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이름으로, 기억하겠다는 선언

<너의 이름은.> - 신카이 마코토 감독

by 김진만
59e26240235df4b5cb4c4e9176637bf25f734e4c.jpg <너의 이름은.>(Your Name., 2016)

<너의 이름은.>이 메가 히트를 기록하기 전부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예전부터 멀리 떨어진 남녀가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다뤄왔다. 어린 시절의 안타까운 첫사랑을 뒤로 하고 헤어진 청춘남녀(<초속5센티미터>), 문학을 가교로 순수한 교감을 나누었지만 애틋한 이별을 맞이하는 교사와 학생(<언어의 정원>)처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이어지게 하는 사랑의 초월적인 면을 특유의 순정을 담아 그려왔다. 그 사랑이 길지 않은 러닝타임 속, 개인적인 범위 안에서 그려졌기에 감독의 세계관도 아담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너의 이름은.>에서 감독은 자신의 이러한 오래된 바람이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랑에 기반한 소망만은 아닐 것이라고 얘기한다.

<너의 이름은.> 속 주인공들은 '이름'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매개를 통해 기억과 감정을 붙잡으려 한다. 전작들에 비해 한층 역동적이고 복합적으로 변한 캐릭터와 사건의 묘사만큼이나, 그들이 붙잡으려는 기억과 감정 또한 더 이상 개인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이름이라는 것의 무게를 잘 알고 있는 듯, 영화는 나와 전혀 상관없었을 것 같은 다른 세계가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 얼마나 가깝게 연결될 수 있는지, 막고 싶은 재난과 구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한다. 감독은 영화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어느 정도 모티브를 얻었다지만, 그들 못지 않게 막고 싶었던 재난과 구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는 우리들에게도 이름이라는 것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붙잡으려는 주인공들의 노력은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은 다른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쏘아 올린 그 간절함이 우리의 마음 속으로 안착한 좋은 예이다.


7887ecbdd3b64c43999906bbb985c7f73bd8a531.jpg <너의 이름은.>(Your Name., 2016)


도쿄 도심에 사는 남고생 타키(카미키 류노스케)와 이토모리라는 시골 마을에 사는 여고생 미츠하(카미시라이시 모네)는 어느 날부턴가 서로의 몸이 바뀌어 하루를 보내는 현상을 경험한다. 처음엔 매우 실감나는 꿈이라고 믿었지만, 그 현상이 하루 걸러 하루 꼴로 계속되는 데다 자신들을 둘러싼 일상에 변화를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남다른 인상을 남기게 되면서 매우 중대한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타키와 미츠하는 자신들 나름의 룰을 정해놓고서 일단은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몸이 뒤바뀐 후에 각자가 경험하는 일상을 휴대전화 다이어리에 기록하여 일상의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뜻하지 않은 교류를 갖던 중, 언제부턴가 타키와 미츠하의 몸이 서로 바뀌는 현상이 중단된다.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해 하던 차에 타키는 미츠하의 몸에 있던 때의 기억에 의존해 미츠하가 사는 곳을 찾아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타키와 미츠하 사이에서 일어났던 그 신비로운 현상은 더 이상 그 둘만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된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가 자신의 기존 작품 경향에서 부각되었던 부분을 더욱 성숙시키고, 부족했던 부분을 보강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가 일본 애니메이션 계보에서 지니게 될 존재감이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것임을 입증했다. 이른바 '영혼까지 갈아넣은 듯'한 디테일한 작화는 여전히 살아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감독이 실제로 거주했다는 도쿄 일대를 비롯하여 실제 장소를 모델로 한 도심과 교외 곳곳에 대한 묘사는 반짝이는 광원 효과와 어우러지며 시작부터 시야를 번쩍 트이게 한다. 도쿄의 풍경은 분주하고 화려한 도시의 맛으로, 이토모리의 풍경은 고즈넉한 자연의 맛으로 그 맛을 달리 하며 안구를 정화시킨다. 여기에 엔딩 테마 등에서 인상적인 배치가 돋보였던 음악의 비중이 <너의 이름은.>에서는 영화 전반으로 확대되어 이야기 전체에 청량한 에너지를 북돋운다. 일본의 록밴드 래드윔프스(RADWIMPS)가 만든 네 곡의 노래들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은 물론 극적 전환점이 되는 순간에 드라마 OST처럼 깔리며 영화에 마치 푸른 바람을 몰고 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물들의 대사로 표현할 경우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을 정서적인 부분들이 이 노래들 속 가사에 녹여들면서 감수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불러일으킨다.


