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2025년 영화 베스트 10 - 외국영화 부문

by 김진만

지난 2025년 한국영화 베스트는 부득이 5편만 꼽았지만, 이번 2025년 외국영화 베스트는 다시 10편을 꼽았습니다. 2025년에도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장르에서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네요. (한국영화와 마찬가지로 2025년 1월부터 12월까지의 정식 개봉작 중 제가 본 영화들을 대상으로 꼽았습니다.)


common.jpeg


10위 <국보>


출연 : 요시자와 료, 요코하마 류세이, 타카하타 미츠키, 테라지마 시노부, 모리 나나, 쿠로카와 소야, 와타나베 켄

감독 : 이상일


<국보>는 가부키라는 낯선 소재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가부키를 통해 예술의 본질을 이야기함으로써 성공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예술의 경지를 추구하는 인간의 고뇌'라는 주제는 예술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익히 보아온 것이지만, 그 표현 방식으로 가부키를 택함으로써 차별점을 갖게 된 것이죠. 혈통이 결정적인 예술에서 혈통과 상관없이 재능으로 돌파하려는, 여성을 연기해야 하는 남성이 내면에 들끓는 야수같은 욕망을 품은 채 목표로 돌진하는 이야기는 소재의 생소함에도 흡인력 가득한 드라마로 관객을 이끕니다. 그 치열한 욕망의 드라마와 더불어 이상일 감독이 보여주는, 뭐가 뭔지는 잘 몰라도 일단 압도될 수 밖에 없는 가부키 무대 장면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인간됨마저 저버리고 추구하려는 예술의 지극한 아름다움, 그 이율배반적인 얼굴을 일깨우며 감탄 이상의 복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킵니다. 국경과 분야를 초월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뒤에야 비로소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예술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common (1).jpeg


9위 <웨폰>


출연 : 줄리아 가너, 조슈 브롤린, 엘든 이렌리치, 오스틴 에이브럼스, 캐리 크리스토퍼, 베네딕트 웡, 에이미 매디건

감독 : 잭 크레거


걸출한 호러를 만들어냈던 감독의 신작으로 진작에 주목받았지만, 정작 <웨폰>이 우리를 놀라게 한 부분은 얼마나 무서운가에 국한되지 않은,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는가였습니다. 대놓고 공포를 주겠다기보다 뒤틀리고 음침한 도시괴담을 연상케 하는 이야기이지만, 시점을 바꿔가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스토리텔링으로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타날지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자아낸 끝에 드러나는 이야기의 실체는 오히려 공포감을 더욱 더 짙게 합니다. 그렇게 일단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만으로도 탁월한데, 타인의 공포를 무기 삼아 세상을 움켜쥐려는 자들, 그런 자들에 의해 까닭 없는 상실의 아픔에 고통 받는 이들, 그 속에서도 그 공포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이 공존하는 세계는 영화 속에서 왜곡된 판타지로 그려지면서도 현실을 예리하게 투영하기까지 합니다. 장르의 영역 안에서 끊임없이 시대와 공명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며, 무엇보다도 흥미진진한 경험을 선사하는 할리우드의 위력을 새삼 실감할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common (4).jpeg


8위 <내 말 좀 들어줘>


출연 : 마리안 장-밥티스트, 미셸 오스틴

감독 : 마이크 리


마이크 리 감독은 영국의 손꼽히는 거장 감독 중 한 명이지만, 부끄럽게도 그의 영화를 제대로 본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삶을 가감없이 들여다 보면서 그 어떤 해석도 분석도 덧붙이지 않은 채 경청함으로써 어루만지는 거장의 너른 품에 감탄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이렇게 정 붙이기 힘든 인물을 내세우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다 꼬투리 잡는 주인공의 모습은 당사자는 난처하기 그지없지만 남이니까 웃깁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그의 이야기를 받아치지 않고 들어주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속내는 비로소 남의 구경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걱정거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걱정이 드라마틱하게 깨어지기를 기대하지 않는, 오히려 그 걱정을 안고 꾸준히 하루하루를 버텨 나가는 것이 현실임을 깨닫게 하며 영화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큰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됩니다. 그저 지켜보고 들어주는 영화가 세상에 마땅히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common (5).jpeg


7위 <아임 스틸 히어>


출연 : 페르난다 토레스, 셀튼 멜로, 페르난다 몬테네그로

감독 : 월터 살레스


1970년대 브라질을 공포에 떨게 했던 군부 독재 시절을 배경으로, 영화는 고초를 직접 겪은 이가 아니라 그를 기다렸던 여인과 가족의 이야기를 그림으로써 엄혹하지만 결국 종말을 맞이하는 권력과 온화하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인간의 힘을 보여줍니다. 영화에는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이자 영화 속 실존 인물의 가까운 지인이기도 했던 감독의 조심스럽고도 섬세한 손길이 가득 배어 있습니다. 거시적인 관점을 일체 부여하지 않은 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가족이 겪은 사건을 다루지만 그래서인지 영화 속 역사는 바다 건너 타국 관객들이 보기에도 피부에 와 닿습니다. 이유 없이 잡혀 간 아버지를 기약 없이 기다려아 하는 상황에서, 어머니와 함께 남은 가족들이 보여준 것은 두려움 속에서도 잃지 않는 품위와 미소. 영화는 거역할 수 없었던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결국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 무엇인지 또한 똑똑히 보여주며 큰 감동을 줍니다. 일일이 보여주고 들려주지 않더라도 그 고통이, 그 사랑이, 그 힘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대단한 내공의 영화였습니다.


