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헬조선에는 누가 있을까

<부산행> - 연상호 감독

by 김진만
736ebf89e47fb12711a44d4508ef7cb6f37acd86.jpg <부산행>(Train To Busan, 2016)


편리한 것이 많아지면서 사람은 그만큼 생각을 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의 그러한 단면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공포영화 속 좀비라는 존재만큼 통렬한 것도 없었다. 다른 공포영화들 속 아이콘과 달리 조지 A. 로메로의 그 유명한 좀비 시리즈로 대표될 만한 시초부터, 좀비는 사회 풍자적인 성격을 강하게 띤 창조물이었다. 오로지 식욕만이 남은 그들의 무차별적 전진으로부터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강하게 감정이입을 하며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격언을 머릿속에 되새겨 왔더랬다. 그런 점에서 좀비라는 존재는 표현수위에 있어서는 공포영화 범주에서 최상위에 속할 것임에도 진작에 한국 사회와 어울리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생각한 대로 삶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는 애저녁에 박탈 당했고, 기본적인 생존 조건마저도 챙기기에 시간이 모자라 발버둥치는 모습은 더 이상 생소한 풍경이 아니다. 지옥이라고 하는 곳에는 많은 귀신과 괴물 중에 좀비도 있지 않겠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헬조선'이라는 곳이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

영화 <부산행>이 좀비물로서 천만 관객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 굉장히 이변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좀비물이 아닌 이러한 현실 반영적 재난영화로서 생각해 본다면 새삼스러운 이변도 아닌 셈이다.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과 그들로부터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100% 허구라기보다, 일종의 비유에 가깝다는 사실이 더욱 섬뜩하다. 한번 지나친 곳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후진이나 유턴도 없이 오직 전진만 하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미쳐가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일 수록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단지 유명 배우들이 나와서 스펙터클하고 속도감 있는 볼거리를 통해 보여준다 뿐이지, 이런 광경은 영화를 만든 연상호 감독의 전작에서 보아 온 한국 사회의 그늘지고 폭력적인 면모와 크게 다름이 없다. 이런 한국 사회의 민낯을 이런 형태로나마 더 많은 사람들이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래도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03972d928cc3dbda72884f01683bc61d3cbb382d.jpg <부산행>(Train To Busan, 2016)


증권사 펀드매니저인 석우(공유)는 아내와 이혼 중인 가운데 딸 수안(김수안)을 맡아 키우고 있지만, 일 때문에 바빠서인지 아니면 생색내기 위함인지 딸과의 사이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아 보인다. 수안은 생일날에 엄마, 즉 석우와 이혼 중인 아내가 있는 부산으로 가고 싶다고 아빠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이에 석우는 마지못해 수안을 데려다 주러 새벽에 출발하는 부산행 KTX 첫차에 몸을 싣는다. 그곳에는 상화(마동석)와 그의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 썸타고 있는 고등학교 급우 사이인 야구부원 영국(최우식)과 응원단 진희(안소희), 천리마고속 상무인 용석(김의성) 등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설레는 마음도 잠시, 위급한 증상을 앓고 있는 어떤 승객이 열차에 올라타고는 돌변하여 승무원을 물어뜯고, 그렇게 물어뜯긴 승무원이 또 돌변해 승객을 물어뜯는 식의 연쇄 사고가 발생한다. 그렇게 의문의 바이러스가 옮겨 붙으며 열차 안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물어뜯으려는 괴이한 존재들로 뒤덮이고, 이미 출발한 부산행 KTX 열차에 탄 수많은 승객들은 살아남기 위해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과 사투를 벌여야만 한다. 과연 열차는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 영화계에서 좀비라는 소재는 마니악하고도 또 마니악한 것이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장기를 헤집어 먹거나 사지를 찢어놓는 서양 좀비들의 공격 패턴은 시각적 충격보다 분위기 조성을 중시하는 한국의 호러 정서와 완벽히 배치되는 것이었고, 그 비주얼의 강도 또한 보통의 관객들까지 용인하기는 쉽지 않은 수준이었다. 지금은 DC 코믹스 영화산업의 영향력 있는 (그리고 문제적인) 인사가 된 잭 스나이더가 스크린 데뷔작으로 만든 <새벽의 저주> 때만 해도 그런 이미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랬던 좀비영화의 이미지는 브래드 피트라는 빅스타가 출연한 블록버스터 <월드워 Z>의 등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잔혹한 비주얼보다 개체들의 인해전술로 스케일을 과시하면서 호러영화가 아닌 '재난영화'의 모양새를 충분히 낼 수 있게 되었고, 그 속에서 가족애와 같은 보편적인 정서를 자아낼 수 있게 되면서 더 많은 관객들이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영화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좀비를 주인공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웜 바디스>)까지 등장하며 호응을 얻었다. 좀비영화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더 다양해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행>은 국내 상업영화 시장에 '좀비'라는 소재를 본격적으로 들여오는 첫 사례였고, 그런 만큼 비교적 안전하고도 현명한 선택을 했다. <새벽의 저주>보다는 <월드워 Z>의 길을 택한 것이다.


