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적인 영화리뷰 2025 - <척의 일생>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척의 일생>은 한 해의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앞둔 지금과 매우 잘 어울리는 듯합니다. 영화는 '호러의 제왕'이라 불리지만 '스탠 바이 미'와 '쇼생크 탈출' 등 휴머니즘 가득한 소설도 맘먹으면 제대로 쓸 줄 아는 명작가 스티븐 킹의 또 한편의 휴머니즘 소설이 원작입니다. 또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여러 차례 영상화해 오며 작가 특유의 서늘한 호러 감성과 애틋한 인간성을 모두 담아낼 줄 아는 역량을 보여 온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죠. 별다를 것 없는 한 개인의 인생을 우주와 맞닿게 하며 비범한 작법으로 삶의 위대함을 예찬하는 이 영화는, 원작이 무척 영상화하기 힘들었겠다는 사실을 짐작케 하면서도 그 색다른 접근법으로 인해 자칫 들어본 것 또 듣는 정도로 취급되었을 이야기를 '평범했지만 단 하나였던' 척의 일생만큼 보편적이고도 고유한 인생찬가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지진으로, 화산 폭발로, 기근으로 세상이 종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잘 연결되지 않는 등 1년여 전부터 싹튼 종말의 예감은 최근 들어 급속히 현실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은 시작이었을 뿐, 땅이 가라앉고 종이 소멸되면서 물과 식량까지 끊겨 가고 사람들은 점차 끝이 예정된 세상 속에서 살아갈 의지를 잃어갑니다. 그 종말의 한복판에 선 고등학교 교사 마티(치웨텔 에지오포)는 세상의 끝에서 누구와 함께 해야 할지 고민하다 전처인 간호사 펠리샤(카렌 길런)를 떠올리고는 그녀에게로 향하기로 결심합니다. 교통도 마비가 된 세상에서 두 발에 의지한 끝에 어렵게 만난 두 사람은 하나의 공통된 경험을 나누는데 그것은 바로 찰스 크란츠, '척'(톰 히들스턴/제이콥 트렘블레이/벤자민 파작/코디 플래너건)이라는 낯선 남자에 관한 것입니다.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워요 척!'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광고가 TV에, 전광판에, 라디오에, 심지어 하늘 위에까지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세상은 끝을 향해 가는데, 그들은 모르지만 온 세상이 감사를 표하는 척이라는 남자는 과연 누구일까. 그로부터 '척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스티븐 킹은 특유의 신비로운 필치로 독자를 공포에 떨게 하기도, 감동에 젖어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의 단편집 [피가 흐르는 곳에]에 실린 단편 소설 '척의 일생'을 원작으로 한 영화 <척의 일생>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의 놀라움을 이야기하기 위해 판타지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3막에서 시작해 1막으로 끝나는 독특한 비선형적 구성입니다. 기이한 묵시록적 판타지에서 시작해 문제의 사나이 '척'의 일생으로 들어가서는 누구와도 남다를 바 없었던 보통사람에 관한 진실에 다다르죠. 이러한 구성은 이야기가 어느 한 쪽의 출발점에서 시작해 다른 한 쪽의 도착점으로 가는 게 아니라, 표면에서부터 시작해 내면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입체적 전개를 띠며 우리가 뒤로 갈수록 모든 이야기의 끝이 아닌 시작으로 향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런데 척이란 인물의 삶이 유별나거나 비범했는가 들여다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서 사뭇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독특한 구조에 비해 이야기는 몹시 추상적으로 비춰질 수 있고, 이런 이야기 안에서 삶에 대한 메시지를 주려다 보면 요즘 유행하는 얄팍한 '위로 에세이'의 영상 버전에 머무를 우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 우려를 해결하고자 내레이션과 친절하고 편리한 장치를 쓰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극적 전개에 의존하기를 끝까지 거부하고 장면과 연기와 얼굴을 세세하게 담아내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조합에서 생경한 이미지를 빚어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뜬구름처럼 부유하는 어느 아무개의 삶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삶을 향한 울림과 마주하게 되죠.
