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은 그만큼 새로운 것을 원하는 법

인상적인 영화리뷰 - <아바타: 불과 재>

by 김진만
<아바타: 불과 재>(Avatar: Fire and Ash, 2025)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시리즈 세번째 작품, <아바타: 불과 재>가 나왔습니. 2편이 나오기까지는 13년이나 걸렸지만 이번 3편은 다행히 3년 밖에(?) 걸리지 않았는데요, 이번 편의 성공 여부에 따라 감독이 계획했다는 5편까지 만들게 될지 결정되겠지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번에도 3시간 20분 가까이 되는 장대한 러닝타임에 걸쳐 우리를 판도라로 초대합니다. 감독의 야심과 전세계적인 메가톤급 흥행이 어우러져 <아바타> 시리즈의 개봉은 매해 전세계 영화계의 빅 이벤트가 되어 온 만큼, 이번 세번째 편은 어떤 세계를 우리에게 선사할지가 관건일 겁니다. 그런데 판도라로의 방문이 이제 세번째 쯤 되니까 나름 단골손님이 된 셈인지, 그만큼 바라는 것들이 또 생기더라고요. 기대했던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즐기는 한편, 확장된 세계와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 <아바타: 불과 재>를 보면서 그런 '단골로서의 니즈'를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간들과의 전쟁에서 큰아들 네테이얌을 잃은 후, 제이크(샘 워싱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를 비롯한 설리 가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상식의 아픔을 극복하려 노력중입니다. 제이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무기를 찾으면서, 네이티리는 에이와를 향한 기도로, 작은 아들 로아크는 저 너머의 세계에서라도 형과 만나 비행을 즐기면서 말이죠. 그 와중에 가족의 유일한 인간 구성원인 스파이더(잭 챔피언)의 정체성 문제로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또 다시 갈등하고, 고심 끝에 설리 가족은 하늘을 날며 판도라를 떠도는 '바람 상인'들의 상선을 타고 스파이더가 머물 곳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떠나는 모험의 설렘도 잠시, 약탈자 나비족으로 소문난 '재의 부족' 망콴족의 무리들이 상선을 습격해 옵니다. 부족의 '차히크'(일종의 정신적 지주)인 바랑(우나 채플린)이 이끄는 이 부족은 에이와의 존재를 부정하며 가차없이 불길을 퍼붓고, 설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또 다시 혼란에 빠집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제이크의 숙적인 쿼리치(스티븐 랭) 역시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와 제이크를 다시 쫓기 시작하면서, 설리 가족은 전보다 더 큰 위기에 처합니다.


<아바타: 불과 재>(Avatar: Fire and Ash, 2025)


생각해 보면 '아바타' 시리즈는 매우 희귀한 케이스에 속합니다. 3편까지 나왔으니 프랜차이즈로 취급되지만 그렇다고 보통 프랜차이즈에서 형성되기 마련인 팬덤 같은 것도 또렷학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등장 캐릭터와 세계관의 매력을 한껏 살려 대대적인 부가사업을 하지도 않는데도, 매 편이 나올 때마다 전세계적인 대흥행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번 편도 아마 그 흥행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고요.) 왜 그런 것일까 생각해 보니까 이르는 결론은 '아바타' 시리즈는 관람이 아닌 체험의 영역에서 취급되는 영화이기 떄문이 아닐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바타' 시리즈의 주 배경이 되는 판도라는 어떤 원작 소스도 없이 제임스 카메론을 비롯한 각본진으로부터 오롯이 탄생한 오리지널 세계관인데, 영화는 그 세계를 마치 실제로 로케이션한 것마냥 극강의 사실감과 박진감으로 구현하여 보여주기에 우리는 적지 않은 시간동안 영화를 본다기보다 판도라에 왔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판도라라는 곳은 이 영화들이 아니면 그 어떤 루트로도 갈 수 없으니, 영화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남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때문에 현 물가 시점으로 최대 2만 5천원 수준에 이르는 고가의 티켓값은, '판도라행 왕복 티켓'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가성비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번 <아바타: 불과 재>에서도 그 가성비는 여전히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특히 돌비 시네마 + 4K HFR 3D의 조합으로 본 판도라는 더더욱 '제작진 로케이션 섭외하느라 고생했겠다'는 착각이 들 만큼 사실감을 더하고 그래서 영화 시작부터 황홀한 기분을 안고 스크린 속으로 뛰어들게 됩니다.


