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 윤가은 감독
요즘 화제인 신조어 중 '관태기'라는 말이 있다. '관계'와 '권태기'가 합쳐진 말로, 범람하는 인간관계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폭넓은 인간관계 대신 자발적으로 필요한 인간관계만 지키고, 심심치 않게 '자발적 혼자남녀'가 되기도 하는 사회현상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 '관계의 동물'이라 불리는 인간은, 그만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피로감을 필연적으로 안고 갈 수 밖에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20대에 와서 이런 '관태기'가 생긴다는 것도 어쩌면 생각보다 타이밍이 늦은 경우인지도 모른다. 이미 우리는 유치원, 학교와 같은 인생 최초의 사회적 공동체에 편입되는 순간부터, 관계가 가져다주는 기쁨과 굴레를 고스란히 받아들여 왔는지도 모른다. 그 기쁨과 굴레, 이익과 손해에 너무나 길들여진 어른이 되어서야, 우리는 그렇게 축적되어 온 관계망 속 상당 부분이 답답한 정체 현상을 빚고 있고 어떤 부분에선 추돌사고 또한 빈번함을 발견하며 밭은 숨을 몰아쉬게 된다.
이미 오래 전 우리들 중 누구나 만난 적 있는, 그러나 그 헛헛한 실상을 지금에서야 피부에 와닿게 체감하는 '관계'라는 이름의 정글을 가혹하고도 눈부시게 그려낸 영화가 여기 있다. <우리들>이라는 이 영화의 무척 단순한 제목은 영화가 끝난 뒤 무척이나 소중한 의미로 남게 된다. 누구라도 겪거나 본 적 있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과 드러나는 균열을 선명하게 그려내며 가슴에 행복감과 철렁함을 번갈아 안기는 이 영화만큼 관계에 대해 역동적으로 그려낸 영화는 근래 본 적이 없다. 누구의 아들딸이 아닌 번듯한 인격체로서 서 있는, 그러므로 각자의 욕망과 결핍이 모두 있는 아이들 사이로 미끌거리며 흘러 지나가는 관계는 손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잡힐듯 잡히지 않으며 아이들을 웃게 하고 울게 한다. 그 이야기는 너무나 극적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이 밟아왔던 지난날을 조목조목 되짚으니 가슴에 사무치기까지 한다.
초등학생 선이(최수인)는 학교에서 외톨이다. 피구에서 편가르기를 할 때면 친구들의 선택이 아닌 맨 마지막에서야 마지못해 데려가는 인원이며, 친구 생일파티에 마땅히 초대 받지도 못한다. 차라리 학교에 가지 않는 방학이 편한 시간일까. 그렇게 또 다시 시작된 여름방학, 마침 동네에 이사온 지아(설혜인)라는 아이를 만난다. 선이는 지아가 동네에 이사와서 처음 만난 또래 아이였고, 그렇게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눈부신 여름날을 보낸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할 비밀스런 추억을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서로가 살아온 날들을 엿보기도 한다. 지아가 자신을 키우는 할머니의 등쌀에 못이겨 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시간도 줄어들지만 그래도 우정만은 변치 않을 거라 굳게 믿게 된다. 그리고 다가온 개학. 지아는 정식으로 선이네 반 친구로 전학 와 인사를 하는데, 학원을 함께 다닌 반의 우등생 보라(이서연)와는 살갑게 친한 척을 하는 반면, 선이에게는 영 데면데면하다. 선이는 자신의 변함없는 마음을 지아에게 보여주려 노력하지만, 지아가 선이를 등한시했던 보라와 그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보이지 않는 벽은 더욱 두터워져 간다.
<우리들>은 '어린이들이 주인공인 영화'에 대한 어른들의 고정된 인식이 완벽하게 제거된 영화다. 많은 어른들은 어린이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어린이 영화'를 만들게 마련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 속에는 자연히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들의 모습, 어른들의 바람에 의해 바른 길로 인도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이들의 세계에 개입하거나 훈수를 둘 생각이 전혀 없다. 선생님, 부모, 조부모 같은 어른들이 당연히 등장하지만 그렇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른들마저 아이들의 세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모든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나아가며, 변화를 일으킨다. 영화는 아이들을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규정하고, 그런 아이들의 세계를 현미경으로 묵묵히 관찰할 뿐이다. 카메라가 한 순간도 아이들의 눈높이,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것은 이 영화가 아이들의 세계를 교화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중한다는 좋은 증거이다.
