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미세리코르디아>
<호수의 이방인>을 연출한 프랑스의 감독 알랭 기로디의 새 영화 <미세리코르디아>는. 작년 칸영화제에 초청되어 호평을 받고 프랑스의 대표 영화 매거진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2024년 올해의 영화 1위로 선정되는 등 평단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었습니다. 1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감독의 대표작인 <호수의 이방인>을 봤을 떄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번 <미세리코르디아>도 그와 비슷한 기운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기운을 표현보다는 분위기 측면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긴 합니다만, 안개처럼 욕망이 자욱하게 깔린 세상을 위태롭게 걷는 주인공과 그로 인해 세상에 일어나는 파문을 그린다는 것은 상통하는 부분이겠습니다. 마냥 조용하거나 잔잔해서 졸음을 유발할 줄 알았던 영화는, 그런 기운을 빌어 예측할 수 없는 감정과 사건의 흐름 속에 우리들을 데려다 놓으며 처음엔 당혹케 하다 끝내 그 세계의 일원으로 끌어들이고야 맙니다.
프랑스 툴루즈에서 제빵사로 일하는 제레미(펠릭스 키실)는 자신에게 제빵을 가르쳐준 스승의 부고를 접하고 그가 10년 간 일하고 기거했던 시골 마을을 찾습니다. 애틋한 마음으로 스승을 위한 장례를 치른 후 스승의 미망인 마르틴(카트린 프로)의 요청으로 제레미는 그 집에서 한동안 더 머물기로 합니다. 그러나 제레미가 쓰기로 한 방의 주인이자 스승의 아들인 뱅상(장 밥티스트 뒤랑)은 그런 제레미에게 의심을 눈초리를 보내는데, 그 이유가 기가 차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편 제레미는 어릴 적 친구로 지금은 대저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왈테르(다비드 아얄라)를 찾아가곤 하는데, 왈테르는 그런 제레미와 시간을 가지면서도 그가 보내는 요상한 텐션에 경계를 표합니다. 또 다른 한편 마을 성당의 노신부 필리프(자크 드블레) 역시 제레미를 향해 기이한 시선을 보냅니다. 그렇게 제레미를 둘러싼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며칠 사이, 마을에는 뜻밖의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제레미는 사건의 미스터리 속을 분주하게 잠행합니다.
<미세리코르디아>의 도입부는 일면 익숙해 보입니다. 외딴 시골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주인공이 그 마을을 찾는다는 설정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는 왕왕 접해왔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대개 주인공은 자신이 몰랐던 사건의 이면을 캐고 진실을 추적하는 위치에 서게 마련이죠.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반대로 주인공인 제레미가 말 그대로 '걸어다니는 사건' 그 자체입니다. 그가 다니는 곳마다 감정이 분출되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죠. 꽤 잔잔하게 시작된 이야기를 따라간지 얼마 되지 않아 관객이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은, 제레미와 마주치는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에게서 생겨나는 성적인 긴장감입니다. 게다가 그 성적 긴장감은 난데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대화, 액션, 사건으로 그려지면서 관객을 놀라게 하는 걸 넘어 어지어질하게 만듭니다. "너 OO 좋아하니?", "너 OO랑 잤냐?"같은 대사가 단순 팩트체크 수준으로 남발되는데, 누구를 지칭하며 이런 대사를 하는지 생각하면 뜨악스러울 정도임에도 정작 인물들의 표정은 그저 할 말을 한 것처럼 심드렁하기만 합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과 감정과 표현이 그것을 받아들일 시간조차 주지 않은 채 무차별적으로 교차하는 것에 충격 받는 걸 넘어 헛웃음마저 일으키게 되는 이 분위기는, 흡사 관객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에 감정이입하는 것을 일부러 차단하기까지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미세리코르디아>는 인물들의 욕망을 관객들에게 구태여 설득하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욕망에 몰입하게 하든, 몰입할 수 없는 불순한 욕망이라면 어디서 그 욕망이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하기라도 할텐데, 영화는 그런 설명조차도 부연하지 않는 것이죠. 왜 그가 그런 마음을 품는지, 왜 그를 둘러싼 그 많은 사람들이 도덕의 경계까지 허물며 그에게 그런 마음을 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도 없이 그 모든 욕망의 양태를 관객에게 그저 보고하는 듯 합니다. 숲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덤불과 같이, 그렇게 뒤엉킨 인물들의 욕망조차도 마치 세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풍경인 것처럼 대하면서 말이죠. 아닌 말로 인간의 심연 어딘가에 뒤엉킨 욕망의 덤불 속에 무엇이 숨어 있을지, 맛깔난 식재료로서의 버섯일지 치명적인 독버섯일지 아니면 둘 다에 해당할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자연스러운 섭리일지 도덕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발일지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알랭 기로디 감독은 제레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얽힌 욕망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소리없이 뒤덮은 욕망의 덤불 그 한 단면을 잘라냈을 때 이런 그림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 않느냐면서 그저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영화 도입부에 장례식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 필리프는 이 세상에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역설합니다. 그런 신부의 말을 방증이라도 하듯 이후 그려지는 마을에는 사랑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까지 넘쳐나게 되고, 신부 역시 자신의 그 말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영화는 중반 이후 일어나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미스터리 스릴러의 분위기를 띄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도 꾸준히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아마도 가장 큰 미스터리는 사건의 범인이 누구냐, 진실이 언제 밝혀지느냐가 아니라 욕망의 향방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욕망의 향방이 사건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되받아치기도 그대로 고꾸라지게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알랭 기로디 감독이 바라보는 세상의 일면은 모두가 받아들여 마땅한 도덕과 윤리가 아닌, 누군가가 강력히 이끌릴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곳인 셈입니다.
영화의 제목인 '미세리코르디아'(Misericordia)는 라틴어로 자비(mercy)를 일컫는데, 그 뜻을 풀어보면 '타인의 비참함에 마음을 쓰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제목의 의미처럼 타인의 비참함에 마음을 쓰기 마련인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욕망의 천태만상에 관객은 당혹과 각성이 뒤섞인 탄성을 조용히 내뱉을 뿐입니다. 영화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시키는 가을 숲의 풍경은 초록빛에서 무채색으로 넘어가는 시간의 경계에서 매혹적인 갈색의 아름다움을 뽐냅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태도 또한 그 가을숲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들 중 대다수는 제레미를 비롯한 인물들의 욕망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나, 그렇게 기이한 빛깔과 음습한 향기를 뽐내며 펼쳐지는 욕망의 도미노에 시선이 가지 않고 마음이 가지 않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을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