6f8164e578529d74ae9adc5a085c4ec847b00728.jpg <부산행>(Train To Busan, 2016)


좀비영화가 청소년도 볼 수 있는 영화가 되기 위해서는 타협해야 할 것이 사실 적지 않다. 19금 좀비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유혈낭자한 비주얼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하며, 좀비를 퇴치하는 과정에서의 피튀기는 통쾌함 역시 표현을 자제해야 한다. (좀비는 엄밀히 말하면 사람이 아닌 괴물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형체는 사람인 그들을 무자비하게 처치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행>은 몇 가지 장치를 영리하게 설치해놓음으로써, 등급이 낮아짐으로 인해 좀비영화로서 싱거워졌다는 평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우면서 창의성 또한 획득했다. 우선 좌우로는 공간의 여유 없이 오직 앞뒤로만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열차 안을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꼭 좀비들의 잔혹한 공격 때문이 아니더라도 인간과 좀비의 피할 곳 없는 대치 상황 자체만으로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한 좀비들에게 보통의 좀비영화들에선 잘 찾아볼 수 없었던 핸디캡을 적용함으로써 생존자들이 무조건적인 도망이나 공격 대신 '전술'을 쓰도록 유도한다. 더불어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손으로 헤집는 일반적인 좀비들과 달리 이 영화 속 좀비들은 주로 목덜미 등의 부위를 중심으로 깨무는 행위 위주의 공격을 하며 '뱀파이어'에 가까운 행동 패턴을 보여준다. 물어뜯는 장면은 보여주되 살점이 뜯기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15세 관람가 영화 수준에 걸맞은 폭력성을 구현한다. 이렇게 영화에 부여된 창의성 덕분에 <부산행>은 우리나라에서 좀비를 소재로 처음 등장한 상업영화임에도 여느 할리우드 좀비영화 부럽지 않은 새로운 장면들까지 구현하게 되었다. 대전 역 군인 좀비들의 습격 장면, 후반부 달리는 열차 뒤에 부채꼴로 엉겨붙는 좀비떼들의 공격 장면이 대표적인 경우다.

여기에 <부산행>은 더 많은 한국 관객들이 국산 좀비영화를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또 하나의 장치를 가미하니, 그것은 바로 '휴머니즘'이다. 눈에 띄는 분위기의 전환이 이뤄지다 보니 '신파'라고 평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일차원적인 신파 요소보다 한결 영리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장르와 동떨어진 채 '관객을 울려야겠다'는 일념만으로 기계적으로 삽입되지 않고, 장르의 특성과 나름 긴밀하게 연결되어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가 보통의 좀비영화들에서 봐 왔던 숱한 좀비들도 실은 자기만의 삶을 살았던, '인간이었던 존재'임에 주목한다.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애정으로 가득했던 인물이 더 이상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갈 때, 그리고 사랑했던 이가 그렇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을 때의 감정이 짙은 감수성이 담긴 장면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관객의 감정을 소모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순간을 사건 국면의 또 다른 전환점으로 삼는 똑똑한 테크닉을 구사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가장 큰 흠결로 지적받기도 하는 후반부 어떤 인물의 플래시백 장면역시, 가장 끔찍한 순간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교차하며 가장 비인간적인 존재가 가장 인간적인 감정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는,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존재하는 장면으로 다가왔다.


4504307c91151521b2ac5427974740fb25adb7a2.jpg <부산행>(Train To Busan, 2016)


그러나 <부산행> 이전에 여러 편의 애니메이션 수작들을 통해 한국 사회의 어둡고 부끄러운 민낯을 과감하게 까발렸던 감독이기에, 이 영화를 그저 한국에 좀비영화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자 하는 시도에 머물게 하려 하진 않았을 것 같다. 열차라는 공간과 좀비의 습격이라는 설정을 빌려, 외관상 재난 블록버스터로 보이는 <부산행>을 통해 감독은 사실 책임과 특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 같았다. 스테레오타입이 아니라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인물을 이야기의 중심에 세운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지 모르겠다. 영화 초반에 그려지는 주인공 석우는 '책임을 모르는 인물'이다. 펀드매니저로 잘 나가지만 개미투자자들의 처지를 걱정하는 부하직원의 말에 "넌 개미들 걱정해 가면서 일하냐?"고 쏘아붙이고, 이혼 절차 중인 아내에게 양육권은 못빼앗기겠다면서도 딸 생일 선물로 줬던 걸 또 줄 정도로 허울뿐인 사랑을 준다. 부산행 KTX 열차에 탑승한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랬던 그에게 처음으로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기회였을 수도 있다.

