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 한재림 감독
굳이 시국이 요즘 같지 않더라도, 영화보다 더 말도 안되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더 킹>은 예정대로 완성되고 극장에 걸렸을 것이다. 천만 관객 가까운 흥행을 일군 감독의 신작이고, 당대의 미남 배우 두 명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영화인데 제아무리 현대사적으로 민감한 이슈를 다룬다고 극장들이 개봉을 기피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만약 그랬다면 영화 속 이야기를 '영화적인 양념이 어느 정도 들어간 극적 전개'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컸을 거라는 점이다. 아무리 그래도 저럴까 하면서 봤던 <내부자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현실에 비하면 소박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지금, <더 킹>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보다 몰랐던 이면의 진실의 껍데기나마 보여주는 셈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더 킹>을 단지 '타이밍을 잘 만난 영화'라고 치부하긴 어렵다. 개인의 흥망성쇠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훑어 온 적지 않은 한국영화들 속에서 <더 킹>이 표방하는 정체성은 꽤 명확하다. 바로 '캐주얼함, 트렌디함'이다. 마치 주류 광고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포스터 속 두 주인공의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대한민국 검찰이 피고 지는 권력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생명력을 유지해 왔는가'라는 녹록지 않은 주제를 의외로 경쾌하고 스타일리쉬하게 그려나간다. 저들이 뭔가 저속하고 지저분하게 굴고 있다는 인상도 주지 않은 채, 멋짐과 비열함이 균일하게 뒤섞여 있다. 그런데 희한한 건, 이런 영화의 태도가 결코 그들을 미화하거나 추앙하기 위한 목적을 띠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그들이 멋짐으로서 무서운 존재들이라고 말한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무관심에 기대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한다.
전두환 정권에 학창시절을 보낸 박태수(조인성)는 누구 하나 전학만 왔다 하면 단골로 강제 맞짱에 불려나오고도 거기서 지는 법이 없었던 학교 일진이었다. 야바위꾼인 아버지는 남들 등쳐먹는 데 선수였지만, 그런 아버지를 꼼짝 못하게 하는 '검사'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서 태수의 진로는 정해지게 된다. 물리적 힘을 넘어선 배운 자, 아는 자의 힘으로 세상을 자기 앞에 조아리게 만드는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렇게 독학 끝에 태수는 기적적으로 서울대 합격과 사법고시 합격을 거쳐 검사가 되고, 밑바닥을 전전할 수도 있었던 태수의 삶은 하루아침에 고공행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재벌가의 딸이자 아나운서인 상희(김아중)와 혼인도 올리며 탄탄대로를 걷지만 한편으론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이 일에 치이는 일과에 실망감을 느끼던 차, 태수는 한 사건을 계기로 선배 양동철(배성우)을 만나게 된다. 동철은 현재 검찰에서 가장 굵직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의 라인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하고, 그 제안을 수락한 태수는 비로소 자신이 예전부터 꿈꿔 왔던 하이클래스로서의 삶을 누리게 된다. 이와 함께 고등학교 친구였다가 지금은 목포 폭력조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일(류준열)을 파트너로 만나게 되고, 앞으로 일어날 갖가지 더러운 상황들을 모두 처리해주겠노라고 두일이 다짐하면서 태수의 앞날은 거칠 것이 없어진다.
영국과 같은 입헌 군주제 국가들을 보면 왕은 나라의 최고 권위로서 추앙받지만 실질적으로 외부에 권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그런 일은 총리 같은 선출직 최고위 공직자가 도맡는다. 총리는 권력을 직접적으로 외부에 행사할 수 있지만 시민들의 투표로 이뤄지는 선거의 결과로 그에 대한 대가 또한 응당 치러야 한다. 반면 왕은 직접적인 권력 행사 위치에서 두어 발짝 물러나 있지만, 총리가 몇번을 바뀐다 한들 변함없는 권위를 유지할 수 있다. 영화 <더 킹>이 제목에 지도자, 리더 같은 개념의 단어가 아닌 '왕'이라는 말을 얹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즉 국민의 의지에 따라 권력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체제의 현대 사회에서 과거의 왕처럼 변함없는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것이 <더 킹>이 흥미를 느낀 질문이고, 영화는 그에 대한 대답으로 '대한민국에는 검찰이라는 곳이 있다'고 말한다. 최고 권력자의 수하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위에서 변함없이 군림하는 권력. <더 킹>은 그러한 검찰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과정에 외부자였던 한 인물을 들여보내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뜻밖에도 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의 검찰 권력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가가 아닌, 얼마나 철저하게 작동하는가이다. 태수가 처음 동철의 제안으로 한강식이 이끄는 검찰의 실세 '전략부'에 들어서며 문제적 영상을 접할 때는 조금 선정적으로 가나 싶었으나, 이후 영화가 검찰 전략부의 행태를 그리는 방식은 음란하고 방탕하기보다 화려하고 트렌디하다.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닌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인 데서 짐작은 되겠지만, <내부자들>에서 봤던 뜨악한 수준의 유흥은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한강식과 전략부 구성원들을 비롯한 검찰 커넥션 관계자들이 유흥을 즐기는 펜트하우스에는 술과 여자들이 가득하지만, 이들이 노는 모습은 마치 <위대한 개츠비> 속 개츠비 저택 파티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전혀 어둡고 음침하지 않으며, 당시 유행하던 가요를 따라부르고 춤도 춰 가면서 발랄하고 신나게 놀아제친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강식이 자주 찾는 단골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풍부한 육즙과 육질을 자랑하는 스테이크를 품격 있게 썰기도 한다. 