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를 찾아서> - 앤드류 스탠튼 감독
2008년 단 한 차례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픽사 애니메이션의 모든 것을 담은 전시회에 간 적이 있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너무나 좋아하는 나머지 군 복무 중 나온 휴가 때 고향 집에 내려가는 것도 하루 미루고 갔었던 그 전시회에서, 나는 픽사가 영화 한 편을 만들 때마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픽사에서 나온 영화를 매 편 볼 때마다 당장의 즐거움으로 그치지 않고 어떤 세상 속으로 풍덩 빠져 들어갔다가 나온 느낌이 드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나왔던 <니모를 찾아서>의 바다와 바닷속 친구들이 마냥 얄팍하거나 환상적이지만 않고 볼 때는 눈 속에, 보고 나서는 마음 속에 요동치며 남았던 것도 그래서였다. 눈부신 아름다움과 두려운 심연을 모두 품고 있는 것처럼, 그 바다는 큰 세계로 나아갈 때에만 만날 수 있는 위기 그리고 환희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펼쳐지는 세상과 비교해도 좋은 곳이었고, 그래서 그 속에서 펼쳐지는 어느 아빠 물고기의 모험은 마땅한 악역 캐릭터 하나 없이도 충분히 조마조마하고 또 감동적인 모험이었다.
그리고 13년 만에 그 바다가 돌아왔다. 실제 시간 간격은 13년이지만 영화 속에서의 시간 간격은 1년인 만큼(아무래도 거북이 정도를 제외하면 수명이 짧은 바다 생물의 이야기다보니), <토이 스토리 3>를 만날 때처럼 우리 삶과 똑같은 시간의 흐름을 공유하는 이야기를 만날 때의 먹먹한 감동을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세월의 아픔 대신, 13년 만에 돌아온 <니모를 찾아서>의 속편인 <도리를 찾아서>는 대신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찾아온 반가운 추억과 함께 시간과 상관없이 언제나처럼 흘러가는 삶의 순리, 자연의 순리를 이야기한다. 아직 너무나 어린 아들의 실종과 그를 찾아나선 아버지의 이야기를 일방적인 추격담이 아닌 둘 모두의 성장담으로 완성했던 바다는 13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처럼 너른 품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누구라도 와서 뛰놀라며 열려 있는 그 너른 품처럼, <도리를 찾아서>의 바다는 여전히 모두의 가치 있는 모험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말린(앨버트 브룩스)의 아들 니모(헤이든 롤렌스)를 찾기 위한 스펙터클한 모험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1년 후, 말린과 니모 부자 그리고 그들의 친구 도리(엘렌 드제너러스)는 한 가족이 되어 단란하게 살고 있다. 도리는 여전히 자신이 단기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공표하면서, 시시때때 없어지는 기억에도 아랑곳없이 명랑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바닷속 아이들을 위한 견학 도우미로 나섰던 어느날, 까맣게 잊었던 어린 날의 기억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침을 느낀다. 자신에게 엄마와 아빠, 집이 있으며 그들이 무척 그립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 길로 도리는 말린, 니모와 함께 자신의 부모를 찾기 위한 대책없는 여정에 나서고, 다행히 전편에서 활약했던 거북이 친구 크러쉬(앤드류 스탠튼)의 도움을 받아 머나먼 미국 캘리포니아 바다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불시에 다가온 인간의 손에 의해 도리는 '바다생물 연구소'라는 시설에 격리되고, 그곳에서 수족관에 몹시 가고 싶어하는 문어 행크(에드 오닐)를 만나 탈출 작전과 동시에 이 연구소 어딘가에 있을 부모를 찾기 위한 모험에 돌입한다. 한편 도리와 헤어진 말린과 니모는 바다사자 콤비(이드리스 엘바/도미니크 웨스트) 등의 도움을 받으며 도리를 찾아 나선다. 과연 도리는 부모와 무사히 상봉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후 이들의 삶은 어떻게 될까.
