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2025년 영화 베스트 5 - 한국영화 부문

by 김진만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가 밝았습니다. 2024년도 쉽지 않았던 한 해였다고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2025년은 그보다도 더 힘든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 팬으로서 한국영화계가 그 어느 때보다 위축되었다는 것은 특히나 무척 아프게 다가왔는데요, 천만 영화의 탄생은 고사하고 한 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자리도 외국영화에 내줘야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저 역시 2025년에 극장에서 본 한국영화는 세어보니 10편을 겨우 넘기는 정도였습니다. 올해 한국영화는 더 큰 위기일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있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한국영화들은 분명 있었습니다. 그 감동을 되새기는 마음으로 2025년의 개인적인 영화 베스트를 꼽아 보았습니다. 제가 본 영화들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완성도와 상관없이 보지 않은 영화들은 제외되었습니다.


먼저 한국영화 베스트입니다. (올해는 한국영화 관람작 수가 적어 베스트 5로 줄였습니다.)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 국내 정식 개봉된 한국영화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아래는 그 리스트이며, 간단평도 함께 싣습니다.



5위 <승부>


출연 : 이병헌, 유아인, 고창석, 현봉식, 문정희, 김강훈, 조우진

감독 : 김형주


세계 최정상급 실력자 2인의 맞대결이라는 주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종목을 바꿔가며 종종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승부>는 이 이야기를 이미 1인자가 되었고 이제 그 1인자의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를 처지에 놓인 한 인간의 시점에서, 그러면서도 바둑이 내포한 가르침이 실린 그의 깨달음을 통해 전함으로써 기대 이상의 울림을 주었습니다. 같은 집에 머물게 하면서 일취월장을 기원했던 제자의 실력이 마침내 자신마저 넘어설지도 모르는 상황 앞에서 느끼는 위기감과 잠깐의 좌절, 그러나 그 좌절에 굴복하지 않고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는 바둑의 가르침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불세출의 실력자를 예찬하기보다 널리고 널린 보통 사람의 성장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대결의 묘미보다 대결로 인한 개인의 성장에 집중함으로써 어렵지 않으면서도, 바둑 장면의 연출은 속도감과 감각을 담아 이루어지고요. 익히 알려진 실존인물에 명인의 아우라와 범인의 생활감을 동시에 불어넣는 이병헌 배우의 연기 또한 영화를 인상깊게 만드는 중요한 대목이었습니다.



4위 <얼굴>


출연 : 박정민, 권해효, 신현빈, 임성재, 한지현

감독 : 연상호


극도로 침체된 한국영화계에서 새로운 제작 및 수익 창출 방식 모델로도 주목받은 영화이지만, 한편으로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세계를 또 다른 측면으로 정립하는 의미를 지닌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세계관의 확장, 투입 자본의 확장으로 '연상호 월드'를 구축해가던 감독이 그와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몹시 절약된 자본과 그만큼의 제약 안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그가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캐릭터 설계자였음을 새삼 상기시킵니다. 연극 무대에 그대로 세워도 될 만큼 시공간의 제약을 두면서도, 우리 시대가 지나 온 역사를 관통하는 한 개인의 역사를 중심에 둠으로써 작지만 강렬한 울림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스토리라인 위에서 캐릭터는 그때그때 얼굴을 달리하며 생생하게 누비며, 그 끝에 마주하는 얼굴 앞에서 기어코 질문이 영화 속 인물을 넘어 우리에게 향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의 모골 송연함까지. 연상호 감독이 본연의 잘하는 분야로 돌아와 던지는 돌직구가 더없이 반갑게 다가오는 영화였습니다.