이렇듯 영화가 그려내는 최상위 검사들의 삶은 극심한 부패와 타락으로 이질감을 주기보다 일말의 선망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는 것 없이 주지육림에만 빠져 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할 때의 그들은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아무도 모르나 누구라도 알았다간 그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할 사건들을 수없이 쟁여놓고는,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는 철칙 아래 타이밍과 임팩트를 정교하게 계산하여 사건들을 다룬다. 다음 지도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자신들의 생명력 또한 좌우되기에 선거에 치밀하게 귀를 기울이고 원하는 결과를 위해 점이나 굿 같은 비과학적 수단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자신들이 원치 않았던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섣불리 무너지지 않고 변화된 권력 관계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런 식으로 기나긴 세월 속에서 대한민국 검찰이라는 권력은 나이들지 않고 젊음을 유지한다. 마치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유행가를 빠르게 섭렵하고, 수십년이 지나도 외관상 나이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한강식처럼.
이처럼 그들이 온 나라의 빛을 모두 품에 안은 듯 아우라를 자랑하며 일과 유흥을 만끽할 수 있는 데에는 그들의 등 뒤에 껄적지근한 일들을 모두 처리해주는 어두운 세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누군가를 처리함에 있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걸림돌(사물이든 사람이든)은 그 어두운 세력들이 모두 처리를 해 주기 때문에 검찰 구성원들의 손에는 피를 묻힐 일이 전혀 없다. 요즘 뉴스를 통해서 숱하게 들어온 말처럼 "나는 알지 못하는 일이다, 나는 지시한 적 없다"라고 잡아떼면 그만이도록 모종의 커넥션을 맺되 드러나게 손을 잡지 않는다. 질척이는 일들을 모두 처리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빛나는 영광은 모두 그들의 몫이다. 이것은 마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과도 같은 풍경이다. 아무도 그 썩어들어간 속을 알지 못한 채, 훤칠한 권력의 영광만을 목격한다.
태수는 말하자면 이렇게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과도 같은 검찰 최상부의 세계로 들어서며 잘생긴 외면과 추악한 내면을 모두 목격하게 되는 인물이다. 한강식 라인에 제 발로 합류하긴 하지만, 다행이라 해야할지 권력을 향한 그의 욕망은 그렇게까지 맹목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을 제 발 밑에 두고픈 야망은 컸지만, 무고한 사람들까지 짓밟아도 좋다는 식은 아니었고 그것은 검사 생활 초기 한강식 라인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인 딜레마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일말의 양심은 한강식 라인, 즉 '전략부'로 들어가게 되면서 모습을 감추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성격이 변해서라기보다 환경이 변했기 때문으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한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수준의 사건들만을 다루는 그곳의 시야는 너무 넓고 높아져 버려서 이제 힘없는 개인들을 일일이 보살피기 힘든 상화이 되었다. 또한 사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갖은 걸림돌들을 지방의 폭력조직들이 굳이 말 안해도 알아서 처리해 주는 덕분에,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나쁘다'는 심정적 혐의를 얼마든지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건 다 학창시절 친구이기도 했던 두일이라는 존재 덕분이기도 하다. 태수가 꽃길만 걷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같은 불순물들을 두일이 다 떠안으며 흙길행을 자처한 것이다. 태수와 두일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 자체가, 대한민국 검찰과 폭력조직이 맺고 있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과도 같은 관계의 표상이었던 셈이다.
겉보기에 추하고 타락해서가 아니라 겉보기에 오히려 너무나 멀쩡하고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한 것. 그것이 부패 권력이 진짜 위험한 이유라고 <더 킹>은 이야기한다. 부정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이들은 그 악랄한 이빨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영화를 통해 목격한 그들의 프로페셔널한 업무 처리 과정에서 알 수 있듯 그 모든 것은 유별난 악행이 아닌 일상적인 프로세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이 산 채로 개떼들에 물어뜯겨 누더기가 되어 가고 있는 와중에도 싸늘한 표정으로 껌을 씹으며 커피를 타 대접하는 폭력조직 경리(고아성)의 모습처럼, 악과 불의는 우리가 보아 온 많은 영화들에서처럼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멀쩡한 겉모습에 철저히 숨긴다. 얼마나 썩어문드러졌을지 짐작도 못할 진실은 우리가 그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 한 드러나지 않는다고, 그렇기에 이 나라는 위로부터의 지시로 굴러가기 이전에 국민으로부터의 견제가 동시에 작동되어야 한다고 영화는 이야기하는 것이다. 영화가 표방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 세상 앞에서의 무력함이 아닌,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의지다. 예전 같았으면 순진한 이야기 같았겠지만, 지금 우리는 현실에서 그 가능성을 목도하고 있다.