common (6).jpeg


6위 <이사>


출연 : 타바타 토모코, 나카이 키이치, 사쿠라다 준코

감독 : 소마이 신지


1993년에 나온 영화이지만 국내 정식 개봉은 처음이었고, 2025년에 나온 영화라고 해도 손색 없을 만큼의 충격을 준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비로소 자신이 희망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러나 세상은 자신의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기에 놓인 아이의 세계를 어느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에너지를 한껏 담아 보여줍니다. 마치 그 시절 그 나이 때의 세계로 풍덩 뛰어든 것만 같은 영화는 어른 관점에서의 판단을 일절 배제한 채 럭비공처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질주를 생동감 넘치게 뒤쫓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이야기는 단지 사춘기 시절의 소녀가 벌이는 반항에만 머물지 않고, 불완전한 자신을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가는 인격체로서 성장해 가는 과정으로까지 발전해 가며 쉽게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줍니다. 그 어떤 편견과 전형으로부터 벗어나, 그렇게 커져 가는 몸과 머리를 따라 '정신적 이사'를 겪는 소녀의 성장을 담아내는 영화가 뿜어내는 활력에 압도되어, 이제는 새 작품을 만날 수도 없는 이 감독의 존재를 왜 이제 알게 되었을까 탄식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common (8).jpeg


5위 <콘클라베>


출연 : 랄프 파인즈,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루시언 음사마티, 카를로스 디에스

감독 : 에드워드 버거


마침 영화가 개봉될 무렵 현실에서 콘클라베가 열렸기에 관심도가 올라갔지만, 영화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콘클라베의 모든 것을 치밀하게 들여다 보는 것에서 만족하지 않고 그 안에서 믿음에 관한 유의미한 질문을 감행함으로써 저력을 발휘합니다. 일단은 콘클라베가 준비가 실행되고 끝맺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꼼꼼히 보여주면서 시선을 잡아끄는 영화는, 외부인은 절대 들어올 수 없고 이 안에서 일어나고 드러나는 그 어떤 일도 바깥에 발설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밝혀지는 진실을 통해 진실게임 이상의 도덕적, 윤리적 실험을 제안합니다. 매달릴수록 멀어지고 초연할수록 가까워지는 권력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 어떤 사건도 가능하게 하지만 반대로 그 어떤 진보도 가능하게 되는 비밀이라는 것에 대해서, 폐쇄적일 것이라 짐작했지만 오히려 그 안에 내일이 존재할지도 모르는 '닫힌 문 너머'에 대해서 말이죠. 비록 종교와 신앙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 더 진실되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이 질문은 말하자면 '밀실 스릴러'의 외형 안에서 품격 있고 단아하게 조형되어 전해집니다.


common (7).jpeg


4위 <씨너스: 죄인들>


출연 : 마이클 B. 조던, 헤일리 스테인펠드, 잭 오코넬, 마일스 케이턴, 운미 모사쿠, 델로이 린도, 리 준 리, 오마 벤슨 밀러

감독 : 라이언 쿠글러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강렬한 사회극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라이언 쿠글러 감독은, 이후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시스템 안에서 활약하면서도 미국의 역사와 인종문제의 관계에 대해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끊임없이 고찰해 왔습니다. 그런 그가 프랜차이즈의 자장에서 벗어나 만든 <씨너스: 죄인들>은 필드를 달리 하면서 지속되어 온 그 일관된 고찰의 눈부신 결실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습도 높은 웨스턴으로 시작해서 호러로 끝맺는 영화는 천천히 달아오른 뒤 걷잡을 수 없이 불길을 뻗어나가는데, 그 중심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한이 담겨 있는 것도 같은 블루스 음악이 있습니다. 영화를 본 누구도 반드시 잊지 못할 한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는 블루스 음악이 쏟아내는 진귀한 기운에 휘감겨 관객을 빨아들이게 되고, 그 속에서 관객은 호러의 탈을 쓰고 펼쳐지는 필사적인 인권 투쟁의 현장을 목격하게 됩니다. 평생을 따라다닐 악몽과 평생 잊지 못할 찬란한 시절의 공존, 핍박 받아온 공동체가 세월을 뛰어넘어 겪어야 했던 고초와 그 속에서 더욱 뜨거웠던 인생과 예술의 기록의 공존은 대륙과 인종을 초월하고도 불덩이처럼 뜨겁게 마음에 내리꽂힙니다.