3위 <3학년 2학기>


출연 : 유이하, 김성국, 양지운, 김소완, 강진아, 김아석, 강현우, 유명조

감독 : 이란희


이 영화는 분명한 '노동영화'이지만 '고발영화'라곤 할 수 없는데, 아마도 그 중심에 곧 사회로 나갈 청소년들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발의 날을 세우기 위해 사건과 인물을 극단적으로 벼리는 대신 실제 어느 공장의 노동현장을 툭 잘라서 가져온 듯 담백하게 그려내고 흔적을 뒤따라 갑니다. 그 덕에 관객은 영화가 빚어낸 일방적인 목소리보다도 훨씬 다양한 풍경을 목격하게 됩니니다. 아이들의 안전과 인권을 100% 보장할 수 없는 현실, 그 모든 것을 챙기기에 이미 본인들도 피로에 절어 있는 직장인 선배들, 그런 피로와 불안이 만들어낸 제도의 소용돌이에 던져져서도 열심히 나아가 보려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무슨 일 일어날까 조마조마해 하며 지켜보게 되는 우리들까지. 영화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신 책임지진 못하더라도 일단 결행된 아이들의 선택을 묵묵히 지켜보고 조용히 다독여줍니다. 그 다독임, 이것을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어른이자 선배 노동자의 책임감이 숭고하게 느껴져 내내 잔잔하게 지켜보다 보고 나면 끊임없이 마음에 밟히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2위 <어쩔수가없다>


출연 :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

감독 : 박찬욱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그 어느 때보다 대중성 높게 만들었다고 밝혔지만 세간의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아가씨>의 해방감, <헤어질 결심>의 여운을 돌이켜 볼 때, 그 어떤 명료한 감정을 남기지 못하는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오히려 철저히 '박찬욱스럽게' 만들어진 영화일 것입니다. 해고와 실업 문제를 다루고 있어 감독의 그 어느 영화보다도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주인공의 방법론과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인물과 이야기에 이입하기에 무척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처럼 몰입하기 어려운 사건과 인물들이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보게 되면서 이들이 내포한 현실의 부조리는 더욱 저릿하게 와닿습니다. 생존을 위한 사투가 펼쳐지지만 그 싸움이 어디까지나 먹고 사는 게 힘들긴 매한가지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점에서 느끼게 되는 씁쓸한 뒷맛은, 감독 특유의 양식화된 연출과 코미디 감각과 생활감이 살아있는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마냥 웃거나 슬퍼하거나 비장해질 수 없게 하는, 부조리로 똘똘 뭉친 영화로 박찬욱 감독의 여전히 날카로운 시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위 <세계의 주인>


출연 : 서수빈, 장혜진, 김정식, 강채윤, 이재희, 김예창, 김석훈

감독 : 윤가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전 두 편의 영화로 이미 큰 감동을 받았었기에,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윤가은 감독의 신작이 그만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기대반 우려반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이번 영화로 감독은 그 감동의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감독이 어린이들이 주인공이었던 전작부터 꾸준히 이야기해 왔던 '각자의 투쟁'은 청소년 단계로 진입하면서 더욱 깊고 어려워지는데, 이는 과거의 큰 사건을 겪은 뒤 자기 세계의 주인으로서 우뚝 서려는 주인공 '주인'의 모습을 통해 한층 역동하는 감정에 실려 그려집니다. 영화는 청소년다움이라는,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은 한 개인으로서의 그 투쟁을 묵묵하게 따라가되 최대한 생생하게 포착하고, 이러한 존중의 태도로 나다움을 지키며 나의 세계를 지키려는 모든 이들을 북돋웁니다. 스토리를 빚고 캐릭터를 구축하는 것뿐 아니라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겐 치열한 투쟁의 연속인 일상의 공간을 사운드와 이미지로 포착하는 역량 또한 마음을 건드리며, 그처럼 영화적으로 빼어나게 빚어진 엔딩 장면에서는 속절없이 무릎꿇게 되죠. 윤가은 감독의 시선으로 성장기부터 노년기까지, 인간의 모든 시절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개인적으로 꼽아본 2025년 한국영화 베스트 10입니다.

2026년에는 다시 한국영화도 베스트 10을 꼽을 만큼 많이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2025년 외국영화 베스트 10을 꼽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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