'단기 기억상실증을 지닌 주인공이 자신의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헤어진 부모를 찾아간다'는 스토리라인은 굳이 인기 있었던 영화의 속편이 아닌 오리지널 작품이라 가정해도 충분히 흥미롭다. <도리를 찾아서>는 이 설정에서 출발해 무엇보다도 빼어난 오락영화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전편 <니모를 찾아서>가 니모를 찾는 아버지 말린과 타지에서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말린을 교차해 보여주며 어드벤처물에 로드무비 형식을 결합했다면, 이번 <도리를 찾아서>는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는 도리의 캐릭터를 활용하며 어드벤처물에 추리적 요소를 입힌다. 도리가 찾는 대상인 부모의 행방을 밝히지 않는데다 그들을 찾는 도리의 현재 상태도 근본적으로 기억에 대한 신빙성에 의문을 자아낼 수 밖에 없는지라 궁금증을 자아낸다. 더불어 자취를 감췄던 도리의 기억이 그가 거치는 장소들마다 파편적으로 드러나며 다음 실마리를 제공하는 전개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연상시키는 인상적인 방식이다. 특히 영화는 드넓은 태평양을 배경으로 했던 전편과 달리 미국 캘리포니아의 '바다 생물 연구소'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굵직한 모험을 펼치는데, 이는 끊임없이 길을 찾고 장소를 발견해야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첩보영화 못지 않은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미스터리 첩보물 같은 세팅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후반부에서 액션영화를 방불케 하는 꽤 큰 스케일의 모험 시퀀스를 선보이기도 하면서, 모험의 완급 조절을 능숙하게 해내기도 한다.
캐릭터의 매력과 유머감각에 있어서도 픽사의 최전성기를 연상시키는 활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3년 만에 만난 옛 친구들이 반가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감초 캐릭터에서 타이틀롤로 승격한 도리는 자신의 잃어버린 가족과 잊었던 과거를 찾아나가는 여정에 뛰어드는 만큼 전편의 개그 캐릭터 이상의 입체감을 보여준다. 외적인 명랑함 속에 숨은 내적인 갈등, 깜박거리는 기억으로 인해 끊임없이 불안해 하면서도 자신이 취해야 할 마음가짐이나 행동에 있어서 확신할 줄 아는 도리의 모습은 그저 재미있고 유쾌했던 모습을 넘어 경이롭고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게 한다. 심드렁하게 조잘거리는 가운데서도 도리의 그런 마음의 동요를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엘렌 드제너러스의 목소리 연기는 두말하면 이 아플 수준이다. 전편에서 한 차례 파란만장한 모험의 주인공이 되었던 말린과 니모는 이번에 조력자의 위치로 한 발짝 물러섰지만, 자아에 대한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발걸음을 옮기는 도리를 관찰하고 헤아리며 깨달아가는 이들로서 의미심장한 역할을 한다. 전편에서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입장이었던 말린은 이번 편에서 '아픔을 지닌 이를 지켜보는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 서면서, 답답해 하고 불안해 하다 결국은 느끼는 바를 얻게 되는 보통의 관객들을 대변한다. 아버지를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던 아들 니모는 외려 아버지보다 의젓하고 현명한 시각으로 위기와 고민의 순간 속에서 뜻밖의 답을 알려준다.
이 주인공들 외에도 <도리를 찾아서>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새롭게 합류한 친구들이 대단히 보기 좋은 조화를 이룬다. 전편의 조력자 크러쉬가 여전한 넉살과 여유로 도리와 말린, 니모를 순식간에 캘리포니아로 데려다주면, 그곳에는 하나같이 또렷한 개성을 지닌 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유자재로 보호색을 구사하는 '다리 일곱 개 문어' 행크는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띈다. 연체동물 특유의 흐물거리는 유연함이 실제에 가깝게 구현되어 해양생물을 표현하는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데다, 시종일관 나는 수족관을 갈테니 내 길 막지 말라고 천명하면서도 도리를 도와줄 만한 일은 다 해주는 이른바 '김첨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의 매력도 면에서도 매우 우월하다. 그 뿐 아니라 지구상에서 가장 큰 포유류라는 고래상어라지만 무척 상냥하고 밝은 성격을 지닌 데스티니와 대단히 깜찍한 외모와 달리 아재스러운 목소리와 더불어 '최고의 고화질 안경'인 음파 탐지 기능으로 멀리 있는 사물을 식별할 줄도 아는 흰돌고래(벨루가고래) 베일리도 특유의 '돌고래 사운드'로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유감없이 뽐냄은 물론 옛 친구들과의 앙상블도 보기 좋게 만들어내며 영화에 풍성한 재미를 부여한다. '채식주의 하는 상어'같이 기존의 동물 캐릭터를 살짝 비트는 설정은 이번 편에서도 '근시 있는 고래상어'나 '경박한 몸짓을 애써 무게잡으며 감추는 바다사자'처럼 이어지며 여전히 유별난 이 시리즈의 유머감각을 증명한다. 생각지도 못하게 실명 언급되며 주요 배경의 일부로 취급되는 유명 배우의 등장도 그 유별난 유머감각의 일부이다.