<더 킹>의 투톱을 담당하는 조인성, 정우성 배우의 연기는 다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지만 영화의 톤 자체가 다소 과장되어 있기에 외려 잘 어울린다. 목포 일진 출신에서 최고위급 검사까지 파란만장한 흥망성쇠를 겪는 박태수 역의 조인성 배우는 출세를 꿈꾸는 청년의 철없는 에너지와 성공에 수반하는 환경의 변화로 인해 겪는 내적 갈등, 구름 위를 걷다 나락으로 떨어지며 겪는 좌절과 각성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그를 앞세운 최근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준 강렬하고 처절한 연기와는 다른, 좀 더 캐주얼하면서도 인간적인 연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비주얼과 더불어 좋은 효과를 본 듯 하다. 한편 수십 년의 역사 속에서 변함없이 실세 자리를 지키는 한강식 역의 정우성 배우는 개인으로서 그려지는 박태수와 대비되는, 부패한 검찰권력의 표상으로 그려지는 한강식의 상징성 짙은 캐릭터를 잘 그려냈다. 그의 필모그래피 사상 최고위층에 속하는 인물답게 멋진 모습이라곤 있는 대로 다 보여주면서도, 그 멋진 모습을 허황된 이미지가 아닌 내면의 비열함과 저급함, 부패함을 숨기는 포커페이스로서 잘 형상화한 듯 하다.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 연극 투에 가까운 대사 소화는 다른 영화 같았으면 어색하게 느껴졌을 것이나, 가공된 정의의 가면을 쓰고 권력 위에 군림하는 인물의 성격을 잘 반영한 예가 된 듯 하다.
투톱을 이루는 두 배우 외에도 배성우, 류준열, 김아중, 김소진 등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이 많다. 박태수의 학교 선배이자 전략부 선배이기도 한 양동철 역의 배성우 배우는 권력의 기류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꿀 줄 아는 속물적인 인물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예리하게 표현해낸다. 한편 박태수의 고향 친구이자 그의 뒷처리를 도맡아 해주는 '들개파 2인자' 최두일 역의 류준열 배우는, 휘황찬란한 빛의 편에 선 박태수와 달리 완전한 어둠의 편에 서서 위험하지만 진실된 우정을 이어가는 인물의 모습을 강렬하게 소화한다. 어둡고 더러운 것은 모두 책임진다는 두일의 말처럼, 후반부 어두운 내면으로부터 비애 어린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장면을 톡톡히 장악한다. 박태수의 아내이자 재벌가의 딸인 상희 역의 김아중 배우는, 특별출연에 가까울 수 있는 출연 비중과 상관없이 수동적이거나 애정 지향적이지 않은, 실익을 철저히 따지며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담백하게 그려낸다. 마지막으로 박태수를 물먹이려는 선배 검사 안희연 역의 김소진 배우를 주목해야 한다. 성공 가도로 질주하는 전략부와 대조되게, 침착하고 진득하되 끈질기게 검찰 부패의 뿌리를 쫓는 검사의 모습을 리드미컬한 사투리와 함께 날카롭게 표현해낸다.
<더 킹>은 종래에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영화다. 은유하지 않고 관객들에게 직접 말을 거는 영화는 촌스럽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처럼 한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묘사하는 대신, 상위 1%보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누린 축제 같은 나날들을 보여준 뒤 영화가 관객들에게 향하는 시선은 사뭇 의미심장하다. 당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사람들이 저렇게 원없이 누리고 있는 쾌락을 지켜만 보고 있을 셈이냐고, 그들이 왕이랍시고 당신들 위에 군림하게 둘 셈이냐고 묻는다. 세상의 주인이 누가 돼야 하는지, 권력이 주는 쾌락 앞에 자신의 존엄을 맡긴 채 썩어가는 사람들일지 아니면 더디 간들 늪웅덩이에 빠지지 않고 뚜렷한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일지 묻는다. 그들 중 누군가가가 왕이 되어 세상을 이끌 것이고, 우리는 그들 중 누가 왕이 될지 선택할 수 있다. 그들이 킹이라면, 우리는 킹메이커인 것이다. 스크린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부유하던 권력의 열쇠가 마지막에 이르러 영화를 보고 있던 우리의 손에 주어질 때, <더 킹>의 주인공이 우리였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더 킹>은 관객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응당 들어 마땅한 말을 영화라는 언어를 통해 건넨다.