마음마저 짓누르는 듯 재단된 세상 속에서 진실한 욕망을 나풀거리는 히데코를 연기한다. 그녀의 연기에 힘입어 히데코라는 인물은 연극적인 도발이 아닌, 자연스러운 본능의 표출로서 주체적 여성으로 거듭나는 인물이 된다. 숙희 역의 신예 김태리 배우의 강단 있는 연기도 매우 인상적이다. 연약한 소녀와 고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모두 담은 얼굴, 또박또박 들리는 대사 소화력과 쏟아내고 매듭짓기가 확실한 감정 표현은 장편 데뷔, 그것도 이토록 굵직한 장편 데뷔로서는 믿기 힘든 재능으로 빛을 발한다. 한편 막상 무섭기보다 우스웠던 두 남자배우의 캐릭터 묘사도 인상적이다. 양식미가 마냥 돋보일 줄만 알았던 이 영화에서 백작 역의 하정우 배우는 뜻밖에도, 본인의 실제 캐릭터를 일부 가져온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능글맞고 자연스런 유머코드로 백작 캐릭터를 구현한다. 한편 조진웅 배우는 서늘하고 폭압적이었다가 나중에는 그 실존의 어줍잖음이 그저 불쌍할 뿐인 변태영감으로 남게 되는 코우즈키를 강렬하고도 우스꽝스럽게 그려낸다. 이외에도 차가운 얼굴 너머로 비극을 삼킨 두 여인, 히데코의 이모와 사사키 여사를 연기한 문소리 배우와 김해숙 배우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히데코의 어린시절을 연기하며 복잡미묘한 히데코의 심리로 관객들을 멋지게 초대하는 데 성공한 아역 배우 조은형 양도 빼놓을 수 없다.


a07c50dac20088e7889916587c5712b39c8b77b4.jpg <아가씨>(The Handmaiden, 2016)


구사하는 장르적 기술, 중심에 살아숨쉬는 감정, 지향하는 이야기의 방향 모두 보통 관객의 흥미와 바람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 중 보고 나서 가장 기분이 깔끔한 영화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그의 영화인 <공동경비구역 JSA>보다도 깔끔한 기분이다.) 변태 캐릭터의 변태적 취향이 등장한다 한들 그것은 파괴되고 정복되기 위해 존재하며, 대담한 베드신이 등장한다 한들 그것은 영화 속 거의 유일한 '진실한 커뮤니케이션'을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 결국은 살벌하고 어두운 인간의 욕망을 까발리는 것이 아닌, 억압되어 왔던 진심이 사랑스러운 본 모습을 드러내고 당당히 승리하는 것을 추구한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자신 있을 그들의 감정은 비록 그들 서로만 아는 상태로 비밀스럽게 그려진다 해도 뜨겁게 불꽃을 피울 것이며, 비록 여전한 억압이 시대를 가로지르며 자행된다 해도 떳떳하게 빛을 낼 것이다. 장면들 일부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장면들 위에서 찬란히 반짝이는 마음으로 우뚝 선 두 여인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가씨>는 참 오랜만에, 어쩌면 거의 처음으로 인물과 이야기들에게 심정적 지지가 주저없이 일어나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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