이처럼 <도리를 찾아서>는 재미 요소부터 풍족하게 갖춘데다, 재미를 끝까지 놓치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안에 이질감 없이 녹여낼 줄 아는 솜씨까지 보여준다. 모든 픽사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현실 세계, 그것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현실 세계에 대입이 가능하다. <니모를 찾아서>가 전세계적인 박수 갈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황홀한 바다 세계의 풍경으로 아이들을 매혹시키는 가운데 그들을 데리고 극장에 온 어른들에게 대단히 유효한 이야기를 건넸기 때문이다. 아직 한참 어린, 게다가 한쪽 지느러미가 보통보다 작아 헤엄치는 것도 남들보다 쉽지 않은 아들의 모험과 성장을 인정해 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 잘 단속하라'는 말 대신 '아이의 가능성을 믿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말을 전한 것이다. '자식을 물가에 내놓은 부모의 심정'을 <니모를 찾아서>는 드넓은 태평양을 배경에 훌륭히 옮겨 놓으면서, 부모와 자식의 앞날을 모두 격려하는 건설적인 메시지를 통해 연령대를 불문하고 모두를 감동시켰다. <도리를 찾아서> 역시 같은 바다를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비슷하게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의 삶을 너무나 통렬하게 관통하며 걸작의 반열에 오른 <토이 스토리 3>나 <인사이드 아웃>처럼 우리를 불현듯 참을 수 없이 울컥하게 만들지는 않더라도, <도리를 찾아서>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매우 건설적이고 또 대단히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도리를 찾아서>가 전하는 이야기는 전편 <니모를 찾아서>의 그것보다 감정에는 덜 직접적으로 호소하면서, 더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조건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편은 약간의 장애를 지닌 아들을 애타게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로서, 아들을 향한 지극한 사랑과 그를 잃을까 두려운 마음을 동시에 지닌 아버지의 일편단심에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모험의 여정은 배배 꼬여도, 말린이 니모를 향해 품은 그 마음은 한눈 팔 겨를도 없이 올곧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이번 편의 주인공인 도리의 마음은 불안하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아니 때로는 그 의지도 없었던 것처럼 만들 정도의 정신적 단절이 왕왕 일어난다. 이정표로 삼았던 기억도 깜박거리고, 어떨 때는 목표로 삼았던 존재들마저 희미해지기도 한다. 분명 그녀가 모험을 이끄는 이임에도 그녀 스스로가 먼저 내보이는 불안으로 인해 그녀를 따르는 다른 이들마저 똑같이 불안해진다. 그러나 이처럼 갈팡질팡하는 모험의 여정에 보는 이가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원인이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찾는 이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만큼 두터운, 자신을 향한 밝고 침착한 믿음이었다.