2d4bf6300d767580903651d85716d7f2eb6d8135.jpg <너의 이름은.>(Your Name., 2016)


여기에 감독은 이야기보다 인물들의 정서에 더 천착하는 전작들의 경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커다란 사건을 중심에 둔 이야기, 그 사건에 휩싸이게 된 인물들의 요동치는 내면, 극에 활기를 더하는 코믹함과 스릴감을 덧입히며 '장편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만듦새에 보다 만전을 기했다. 마치 한편의 청춘 드라마를 보는 듯 설렘과 활기로 채워진 오프닝으로 영화를 열면, 국적을 불문하고 하이틴물에서 익숙하게 봐 온 '신체 교환' 컨셉의 이야기가 전형적인 듯 재치있게 펼쳐진다. 신체가 뒤바뀌면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성 강하게, 남성 캐릭터는 여성성 강하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 당황 또는 신선함을 안기는 상황은 새롭지 않지만 충분히 즐겁다. (특히 타키의 몸에 들어가게 된 미츠하가 타키 친구들에게 '와타시', '보쿠', '오마에' 등 일본어 특유의 자아 지칭어들로 혼란을 주는 장면은 익숙한 설정을 일본식으로 감각적으로 변주한 예다.) 여기에 둘의 신체 교환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교환과 원상복귀를 반복하고, 그로 인해 서로의 신체를 빌렸던 날의 기록을 휴대전화에 다이어리로 남기는 설정은, 신체 교환이라는 설정의 에너지가 쉬이 식지 않고 꾸준히 경쾌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아련한 멋을 한껏 풍겼던 감독의 전작들 속 주인공들에 비해, <너의 이름은.>의 타키와 미츠하는 덕분에 확실히 더 밝고 능동적이다.

이런 상황과 캐릭터 설정 위에서 영화는 사건의 부피를 좀 더 불려나간다. 그것도 더 이상 개인 차원이 아닌 사회 차원의 사건으로 말이다. 자신들의 감정에 한껏 센치해져 있던 이전 영화들 속 주인공들이라면 그 감정의 그늘이 너무 짙은 나머지 바깥의 사건까지 차마 손을 뻗을 여력이 되지 않았을 법도 하다. 반면 <너의 이름은.>의 타키와 미츠하가 그런 큰 사건에 적극적으로 손을 뻗고 맞서게 되는 것은, 그들의 관심이 더 이상 서로에게만 머물지 않고 서로가 속한 세계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도시 소년의 시골에 대한, 또는 시골 소녀의 도시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지만 결국 그 호기심은 서로가 살아가는 세계가 어떤 곳일까, 그곳에서의 삶의 가치는 어떤 것일까와 같은 보다 깊은 궁금증으로 발전되어 간다. 앞서 말했듯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 영화 이전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의 그리움에 대해 자주 다뤄 왔지만, <너의 이름은.>에서 감독은 그런 그리움의 감정을 단순한 낭만의 일부로 삼는 것을 넘어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적극 발현하는 듯 하다. 그것은 단지 사랑이라는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의지이기보다 사라지지 않았으면, 공존했으면 하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갖는 본능적인 갈망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a21c5e990af14264b743b7dbc9f509470fff9127.jpg <너의 이름은.>(Your Name., 2016)