이야기를 석우와 그의 딸 수안에게서 출발한 영화는 본격적으로 부산행 KTX 열차로 공간이 이동하면서 보다 많은 등장인물들을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에 대해서는 석우와 수안의 경우처럼 굳이 개인적인 전사까지 설명하진 않지만,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스케치 장면만으로도 성격이나 처지가 깔끔하게 이해된다. 석우-수안 부녀와 곧 모험을 함께 하게 될 주변 인물들은 상대적으로 유형화되어 있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책임질 줄 아는 젊은 부부 상화와 성경, 아직 책임보다는 존중과 보호를 받아야 할 청소년인 영국과 진희, 그리고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책임감을 발동시키는, 즉 이타적인 책임감이 결여된 어른 용석이 그들이다. 석우를 '개미핥기'라 일컬으며 적극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는 걸로 봐서 평범한 서민층인 것으로 추정되는 상화는 그러나, 일련의 생존 과정에서 석우를 비롯한 생존자들과의 유대감을 느끼고 곧 모두의 생존을 위해 발벗고 최전선에 나서는 책임감을 발휘한다. 상화의 아내 성경은 임신 상태이기 때문에 격한 활동은 할 수 없으나 상화를 실질적으로 주도하며, 동시에 수안과 같은 약자를 보듬을 줄 아는 모성애를 일찌감치 지녔다. 영국은 썸을 타는 중인 진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아직 성인이 채 되지 않아서인지 '불완전한 보호자'의 모습을 보이고, 이는 진희도 마찬가지다. 반면 용석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활용해 수시로 상황을 리드하고 여론을 주도해나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만일 뿐 그들 모두의 생존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건 책임을 가장한 이용이다.


e36c73cc0a905718c4be3883130e23e4a53eaa19.jpg <부산행>(Train To Busan, 2016)


가진 자일 수록 책임감은 인색하고 이기심은 넘치는 가운데, 그 영향력은 또 가진 만큼 커서 나쁜 것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반면 가지지 못한 자일수록 자신을 내던져 책임질 줄 알지만, 그 영향력은 못 가진 만큼 없어서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한다. 살아남은 자들끼리 열차 안에서 대치하는 장면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살아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지만,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가진 자과 그 반대편에 선 보통 사람들 간의 대립을 지켜보면서 새삼 눈에 띄는 건 특권층의 뒤에 서서 암묵적 동조를 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앞에 선 그 자의 태도가 '리더십'이라 믿으며, 자신들 역시 그 가진 자의 위치에 섰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가진 자에게는 가장 먼저 나갈 수 있는 퇴로가 있다. 정 없다면 사람들을 밀쳐내서라도 만든다. 가진 자의 거짓된 리더십에 사로잡힌 보통 사람들은 그가 퇴로로 먼저 나가서 자신들을 바깥으로 인도해 줄 거라고 믿지만, 가진 자는 자신만 바깥으로 나가고 퇴로로 통하는 문을 잠가 버리면 그만이다. 이것이 어쩌면 <부산행>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진짜 비극일지 모른다. 가진 자가 평범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 상당수가 자신들 역시 결국 희생양이 된다는 것도 모른 채 가진 자에게 매혹된다는 것. 가진 자와 함께 특실에 있다고 다 특권층이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그렇게 '헬조선'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비극으로 치닫는 사회 속에서 감독은 주인공인 석우와 수안 부녀를,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어른과 그런 어른과의 관계를 통해 삶을 발견해 나가는 아이로 그림으로써 나름의 희망으로 삼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2시간 내외의 시간동안 이뤄지는 이들 부녀의 성장과 진전은 진중하고도 역동적인 연기로 젊은 아빠 연기를 더욱 능숙하게 해내는 공유 배우와, 과함 없이 감정의 완급 조절이 백미인 아역배우 김수안 양의 호흡에 힘입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지극히 평등한 부부관계 속에서 어느덧 타인들을 향해 희망을 전파해 가는 '가장 보통의 신혼부부' 상화와 성경을 애정어리게 연기한 마동석-정유미 배우, 죽은 자들이 되어가는 친구들 속에서 가장 풋풋하고도 가장 슬픈 청춘이 되어가는 영국과 진희 역의 최우식-안소희 배우, 역대급으로 암을 유발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단면인 용석 역의 김의성 배우, 약하고 못 가진 자일수록 자신을 내던지는 것에 더 익숙하다는 슬픈 현실을 곱씹게 하는 노자매 역의 예수정-박명신 배우까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이 부산행 KTX 열차라는 작은 공간 안에 절망과 분노와 희망이 공존하는 대한민국을 인상적으로 구현한다.


2102f13f7da4920b13a239e4a72a557c5c4de57e.jpg <부산행>(Train To Busan, 2016)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영화의 연착륙과도 같다. 한국영화 특유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끌고 왔다며 지적되는 일부분은 '버리지 못한 습관'이라기보다 한국영화, 한국인의 정서와 좀비영화라는 장르 간의 교집합을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다고 여기고 싶다.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만들어져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내고 싶은 목소리로 마음껏 할 수 있었던 이전 애니메이션들과 달리, 이번 <부산행>은 거대 자본과 유명 배우들이 투입되었으니 감독에게는 기존 세계관과의 타협이 당연히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이루어진 어느 정도의 타협 속에서도 우스꽝스럽고도 섬뜩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감독의 예리한 시선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시들지 않고 살아있다. 무엇보다 좀비영화라는 틀 안에서 죽고 죽이는 좀비와 인간들의 혈투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파괴되어 가고 성숙해 가는 인간성이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부산행>은 좀비영화의 성공적인 한국화 결과물 수준을 넘어 여느 할리우드 좀비영화를 앞서는 성취라고 하기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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