실제로 연기 경험이 극히 적은 어린 배우들에게 대본을 외우게 하기보다 주어진 상황을 이해시키고 이에 대한 액션과 리액션을 수 차례 리허설했다는 감독의 말처럼, 시시콜콜한 장치들보다 침착하고도 친밀한 시선으로 아이들의 표정과 상황, 불쑥 튀어나오는 반응을 지켜보는 영화의 태도 덕분에 어른 관객들도 아이들의 세계에 순식간에 몰입하게 된다. 보기에 불편한 갖가지 장면들을 이어붙인 것 없이, 피구 경기에서 편을 가르는 순간 만으로 선이가 학교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첫 장면부터 관객의 주의는 영락없이 영화에 빼앗긴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이 영화가 아이들의 세계를 설명하지 않고 보여줌으로써 저절로 이해하고 납득케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인해 우리가 아이들로 이루어진 세계에 대해 갖고 있던 일말의 의심,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외부의 어떤 힘으로 인해 결국 교정될 것이라는 의심 또한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세계에 형성되는 관계망은 아이들 각자가 지닌 욕망과 결핍에 따라 불이 붙었다 식기도 하고, 그 불이 다른 곳으로 옮겨 붙기도 하고, 끈덕지게 뭉쳐 움직이다 가루처럼 흩어지기도 하는 유기체 같은 모습을 띠게 된다.
<우리들>이 보여주는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교정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어른들을 반추하는 거울과도 같다. 아이들이 관계라는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사전에 배운 지식과는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그 관계의 본질을, 영화는 매우 투명하게 들여다 보면서 동시에 날카롭게 해부한다. 어른들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관계의 순수한 순간이 흐뭇한 웃음을 자아내다가도, 이미 소심해질 대로 소심해진 어른들은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 다음 걸음을 아이들이 옮기고야 말았을 때 생기는 일들은 보는 우리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고 마음을 아찔하게 한다. 이미 현실에 충분히 학습되어 자신을 최대한 방어하려는 어른들은 보지 않으려 하는, 그러나 보는 순간 그것이 본성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관계의 명암이 가감없이 펼쳐진다. 그렇게 가감없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은, 그 그림이 어른들이 아닌 아이들에 의해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서툰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그렇기에 더 대범하고 용감할 수 있다.
아이들의 관계도 부산하게 흘러간다. 각자의 상처와 결핍에 따라, 그에 걸맞게 피어나는 욕망에 따라서 말이다. 친구는 영원히 돈독할 수 없으며, 사랑받고 싶고 미움받기 싫고 빼앗기기 싫은 저마다의 바람에 따라 표정을 달리 한다. 문득 선이 엄마가 만들어 준 오이김밥으로부터 자신은 갖지 못한 자상한 부모의 초상을 느끼며 소외감을 느끼는 지아의 표정처럼, 관계에 배어든 욕망이 불현듯 고개를 들 때 달라지는 아이들의 표정은 어른들의 마음을 아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방학 전후의 시간 설정 역시 쌓이지 않고 흘러가며 몸집을 달리 하는 아이들의 관계 양상을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된다. 학교라는 사회 공동체 속 관계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방학 때, 이제 막 새로운 공동체에 진입한 지아에게 선이는 어떤 배경 설명도 필요없는 소중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오로지 둘 만의 관계로 하나의 빛나는 세계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학원이라는 또 다른 사회 공동체가 나타나면서 지아의 세계는 넓어지고, 개학 후 학교로까지 세계가 확대되면서, 선이와 지아가 있던 세계는 오직 둘 만으로 완전한 곳이 아니라 더 큰 세계 안에서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골라낼 수 있는 부속물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의 세계는 짜여진 틀 안에서 안전하게 뛰놀기를 거부한 채 활기차게 달리며, 지어졌다가 허물어지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관계망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생채기를 낸다. 누군가를 무너뜨리거나 굴복시키겠다는 악의보다는 내게 부족한 것을 채우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이 불안한 마음 속에 다소 짓궂은 형태로 발현되니, 그렇게 생채기를 내는 아이들이 야속하다 해도 욕할 수는 없다. 그 아이들을 능히 이해하고 나아가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은 그 이후의 행동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난 생채기가 시작에 불과할 뿐임을, 아직 아파하며 가라앉을 시기는 한참 멀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처에 눈물 짓고 돌아서는 대신, 덕지덕지 붙인 반창고로 상처를 어루만진다. 흘러가는 관계의 강을 부여잡고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모두가 만나서 함께 손잡고 뛰어놀 수 있을 커다란 바다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믿으며 끊임없이 헤엄쳐 간다. 