신체 교환이라는 이상현상이 없었다면, 두 사람을 결국 일생일대의 중대한 기로로 몰아넣게 되는 큰 재난이 처음 발생하던 순간 두 사람은 영원히 그 어떤 인연으로도 연결되지 않는 개인들로 남았을 것이다. 처음 타키가 도쿄에서 그 재난의 일부를 목격할 때, 그는 그것이 단지 몇 백년에 한번 꼴로 일어나는 진귀한 천체 현상인 줄 알고 한껏 매료되어 지켜 봤을 것이다. 그러나 미츠하와 몸이 바뀌고 그 천체 현상이 빚어낸 결과를 알게 된 순간, 그 현상은 더 이상 넋을 놓고 지켜볼 진귀한 볼거리가 아니게 된다. 그리고 말도 안되는 이상현상을 함께 겪고 있는 낯선 소녀를 구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타키의 마음 속에서 강렬하게 일어나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식사 도중에 보는 TV 뉴스를 통해 보면서 '세상에 저런 일도 다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을 일에 타키가 이토록 간절하게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미츠하라는 사람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은, 그가 구해야 할 생명의 가치와 되돌려야 할 재앙의 무게를 더욱 더 묵직하게 키우는 계기가 된다. 어떤 기사가 어떤 재앙을 다룬다고 할 때, 같은 재앙의 내용이라도 '수백명이 사망했다'고만 하는 경우와 그 사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는 경우 우리가 느낄 절망감의 차이는 눈에 띄게 클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풋풋한 청춘 남녀의 사랑이 빼어난 작화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과시하며 스크린을 채웠지만, <너의 이름은.>은 좀 예외다. 생명을 구하려는 의지가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 서 있다. 서로의 몸을 드나드는 정신없는 여정이다 보니 그 와중에 서로 간에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는 내용을 무리하게 전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긴 하나, 러브스토리로 적극 홍보되는 것과 약간의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타키와 미츠하 사이의 감정은 지극히 미묘하다. 나의 과거와 타인의 현재, 어긋난 장소와 시간으로 얽힌 인연 속에서 각자의 감정이 정확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불확실한 순간에 가장 확실한 것은 나와 그가 공존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사랑의 스파크가 본격적으로 싹틀 수도 있겠지만, 때에 따라서 이것은 비단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려는 연인의 마음 이전에 친구의 마음, 더 넓게는 인간의 마음일 수도 있다. 아마도 감독이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대재앙에서 모티브를 얻어 이 영화를 만들면서 담고자 한 감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듯 하다. 꼭 긴밀한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라도, 그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알고 있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살게 하고 함께 존재하게 하고픈 의지 말이다.


9039ee007931ed6aa1432166f9df0f7e29a8b440.jpg <너의 이름은.>(Your Name., 2016)


<너의 이름은.>은 일본인들이 겪은 그들 나름의 가슴 아픈 재앙을 젊은이들이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선언 같은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살아온 세월만큼 쌓아온 기억도 많아서인지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기억들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겠다는 기성세대들에 맞서, 앞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은 청춘의 입장에서 그 중 쉬이 내주지 않을 자리에 그때의 기억을 간직해 두겠다는 그런 선언 말이다. 이런 마음은 국가적인 대재앙을 겪은 이들이라면 사무치게 공감할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재난으로 수백명이 희생당했다는 소식만 들었을 때에는 '너무 안타깝다'는 막연한 감정만 생기다가, 그들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분향소를 마주한 순간 참을 수 없는 눈물과 미안함과 죄책감을 실감하게 되는 때가 있다. 이런 큰 재앙도 시간의 때가 묻게 마련인 건지, 어떤 사람들은 적당히 하다가 잊자고 하거나 살다 보면 마주치는 사고 중 하나로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재앙에 스러져 간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이미 알게 된 순간, 재앙의 무게는 희생된 생명 하나하나의 무게에 비례하게 된다. 분향소 한번 갔다 온 보잘 것 없는 인연일지 모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갖은 인연들의 크고 작은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 이게 한편으론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일종의 '무스비'일지도.

<너의 이름은.>이 일본과 중국을 거쳐 한국에서도 이토록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애니메이션과 실사 통틀어) 실로 오랜만에 싱그러운 청춘의 기운을 아름다운 그림과 청량감 넘치는 음악 속에 담아낸 영화이면서도, 단지 그런 청춘을 예찬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이런 청춘의 에너지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기 때문이다. 청춘은 여러 가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 힘은 그것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러 먼 길을 떠나게 할 수 있는 용기도, 아끼는 사람들을 구하려는 의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힘은 잊으면 안될 순간과 존재를 끝까지 기억하는 것, 편하거나 어렵거나 귀찮거나 개의치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지로 끝까지 기억하는 것일지 모른다. <너의 이름은.>이 말하는 청춘의 힘이 바로 그런 것이다. 기억할 수 있다는 자신감, 기억하겠다는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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