<아바타: 불과 재>는 전편보다 액션의 비중이 큰 편입니다. 전편이 새로운 '물의 세계'로 진입하며 전투에 돌입하기 전 그 세계를 유영하는 데 적잖은 시간을 할애했다면, 이번 편은 새로운 세계가 아닌 새로운 (그것도 매우 공격적인) 부족의 등장이 주요 사건이 되면서 그 부족과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액션 장면이 그만큼 더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액션 장면 연출에 있어서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관록이 돋보입니다. 감독은 액션 장면을 단순한 볼거리 투입의 개념이 아닌 세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방식으로서 다룹니다. 액션 장면의 상당한 분량이 캐릭터들의 눈높이에 맞춘 카메라워크로 펼쳐지는 덕에 그들을 따라 우리도 판도라의 육해공을 다이내믹하게 누비는 듯한 박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대미를 장식하는 후반부 클라이맥스의 대규모 전면전 장면은 마치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을 연상시키듯 규모와 디테일, 국면 전환의 쾌감이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가슴이 웅장해지게' 만듭니다. 이렇게 <아바타: 불과 재>는 우리가 원했던 즐거움, 하늘과 땅과 바다를 넘나들며 판도라를 원없이 체험하게 해주는 즐거움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선사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세번째 '방문'이어서일까요, 단골 손님이 된 만큼 보다 새로운 콘텐츠를 찾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 점에서, 즉 스토리와 세계관의 확장에 있어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아바타: 불과 재>(Avatar: Fire and Ash, 2025)


<아바타: 불과 재>는 전편 <아바타: 물의 길>로부터 시작된 서사를 매듭짓는 성격이 강합니다. 전편에서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가족을 이루었고, 네테이얌, 로아크, 투크티리 같이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 외에도 인간인 스파이더와 의붓딸 키리(시고니 위버)까지 다양한 구성원의 가족이 만들어졌죠. 그 가족이 새로운 세계에서 겪는 투쟁과 상실, 극복이 전편의 주제였다면 이번 편에서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가족이 더욱 단단하고 강인한 공동체로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번 영화는 또 다시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기보다 그러한 가족 공동체의 성숙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렇기에 전편에서는 전혀 새로워서 다니는 곳곳마다 감탄을 일으켰던 '물의 세계'를 또 다시 만나게 되는 익숙함을 마주하게 되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이야기나 캐릭터를 따라가는 것보다도 세계를 체험한다는 가치가 가장 큰 시리즈로서, 전편들과 역시 유사한 전개로 흘러가는 스토리를 조금만 변주했더라면, '불과 재'라는 부제에 걸맞게 불과 재의 이미지를 이벤트 이상의 세계관으로 만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바랑이 이끄는 망콴족의 근거지가 화산이긴 하지만, 그저 적들의 근거지라는 느낌을 줄 뿐 그 이상의 어떤 '세계'로 다가오진 않습니다. 한편 캐릭터 빌드업에도 아쉬운 점은 남는데, 첫 포스터에 단독으로 등장할 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예고했던 나비족 사상 첫 빌런 캐릭터 바랑의 존재감이 전형적인 빌런의 이미지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이 그렇습니다. 오히려 친아들인 스파이더와 얽혀 편을 거듭하면서 변화를 보여주는 시리즈의 터줏대감 빌런 쿼리치의 존재감이 더 커지는 느낌입니다. 이번 편에서 가족 공동체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 이야기의 핵심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스파이더와 키리의 경우 좀 더 고민이 부여되고 입체적으로 그려졌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오직 제임스 카메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라는 점은 '아바타' 시리즈의 장점이자 약점이기도 합니다. 만약 세계관이나 이야기가 더 확장되지 않을 경우, 관객은 '다음엔 이걸 다뤄주길'이 아니라 '설마 이게 다인가' 하는 의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아바타' 시리즈가 새로운 세계의 체험을 큰 덕목으로 삼으면서도 세계와 인물과 서사의 연장과 확장을 거듭하기 때문에, 따라서 영화를 보는 이들은 세계를 체험하는 것만큼이나 세계와 인물과 서사의 변화를 따라가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아쉬운 지점들이 남는 것일 겁니다. 그것이 이 시리즈를 '판도라로의 여행'이라 일컬으면서도 엄연히 여행이 아닌 영화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일테고요. 그러니 이후 4, 5편이 나온다면 관객들은 이 시리즈에 새로운 세계와 이야기를 더 적극적으로 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바타: 불과 재>는 할리우드 영화 기술의 최극점에서 길어올린 볼거리들이 쏟아져 나오며 여전히 생동하는 판도라로 관객을 초대하고 있으니,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 묻는다면 이번에도 군말없이 그렇다고 답할 것입니다.


<아바타: 불과 재>(Avatar: Fire and Ash,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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