온 세상이 척을 향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모습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진실은 우주와 우리들의 닮은 모습입니다. 수명이 150억년이라는 우주에도 언젠가는 그 끝이 (코앞이든 억겁이 걸리든) 다가오게 마련이라는 점에서, 그 우주에서 티끌의 몇 억분의 일도 안될 유한한 존재감을 지닌 우리들에게도 저마다 다 한없이 깊고 넓어질 수 있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우주와 우리들은 닮아 있습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내가 겪는 모든 경험들이 모여 그 누구와도 구별되는 고유의 우주가 만들어지고, 그 우주는 때로 수 년의 세월에 걸쳐 구축되기도 하는 반면 때로 찰나의 선택을 통해 무한히 확장되기도 합니다. 척이 마침내 자신의 일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정하게 되는 결정적 순간과 맞물려,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한 우주를 만들어나가는 척의 일생과 그 일생이 완성되는 데 기여한 여러 사람들의 순수한 에너지는 그의 삶과 하등 다르지 않은 우리의 삶을 반추하며 알 만한 감동을 색다른 방식으로 전합니다. 한 챕터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큰 비중을 지니는, 포스터와 예고편에서부터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척의 춤 장면은 특히나 한 인간의 내면에 또 하나의 영원한 우주가 만들어지는 순간의 기적을 짜릿하게 형상화하는 명장면이 되겠습니다.
이 영화의 타이틀롤인 척의 삶은 네 명의 배우에 의해 그려집니다. 성인 척을 연기한 톰 히들스턴은 비중이 생각했던 것만큼 크지 않으면서도, 전문 댄서를 방불케 하는 실력으로 유쾌함에서 시작해 감탄으로 끝맺게 하는 하이라이트 댄스 장면을 비롯한 단 몇 개의 장면 안에서 일련의 성장 과정을 통해 삶의 정수를 터득하고 체화시켰을 척의 모습을 고스란히 그려내면서 척의 일생 속으로 관객이 빨려들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냅니다. 회계사인 할아버지(마크 해밀)과 춤을 좋아하는 할머니(미아 사라)의 손에서 길러지며 자기 삶의 방향성을 탐색하기 시작하는 11세 무렵 척을 연기하는 청소년 배우 벤자민 파작의 똘망똘망한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과 <닥터 슬립>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제이콥 트렘블레이는 17세의 척을 연기하며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모습을 보여주는데, 비중은 크지 않지만 어쩌면 척의 일생에서 가장 결정적일 순간 속에서 무르익은 연기로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데 역할을 합니다. 척의 할아버지 역의 마크 해밀, 할머니 역의 미아 사라는 척의 유년 시절에 따뜻하고도 신비로운 기운을 가득 채워주며, 챕터 1을 장식하는 마티 역의 치웨텔 에지오포와 펠리샤 역의 카렌 길런은 세상의 끝 앞에서 좌절 대신 정리하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겸허한 모습을 차분하게 그려내며 '척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해줍니다.
<척의 일생>이 일깨우는 삶의 진실은 양면적입니다. 끝이 예정되어 있다는 서글픈 진실과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벅찬 진실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없이 팽창하며 자신의 유한함을 '150억년의 유한함'으로 확장해 나간 우주와 같이 우리의 유한함 또한 숱한 결심과 선택으로 '끝없는 유한함'으로 뻗어나갈 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 삶의 예정된 끝을 향해 째깍대는 초침은 더 많은 이야기와 더 큰 우주를 써내려가며 서걱대는 펜끝으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해가 마무리되어갈 즈음에서 만나는 그 심장박동 같은 펜끝의 리듬이, 또 하나의 마무리겠거니 싶은 이 순간을 지금까지에 대한 뿌듯함과 앞으로에 대한 기대로 새삼 채워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척이 그랬듯 우리도 불현듯 어디선가 들려오는 리듬에 기꺼이 몸을 맡기고 춤출 수 있기를, 그렇게 뜻하지 않게 우리의 우주가 무한해질 수 있기를, 그것이 신이 세상을 만든 이유임을 깨닫기를 바라게 되는 세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