우리는 도리가 전편에서 보여왔던 대책없는 낙천주의가 결코 '실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이내 알게 된다. 의지하던 존재로부터 예상치 못하게 멀어지는 일을 겪은 후, 넓기도 넓고 위험하기도 위험한 바다를 가로질러 오며 흐트러질만도 할 자신을 끝까지 붙들기 위한 나름의 신념이기도 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 헤엄쳐가라는, 무언가를 해냈다면 다른 것도 더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그 신념은 바람직한 가르침으로부터 비롯된 것일테며, 그렇게 배운 것에 대한 스스로의 변함없는 믿음으로 뿌리내린 것일테다. 그 신념 덕분에 도리는 '할 수 없는 것'보다 '해낼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찾아낸 것이고, 세상 앞에 선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한 것이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도리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해 보게 할 만큼 능히 따를 수 있는 주체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도리를 찾아서>는 전편에 이어 누구나가 지닌 독립성, 주체성에 대한 믿음을 사려깊게 역설한다. 다만 전편이 아이의 독립성, 주체성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타인과 조금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이들이 홀로설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때로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그러한 '다른 점'을 '장애'라고 규정지을지 모르나, 끊임없는 탐색과 용기 있는 전진을 인정하는 열린 세상에서는 그것이 '장애'가 아닌 '개성'으로서 정착할 수 있는 것이다. 자꾸만 사라지는 기억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망가졌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는, 이것이 자신의 병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아야 한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도리의 모습처럼 말이다.
열린 세상은 장애도 개성처럼 만들어주지만, 닫힌 세상은 반대로 개성을 장애로 만들기도 한다. 도리가 자신의 정신적 제약을 극복하고 홀로 성장하여 자신이 비롯된 곳을 찾아가는 여정에 보호와 치료, 방생을 목적으로 한다는 '바다 생물 연구소'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고래상어, 흰돌고래 등 희귀한 바다 생물들이 이 연구소에서 보호와 치료를 받지만, 인간들의 과도한 통제와 비좁은 공간 속에서 그 희소성은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고래상어가 시력이 안좋아 벽에 자꾸 부딪치는 이유는, 몸집이 거대한 만큼 벽이 없는 너른 바다에서 뛰놀아야 맞기 때문이다. 조금 다르거나 조금 부족하다 해도 해낼 수 있음을 믿고 세상을 향한 문을 용기 내어 열어주는 것. 그리하여 모든 것을 품을 준비가 되어 있는 바다를 향해 나아갈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하는 것. 그것은 비단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위한 방법만이 아닌 자연의 순리이기도 함을, <도리를 찾아서>는 도리와 바다 생물 연구소 속 친구들의 여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부모의 열린 마음으로부터 자녀는 성장하듯, 자연의 너른 품으로부터 생명은 도약한다.
도리의 성격처럼, <도리를 찾아서>는 깨달음의 순간을 위해 굳이 진지해지거나 어두워지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감동을 준다. 부모로 하여금 홀로 남겨진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케 했던 아이가, 만약 부모의 기억마저 잊어버리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하나 불안해 했던 아이가 끝내 '계속 헤엄쳐 가는' 마음으로 그 걱정과 불안을 극복하고 자신이 못하는 것이 아닌 해낸 것을 먼저 바라볼 줄 아는 이로 거듭나는 과정은 굳이 연민하지 않고 도리의 표정처럼 언제나 해사해서 오히려 뭉클하다. 한쪽 지느러미가 남달리 작은 니모가 그 작은 지느러미를 그만큼 더 세차게 휘저으며 바닷속을 씩씩하게 살아가듯, 도리에게도 깜박거리는 기억은 좀 더 색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의 벽을 마주한 그녀를 불쌍히 여기는 대신, 그 벽을 돌파하는 그녀에게 힘을 북돋우는 이 영화는, 만약 남들과 좀 다른 아이를 둔 부모가 본다면 특히 큰 힘이 될 것이다. 이 영화를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야기로 봐도 좋고, 자연을 보호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 이야기로 봐도 좋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보든, <도리를 찾아서>는 누구나의 독립적인 가치와 가능성을 존중하고, 그들을 향한 세상의 문을 차별 없이 연다는 것의 의미를 말하는 영화임이 틀림 없을 것이다. 벽이나 문 없이 누구에게든 어디로든 열려 있고 흘러갈 준비가 되어 있는 바다처럼, <도리를 찾아서>는 넓은 마음을 지녔다.
+ 엔딩 크레딧 이후에 상당히 긴 쿠키 영상이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반가운 친구들이 또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