common (9).jpeg


3위 <브루탈리스트>


출연 : 애드리언 브로디, 펠리시티 존스, 가이 피어스, 조 알윈, 래피 캐시디, 스테이시 마틴

감독 : 브래디 코베


비스타비전으로 촬영된 지글거리는 필름 질감의 화면, 러닝타임이 긴 영화에 주어지곤 했다는 인터미션 등 이 영화에는 현재의 영화팬들에게는 생경한 고전 영화의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전 영화의 요소들을 따라 우리를 인도하는 곳 역시 장엄'해 보였던' 미국의 과거입니다. 스크린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헌신적으로 수행하는 건축가, 그런 건축가의 꿈을 이용해 자신이 품은 궁극의 꿈부터 저열한 욕망까지 모든 것을 실현하려는 의뢰자, 그 모든 욕망들이 얽히고 설킨 끝에 우뚝 선 결과물까지 그 모든 것이 가감없이 펼쳐집니다. 주인공의 아메리칸 드림만큼이나 장대한 영화의 꿈을 담아 찬란한 영광부터 치욕과 좌절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담겠다는 야심은, 꿈의 현장이었던 미국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꿈을 꾸었던 모든 이들에게 진심 어린 헌사를 보냅니다. 세월을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내려다 보듯 우뚝 선 건축물이, 세월을 이기지 못해 시련에 시달리다 둔감해지고 무릎 꿇다가 기어이 일어나는 인간의 고단함을 위로하듯이 말이죠. 힘과 치밀함과 깊이를 겸비하여 격동의 시대와 인물을 들여다 보는, 길고도 깊은 이야기의 희소 가치는 무척 컸습니다.

common (3).jpeg


2위 <그저 사고였을 뿐>


출연 : 바히드 모바셰리, 마리암 아프샤리, 에브라힘 아지지, 하디스 파크바텐, 마지드 파나히, 모하마드 알리 엘야스메흐

감독 : 자파르 파나히


영화는 곧 그 영화를 만드는 이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영화처럼 곡진한 고초를 겪어 온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그렇게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는 영화들을 여러 차례 만들어 왔는데, 완전한 극영화의 형식 안에 그러한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낸 이번 영화는 그 중에서도 가장 고유한 시선으로, 가장 보편적인 울림을 주는 영화입니다. 자신에게 악몽같은 시간을 가져다 준 인물을 납치하여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하는 이야기는 복수극같아 보이지만, 저들이 납치한 이가 저들이 생각하는 인물이 맞는지, 저들이 납치한 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납치된 인물의 불분명한 정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도덕적 딜레마 속에서 이어지는 내적 갈등 그 자체가 영화의 모든 것이고, 영화가 현실을 노려보며 외치는 목소리에 담긴 메시지입니다. 이처럼 감독이 장르적인 쾌감보다 인간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명쾌한 기승전결보다 끝나지 않는 감정과 갈등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 자신이 영화 속 현실의 당사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보다 더 엄혹한 현실을 살아낸 창작자에게 빚을 진 것만 같은, 예리한 시선과 품 넓은 손길을 모두 지닌 영화였습니다. 또 다시 고난의 시기를 겪고 있는 이란에게 이 영화는 또 어떤 다른 의미로 다가갈지도 궁금해집니다.


common (2).jpeg


1위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숀 펜, 베니시오 델 토로, 레지나 홀, 테야나 테일러, 체이스 인피니티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작가주의 감독의 상업영화 연출은 흔히 '외도'라고 불리며 우려 섞인 주목을 받고 그 우려는 심심찮게 현실이 되고는 했습니다. 그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제작비 1억 달러짜리 블록버스터를 만든다는 소식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감독은 완전히 다른 접근법으로 우려를 환호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자본의 규모 앞에 자신을 웅크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자본을 활용한 것입니다. 여전히 혁명의 외침이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혁명의 불씨를 품은 딸을 구하기 위해 혁명가의 깜냥이 못되는 아버지가 벌이는 분투기를, 감독은 초창기 그를 스타덤에 올렸던 현란한 편집과 촬영, 감각적인 음악으로 청산유수처럼 펼쳐냅니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큰 화면으로 봐야 하는, 블록버스터에 걸맞는 시그니처 시퀀스를 남기는 데 성공했죠. 여기에 드높은 이름값의 배우들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연기 속에서 미국의 현대사를 꿰뚫으면서, 동시에 미국을 움직이게 하는 혁명가들을 보듬으며 내내 기억하고픈 감정적 한 방을 남기기까지 합니다. 결과적으로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는 것은 아무런 근심거리도 되지 않았고, 남은 것은 자본에 휘둘리긴커녕 자본을 유감없이 휘두르며 나타난 새로운 'PTA의 최고작'이었습니다.


이상 외국영화 부문까지 2025년 개인적인 영화 베스트 10을 꼽아 보았습니다. 외국영화 부문에서는 이번에도 베스트 영화들이 풍성하게 자리를 채워주었는데요, 2026년에는 한국영화에서도 많은 좋은 영화들을 만나 다시 베스트 10을 채울 수 있기 바라봅니다. 더 다양한 영화들에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훈풍 도는 극장가를 기대해 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개인적인 2025년 영화 베스트 5 - 한국영화 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