세상은 친구들과 놀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닌가, 손이라는 건 나를 때린 친구를 되받아 때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 친구의 손을 잡고 함께 놀기 해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아이들이 생각해 봤다는 기색도 없이 당연한 본능처럼 그렇게 말한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친구를 다시 부르기 위해 아이들이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더 당혹스런 상황을 일으킬 때 때로는 눈을 질끈 감게 되기도 하지만, 이후 다가오는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그렇게 졸였던 맘이 새삼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너'와 '내'가 '우리들'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위해, 가시덤불 앞에서 발길을 돌리지 않고 기꺼이 그 길로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벌거벗은 관계의 민낯에 아파하던 우리의 마음은 애틋하게 위로받는다. 이미 어른들은 지쳐 무릎 꿇었을 곳에서마저, 아이들은 나아가기를 선택하고 그 선택 덕분에 아이들은 좁은 시냇물가 강을 넘어 바다로 흘러간다. 몸집과 마음을 키워 간다.
관계의 변화에 휩싸이며 때로 연약해지기도 하고 때로 얄미워지기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연기, 아니 보여준 어린 배우들의 활약 또한 기적에 가깝다. 아이들답게 순수하고도 진솔한 말 속에서 오가는,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날카로운 진심에서는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입으로 옮겼을 때는 만날 수 없는 현실적 공기가 느껴진다.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서 변화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관객은 어느새 사전에 짜여진 '연기'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반응'처럼 받아들이게 되고, 그 덕분에 결국 아이들의 이야기는 잘 설계된 '장면'이 아닌 일어나는 대로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처럼 다가오게 된다. 그처럼 스스로의 감정을 진솔하게 투영하며 흘러들어오고 흘러나가는 관계에 반응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표현해 낸 어린 배우들 - 선이 역의 최수인 양, 지아 역의 설혜인 양, 보라 역의 이서연 양, (영화 속 최고의 우문현답을 보여주는) 윤이 역의 강민준 군 외 많은 어린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물론 이들의 이러한 기적은 아이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스스로 납득하고 그 세계에 오롯이 서게끔 존중해 준 윤가은 감독의 연출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우리들'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그만큼 소중한 일인가. 그렇게 어려운 숙제가 어른이 된 지금은 물론이요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선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우리를 숱하게 괴롭혀 왔는가.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괴롭혀 온 숙제의 답이 실은 누구라도 지나 온 그 어린 시절 속에 얼마나 명백하게 담겨 있는가. <우리들>이 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안개처럼 흐릿하게 흘러가는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을 보며 조마조마해 하다가도, 그 안개 너머로 마침내 결심하고 내밀어 오는 아이들의 손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한때 갖고 있었을지 모를 그 기특함과 깨달음에 눈물을 참기 힘들지도 모른다. 올해 영화라는 예술이 준 축복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이 영화를 이야기할 것이다.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우리들'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그만큼 소중한 일인가. 그렇게 어려운 숙제가 어른이 된 지금은 물론이요 유치원이나 학교에 들어선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우리를 숱하게 괴롭혀 왔는가. 그리고 그렇게 우리를 괴롭혀 온 숙제의 답이 실은 누구라도 지나 온 그 어린 시절 속에 얼마나 명백하게 담겨 있는가. <우리들>이 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물안개처럼 흐릿하게 흘러가는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을 보며 조마조마해 하다가도, 그 안개 너머로 마침내 결심하고 내밀어 오는 아이들의 손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한때 갖고 있었을지 모를 그 기특함과 깨달음에 눈물을 참기 힘들지도 모른다. 올해 영화라는 예술이 준 축복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이 영화를 이야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